수주 가뭄에 시달리는 대형 조선회사들이 중소 조선사 일감을 넘보면서 양측 갈등이 커지고 있다고 한다. 초대형 유조선(최대 32만t급)을 주로 건조하던 현대중공업 삼성중공업 대우조선해양 등 대형 3사가 상대적으로 선박 크기가 작고 수익성도 떨어지는 수에즈막스급(13만~16만t급) 시장에 잇따라 뛰어들면서 나타난 현상이다.
중소 조선사 사이에선 경쟁질서 와해와 산업생태계 붕괴를 우려하는 목소리까지 나온다. 모두가 공멸의 길로 가고 있다는 지적도 있다. 대형 조선사들은 그러나 ‘생존을 위한 불가피한 선택’이라고 설명한다. 선박 건조 시설인 도크를 놀리고 인력을 줄이는 것보다 작은 선종이라도 수주해 배를 짓는 게 낫다는 것이다. 현대중공업은 울산조선소 도크 두 곳과 군산조선소, 삼성중공업은 거제조선소 도크 두 곳의 가동을 중단했다.

조선업계를 ‘제 살 깎아먹기’ 지경에까지 이르게 한 것은 업황 침체에 대응하는 구조조정을 제때 못 한 결과다. 그동안 정부와 채권단은 본격 구조조정은 미룬 채 부실 조선사의 연명을 지원하는 데 급급했던 게 사실이다. 이렇게 살아남은 기업들이 과당 수주경쟁에 나서면서 시장을 교란해왔다. 대우조선해양만 해도 2015년 이후 두 차례에 걸쳐 10조원 넘게 지원받았고, 성동조선해양 STX조선해양 대선조선 등도 채권단 관리 상태에서 다른 조선사와 경쟁하는 구조다.

눈앞의 손실을 줄이기 위해 구조조정을 뒤로 미룬 문제가 끝내 주력 산업인 조선업 생태계 와해로까지 이어진다면 보통 심각한 문제가 아니다. 아직은 세계 조선업황 회복을 더 기다려야 한다는 분석이 많다. 조선업계 내부에서 울리는 경보에 귀를 기울이고, 지금이라도 필요하면 과감한 구조조정에 나서야 한다.

ⓒ 한경닷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