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지 업황 분석

박종렬 < 현대차투자증권 애널리스트 >

사양기업은 있어도 사양산업은 없다

제지산업이라 하면 주식투자자 대부분 사양산업으로 평가한다. 저성장 산업이기 때문일 것이다. ‘사양기업은 있을지라도 사양산업은 없다’는 관점에서 접근할 필요가 있다. 비단 제지산업만이 아니다. 섬유, 비금속광물, 비철금속 등 수많은 산업이 과거 한때 각광을 받으며 성장했지만 현재 뒤안길에 놓인 경우가 많다. 그러나 이들 산업은 대부분 ‘캐시카우’ 성격의 기업들로 고배당주라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대규모 투자는 일단락됐고, 과점화 체제로 안정적인 영업이익과 함께 꾸준한 현금흐름을 창출하고 있기 때문이다.

제지산업에 대한 이해

제지산업은 크게 목재칩을 이용해 펄프를 생산하는 펄프제조업과 생산된 펄프 및 폐지를 원료로 각종 종이 및 종이제품을 생산하는 종이 및 판지제조업으로 구분한다. 종이의 용도에 따라 인쇄용지, 신문용지, 위생용지, 골판지, 백판지 등으로 분류한다.

주 원료가 펄프 및 고지이고, 제조원가에서 원료비 비중이 높다. 일부 지종을 제외하고는 수출비중이 높아 환율도 수익성에 미치는 영향이 적지 않다. 제지산업의 내수시장은 상위 2~3개 회사가 총 생산량의 70~80% 수준을 차지하고 있는 과점구조를 나타내고 있다. 인쇄용지는 한솔제지 무림계열 한국제지 등이, 백판지는 한솔제지 깨끗한나라 세하 등이 경쟁 중이다.

지속적으로 새로운 수요 창출

국내 제지업체들은 1960~1970년대에 집중적으로 설립됐다. 이후 신문, 서적, 잡지, 카탈로그, 캘린더, 곡물 및 시멘트산업 등이 발달하면서 늘어나는 수요와 함께 안정적인 성장을 이어왔다. 1990년대에는 가전, 식품 농산물 포장산업의 발달로 제지산업의 성장기를 구가했다. 2000년대에는 홈쇼핑과 인터넷쇼핑몰의 급성장에 따른 택배산업의 급속한 성장으로 골판지와 백판지 수요가 늘며 여유로운 시기를 보냈다. 한편 1990년대에 집중된 설비 증설 때문에 업계는 내수 초과 물량을 수출 시장을 통해 해소해야 하는 상황에 직면하면서 수익성이 급감하는 상황에 내몰리기도 했다.

2000년대 중후반 인쇄용지 업계가 구조조정을 거치면서 인쇄용지 내수시장은 무림계열(무림페이퍼, 무림P&P), 한솔계열(한솔제지, 아트원제지), 그리고 한국제지 등의 과점체제가 구축됐다. 인터넷과 모바일 등 ICT(정보통신기술) 발달에 따른 전반적인 제지 수요 감소로 인해 공급과잉에 시달리던 인쇄용지 업계는 2014년부터 자구책으로 자율적인 설비축소를 단행했다. 대표기업인 한솔과 무림 양사가 총 83만t의 설비를 축소함으로써 수급구조가 크게 개선됐다.

수익성은 펄프·고지 가격, 유가, 환율에 영향

제지산업의 수익성은 펄프 및 고지가격, 유가, 환율 변화에 큰 영향을 받는다. 원재료 및 유틸리티 비용이 제조원가에서 차지하는 비중과 수출 의존도가 높기 때문이다. 지난해에는 낮은 펄프가격과 저유가, 고환율로 사상 최대 영업이익을 기록했다. 하지만 올해는 펄프가격의 강세가 지속되고 있고, 유가는 오르고, 환율도 하락해 전반적인 여건은 지난해에 비해 크게 약화된 상황이다.

제지업체들의 수익성도 올해 상반기까지는 지난해에 비해 크게 둔화됐다. 향후 수익성 회복은 제품 판매가격에 원가 상승분을 얼마나 전가시킬 수 있느냐에 달렸다. 과거에 비해 개선된 수급구조를 감안하면 수익성 개선은 가능할 것이다.

향후 제지산업은 외형은 저성장이 불가피하지만 안정적인 영업이익 창출이 가능하다. 공급과잉을 축소하기 위해 설비투자를 줄이면서 차입부담도 점진적으로 축소될 것이고, 재무구조는 양호한 수준을 유지할 전망이다.
새 먹거리 준비 중인 한솔과 무림의 전략

국내 대표 제지기업인 한솔과 무림의 최대 고민은 기존 인쇄용지 시장 규모가 국내는 물론 세계적으로 축소되고 있는 점이다. 이에 양사는 고부가가치 특수지 시장에 역량을 집중하고 있다. 한솔은 기업 인수합병(M&A)을 통한 글로벌 시장 공략에 집중하고 있고, 무림은 조림-펄프-제지로 이어지는 수직 계열화를 통한 원가 경쟁력 제고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한솔제지는 2019년에 감열지(영수증·라벨용지) 생산량을 32만3000t 규모로 확대해 글로벌 1위 감열지 전문기업으로 성장할 전망이다. 해외에서는 2013년부터 감열지 가공·유통업체인 샤데스, 텔롤, R+S사 등을 잇따라 인수하며 감열지 생산부터 유통까지 전 과정을 수직 계열화했다.

무림계열 역시 고부가가치 지종인 특수지와 기능지 개발 및 매출 확대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무림은 2011년 인도네시아 파푸아 지역에 약 6만4000㏊에 달하는 대규모 조림지를 확보했고, 2022년부터 상업생산을 통해 펄프의 주원료인 목재 칩의 안정적 조달이 가능해지면서 원가경쟁력을 확보할 전망이다.

박종렬 < 현대차투자증권 애널리스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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