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선하고 독특해" 젊은이들의 LP 사랑

지난 19일 서울 중구 회현동 지하상가에 위치한 국내 최대 중고 LP판매점 리빙사. 1966년 명동에 문을 열고 이후 이곳으로 이전했다. 최근 젊은 고객들이 부쩍 늘었다. 사진=조아라 기자

"영화 음악에 푹 빠졌는데 이어폰 말고 직접 귀로 듣고 싶었어요. 그러다 LP(바이닐)를 찾게 됐죠."

직장인 홍진우 씨(29)는 요즘 틈만 나면 소장하고 싶은 음악 리스트를 적고 있다. 지난해 개봉한 뮤지컬 영화 '라라랜드'를 인상 깊게 본 이후 부쩍 영화 음악에 대한 관심이 늘었다. 이 씨는 "라라랜드 LP가 한때 완판돼 구하기 힘들었다"며 "며칠 동안 공을 들인 끝에 우연히 인터넷에서 중고 LP 판매글을 보고 겨우 구했다"고 말했다.

영화 음악이 담긴 CD를 구매하거나 음악을 다운로드 또는 스트리밍해 들어도 되지만 그가 굳이 LP를 찾는 이유는 LP가 소장 욕구를 자극하기 때문이다. 지지직거리는 오랜 LP판에서 들리는 미세한 잡음이 독특하게 들리는 점도 매력으로 꼽았다.

◆ 다시부는 'LP붐'20~30대 관심 급증

18일 광화문 교보문고. 매장 입구에 여러 턴테이블이 진열 돼 있다.

음원 다운로드와 스트리밍에 익숙한 20~30대 가운데 LP와 턴테이블에 관심을 보이는 이들이 늘고 있다. 사실 LP로 음악을 들으려면 꽤 번거로운 과정을 거쳐야 한다. 우선 턴테이블을 장만해야 한다. 음악을 들으려면 직접 LP를 뒤집어야 하고, 보관을 잘못하면 자칫 판이 휘어질 수도 있다.

LP는 1970~1980년대 인기를 누렸지만 이후 테이프와 CD, MP3의 등장으로 설 자리를 잃었다. 회현동, 명동 등지에 위치한 전문 매장도 하나 둘 자취를 감췄다.

하지만 최근 10년새 판도가 조금씩 바뀌고 있다. LP에 향수를 느끼는 중장년층뿐 아니라 문화 콘텐츠 주 소비층인 20~30대의 관심이 부쩍 높아진 것이다. 반 세기 역사를 지닌 회현동 중고 음반 매장 '리빙사'의 이석현 사장은 "LP 구매 고객 50% 이상이 20~30대 젊은층"이라며 "음악에 관심 많은 초등학생과 중학생도 종종 보인다"고 전했다.

우리나라만의 현상은 아니다. 국제음반산업협회(IFPI)에 따르면 2015년 전 세계 LP 음반 판매량은 3200만 장으로 1994년 이후 최고치를 기록했다. 2008년(500만 장)에 비해 6배 이상 뛰었다. 미국에서는 LP 판매수익이 4억1600만 달러(약 4700억 원) 규모로 광고 기반 스트리밍 서비스 수익을 추월했다.

이렇게 되자 국내에서 종적을 감췄던 LP 제작 공장이 13년만에 부활했다. LP 생산업체인 마장뮤직앤픽처스는 올 6월 서울 성수동에 '바이닐팩토리'를 문 열었다. 아델, 테일러 스위프트 등 해외 팝스타부터 아이유, 지드래곤, 서태지 등 유명 가수의 LP가 발매되면서 각광받고 있다.

90년대 CD와 MP3의 등장으로 종적을 감춘 LP를 찾는 고객들이 늘고 있다. 광화문 교보문고에 판매되고 있는 LP와 턴테이블.

국내 오프라인 음반 유통 매장을 보유하고 있는 교보문고도 상품 라인을 강화하는 추세다. 1~2년 전부터 교보문고, 영풍문고 등 매장에서 턴테이블 상품이 눈에 띄더니 어느새 매대 한 켠에 자리잡았다. 교보문고 관계자는 "약 3년 전부터 LP와 턴테이블 시장이 활성화되기 시작했다. 특히 지난해 아날로그 감성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판매량이 크게 늘었다"고 했다.

실제로 지난해 1~9월 교보문고 LP 판매량은 전년 대비 166%, 턴테이블 판매량 역시 22% 증가했다. 서울레코드페어, 바이닐페스티벌 등 LP 관련 축제도 속속 생겨나며 '제2의 전성기'를 맞았다는 평가도 나왔다.

◆ 재조명되는 LP…젊은 층 '개성화' 수단

회현 지하상가에 있는 중고 LP 가게. 디지털 극단에서 몸소 움직이고 호흡해야 하는 LP에 끌리는 젊은이들이 늘어나고 있다.

젊은이들은 왜 번거로운 LP에 매력을 느끼는 것일까. '독특함'이 첫 손에 꼽힌다. 우선 생소하다. '감성'이 더해진다. 디지털의 극단에서 몸소 움직이고 호흡해야 하는 LP에 본능적으로 끌린다는 얘기다.

생전 처음 보는 LP를 직접 구매해 턴테이블 위에 올리는 행위 자체가 이들에겐 색다른 '경험'이고 '놀이'인 셈. 업계 관계자는 "젊은이들 눈에는 LP가 신선하고 '있어 보이는' 느낌을 주는 것 같다"며 "처음에는 호기심에 멋으로 샀다가 마니아가 되는 젊은이들도 많다. 사용하는 턴테이블과 스피커에 따라 달라지는 음색도 또 다른 매력"이라고 귀띔했다.

그동안 접했던 디지털 음원과 달리 풍미 있는 음질에 느껴지는 인간미와 정감이 오히려 약점이 아닌 강점이 됐다는 분석이다. 일반적으로 LP는 CD나 디지털 음원에 비해 음질이 깨끗하지 않다. LP와 턴테이블 재생 바늘이 부딪히는 소리가 음원과 뒤섞여 나오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하지만 LP 애호가들은 이 소리가 묘한 끌림을 준다고 입을 모았다.

이 같은 느낌은 세대 불문이다. 리빙사 이석현 사장은 "한 고객이 '그동안 들었던 음악은 2D고 LP 음악은 3D'라고 묘사하더라. 덜 정제됐다 해도 그만큼 입체적 느낌을 줄 수 있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선명도는 떨어지지만 잡음 속 편안함과 자연스러움이 인기 요인이라는 설명이다.

다시부는 LP붐. 90년대 점차 사라진 LP에 대해 관심을 갖는 젊은이들이 부쩍 늘었다. 당분간 인기는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

LP나 턴테이블은 인테리어로도 활용할 수 있다. 용산의 한 턴테이블 판매업자는 "기존 아날로그 턴테이블은 고가이기 때문에 50대 이상 기존 마니아들이 많이 갖고 있다"면서 "젊은층은 10만~20만 원대 중저가형 턴테이블을 구매해 입문용 또는 인테리어로 활용하는 경우가 많다"고 소개했다.

LP 붐은 잠깐의 유행을 넘어 당분간 일정 수요를 확보한 시장을 형성할 것으로 전망된다. 한 업계 관계자는 "소리가 풍성한 LP 특유의 음악을 즐기는 사람들의 수요는 꾸준히 있을 것"이라고 짚었다. 나만의 개성을 추구하는 젊은이들의 'LP 사랑'은 한동안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조아라 한경닷컴 기자 rrang123@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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