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EO 탐구 - 최희문 메리츠종합금융증권 사장

"ROE 4년 연속 선두…증권업계 롤모델이죠"'
금융가의 심장' 월가 출신
미국 이민 후 애널리스트 생활
새벽 출근에 새벽 퇴근은 일상
"숫자라는 총알 난무했던 전쟁터
고단했지만 소중한 경험 얻어"

"리스크를 감수하라"
부도위기 기업 낱낱이 분석
남들이 외면할 때 투자 '승부수'
기업금융 강자로 자리매김

사업 다각화 발판
적극적인 M&A로 덩치 키워
올해 자기자본 3조 규모 성장

일러스트=조영남 기자 jopen@hankyung.com

지난 12일 서울 여의도 메리츠종합금융증권 본사 15층에 있는 원탁회의실. 이 회의실 문은 오전 8시30분에 닫힌 뒤 4시간이 지나도록 열리지 않았다. 최희문 메리츠종금증권 사장을 비롯해 투자은행(IB) 사업을 맡고 있는 김기형 부사장, 길기모 최고리스크책임자(CRO), 장수원 법규준수팀장(변호사), 투자 및 심사 담당 실무자 등 10여 명은 점심도 거른 채 회의를 이어갔다.

메리츠종금증권은 매주 수요일과 목요일에 열리는 이 ‘딜(거래) 리뷰(검토) 회의’에서 진행 중인 모든 딜에 대해 심도 있게 토론한다. 딜을 계속 진행할지, 말지 여부도 이 자리에서 결론을 낸다.

결론이 나지 않으면 다음날 다시 논의한다. 특징은 과장이건, 대리건 거래 관련 실무자가 참석해 사장과 직접 얘기한다는 점이다. 최 사장은 “계급장 다 떼고 토론하는 자리”라고 표현한다. 그가 메리츠종금증권 수장을 맡은 2010년 이후 이 회사에 자리 잡은 격식파괴 기업문화의 한 단면이다.

◆피와 살이 된 월가 경험

최 사장은 중학교 1학년 때인 1978년 가족과 함께 미국에 이민을 갔다. 미국 매사추세츠주 애머스트대에서 경제학을 전공한 그는 졸업 후 ‘세계 금융의 심장’인 뉴욕 월스트리트에 입성했다.

1980년, 1990년대 전 세계 파생상품 시장을 주름잡았던 뱅커스트러스트(도이치뱅크가 1999년 인수)가 최 사장의 첫 직장이었다. 그는 이곳에서 기업금융 애널리스트로 사회생활의 첫발을 내디뎠다. 뉴욕에서의 생활은 화려한 겉보기와 달리 고달픈 나날의 연속이었다.

매일 새벽에 출근해 다음날 새벽 퇴근했다. 출퇴근 시간이 따로 없었다. 잠은 하루 2~3시간 자는 게 전부였다. 식사는 샌드위치로 해결하기 일쑤였다. 그는 월가에서의 생활을 “숫자라는 총알이 난무하는 전쟁터”라고 비유했다.

스물셋 청년이 접한 월가에서의 경험은 단단한 굳은살이 됐다. 그곳에서 “빠르고 명확하게 기업을 파악하는 눈을 키웠고, 위험(리스크)은 피해야 할 존재가 아니라 분석해야 하는 대상”이라는 점도 깨달았다.

최 사장은 주니어 사원 시절부터 “최고재무책임자(CFO)보다 재무제표 숫자들을 더 정확히 꿰뚫고 있다”는 평가를 받았다. 한국 자본시장에서 그에게 ‘구조화 금융의 달인’이란 별명이 붙은 것도 월가에서 쌓은 내공이 기반이 됐다. 구조화 금융이란 위험 관리 등을 위해 수익률이 비교적 낮은 자산을 변형하거나 합성해 수익률이 높은 금융투자 상품으로 바꾸는 것이다.

CSFB(Credit Suisse First Boston), 골드만삭스 등 외국계 투자은행(IB)에서 15년을 근무한 그는 한국을 떠난 지 25년 만에 귀국해 2002년 삼성증권에서 캐피탈마켓사업본부장을 맡았다. 한국에서 그는 선진 금융시장에서의 경험을 바탕으로 이전까지 찾아볼 수 없었던 금융투자 상품들을 잇따라 선보였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 한국 기업들은 신용부도스와프(CDS) 프리미엄이 올라 해외 자금 조달에 어려움을 겪었다. 삼성증권에 근무하던 최 사장은 기업들의 신용을 기초 자산으로 하는 FTD(first to default)를 한국에서 최초로 내놨다. FTD는 기초자산으로 삼은 기업 중 한 곳에서라도 채무재조정과 같은 신용사건이 발생하면 원금을 잃을 수 있는 파생상품이다. 국내 기업들의 기초체력(펀더멘털)을 세밀하게 분석한 최 사장은 FTD 상품의 구조를 잘 짜 기업 자금조달에 숨통을 틔워 줬다. 상당수 고객과 삼성증권도 수익을 챙길 수 있었다.

2009년 시장이 안정화되자 개인투자자들의 해외 투자 열망을 한발 앞서 파악해 브라질 채권을 한국에 본격적으로 소개했다. 세제 혜택과 브라질 헤알화 움직임, 금리 매력도를 면밀하게 분석했다. 삼성증권은 2009년부터 브라질 채권의 리테일(개인 고객) 판매를 시작해 투자 트렌드를 주도했다.

◆남들이 외면하는 곳에서 승부수

2010년 메리츠종금증권의 최고경영자(CEO)가 된 뒤엔 승부사로서의 면모가 본격적으로 빛을 발했다. 위기에 빠져 아무도 거들떠보지 않는 곳에서 최 사장은 기회를 찾았다.

2013년 자본시장에서 A그룹 핵심 계열사들의 부도설이 흘러나올 때였다. A그룹 계열사들이 자금난을 해결하기 위해 기업어음(CP)과 회사채 등을 찍어냈지만 사려는 곳이 없었다. 최 사장은 해당 업무 실무자와 끝장 토론에 나섰다. 그는 실무자에게 “A그룹이 위험한 게 아닌가”가 아니라 “A그룹의 어떤 점이 위험요인인가”를 물었다.

메리츠종금증권은 A그룹 계열사들의 그해 실적뿐 아니라 우발채무와 자산을 낱낱이 분석했다. 투자 대상 CP와 회사채의 상환 가능성이 크다고 판단해 과감하게 투자를 결정했다. 사들인 지 한 달반 만에 매각해 30%에 가까운 수익률을 올렸다.

2015년에는 업황 악화에 무너져가던 B사에 대규모 자금을 지원해 금융투자업계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은행 등 1금융권에선 자산가치 대비 대출 규모(LTV)가 높다는 점을 들어 대출을 꺼렸다.

최 사장은 LTV 숫자만 보고 넘기지 않았다. B사가 지분을 갖고 있는 계열사가 지나치게 저평가 상태라는 점에 주목했다. 메리츠종금증권은 그 계열사의 지분을 담보로 B사에 신용공여를 해줬다. 최악의 경우 그 지분을 갖게 돼도 손해가 아니라는 최 사장의 계산이 투자를 결정한 핵심요인이었다.

10년 넘게 최 사장과 호흡을 맞추고 있는 박태동 메리츠종금증권 글로벌트레이딩 총괄 상무는 “리스크도 분석 대상이라는 게 최 사장의 생각”이라며 “그는 잘못될 경우 떠안아도 손실을 보지 않을 것인지를 투자의 기준으로 삼아 실패 가능성을 낮춘다”고 설명했다. 리스크 자체보다 리스크를 감수하고라도 창출할 수 있는 부가가치에 집중한 덕분에 메리츠종금증권은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을 비롯한 기업금융 강자로 자리매김했다.

최 사장이 도입한 독특한 성과급 지급 시스템도 메리츠종금증권 성공의 핵심요인 중 하나로 꼽힌다. 최 사장의 지론은 “금융회사의 경쟁력은 사람에서 나온다”이다. 메리츠종금증권은 직원이 올린 수익의 절반을 성과급으로 돌려주는 파격적인 시스템을 도입했다. 60여 개 증권사 가운데 이런 성과 시스템을 운영하는 곳은 메리츠종금증권이 유일하다. 회사의 ‘잔근육’ 만들기가 어느 정도 마무리됐다고 판단한 최 사장은 3년 전부터 본격적으로 ‘덩치’ 키우기에 나섰다. 2014년 말 아이엠투자증권 인수, 2015년 4000억원 규모 유상증자, 지난해 메리츠캐피탈 지분 인수에 이어 올 6월에는 7000억원 규모의 상환전환우선주(RCPS) 발행을 통해 단숨에 자기자본을 3조원 이상으로 불렸다.

증권업계에서는 2020년 종금업 라이선스(면허) 만료를 앞두고 메리츠종금증권이 사업 다각화의 발판을 마련하려는 행보라는 해석이 나온다. 자기자본이 3조원 이상인 증권사는 자기자본 100% 내에서 기업 신용공여가 가능하고, 헤지펀드에 필요한 각종 서비스를 지원하는 프라임브로커 업무(PBS)도 허용된다.

메리츠종금증권으로 옮겨온 초기 최 사장은 기존 증권사들과는 다른 기업문화를 도입하고 튀는 투자 행보를 보여 ‘여의도의 이단아’로 불리기도 했다. 하지만 지금은 그에 대한 평가가 완전히 바뀌었다. 증권시황에 따라 출렁이는 천수답 경영 일색의 증권업계에서 ‘최희문호(號)’는 매년 꾸준한 성장세를 보이며 순항하고 있다.

2012년 500억원대였던 메리츠종금증권 순이익은 지난해 2500억원대로 늘었다. 지난 2분기에는 창사 이래 최대 규모의 분기 순이익(981억원)을 기록하며 올 상반기에만 1790억원을 벌어들였다. 메리츠종금증권은 최 사장이 CEO가 된 지 4년 만인 2013년 증권업계 자기자본이익률(ROE·순이익/자기자본) 1위에 올라 지난해까지 4년 연속 선두 자리를 지켰다. 그가 이끄는 메리츠종금증권이 증권업계 전체가 주목하는 롤모델이란 평가를 받는 이유다.

■ "격식 없애라"…소통 앞세운 최희문 사장

미국에서 학창시절을 보낸 최희문 사장(사진)은 실용주의가 몸에 배어있다는 평을 듣는다. 그가 2010년 메리츠종금증권 대표가 된 뒤 정착시킨 기업문화의 열쇠 말은 ‘프로·수평·소통·실질’이다. 그는 한국에 돌아와 일하면서 ‘한국 특유의 격식을 따지는 문화가 많은 비효율을 초래한다’는 사실을 절실히 느꼈다고 했다.

조직원 간의 원활한 의사소통을 방해하는 의전과 격식 등을 철저하게 배제하는 게 그가 강조하는 실질의 문화다. 메리츠종금증권에선 실무자들이 보고하기 위해 임원실을 찾아갈 필요가 없다. 전화, 이메일, 문자메시지 등으로 하면 된다.

고객을 만나는 자리가 아니라면 정장을 갖춰 입지 않아도 된다. 메리츠종금증권 트레이더들은 청바지에 운동화 차림으로 출근한다. ‘간단한 메모로 가능한 내용을 보고서 형식으로 만들거나 같은 내용의 보고를 이리저리 꾸미는 것도 시간 낭비’라는 게 최 사장의 생각이다. 최 사장은 이런 기업문화를 정착시키기 위해 ‘이렇게 하라’ ‘저렇게 하라’ 말로 하지 않고 스스로 실천에 옮겼다. 평소 넥타이를 매지 않고 출근하는 그는 업무와 관련해서도 실무자들과 직접 통화한다. 해당 분야 전문가라면 말단 직원이건, 임원이건 따지지 않고 의견을 듣는다.
대면 보고 일정을 잡는 대신 이메일과 문자메시지로 소통해 의사결정 시간을 빠르게 했다. 그는 평소 “회사 규모가 커질수록 관료화되는 경향이 있는데 항상 이를 경계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메리츠종금증권에는 전 직원들이 한자리에 모이는 회사 행사도 없다. 대신 최 사장은 딜(거래)이 마무리되면 함께 애썼던 직원들과 자신의 단골집을 찾아 저녁식사를 하면서 뒷얘기를 나눈다.

▶최희문 사장 프로필

△1964년생 △1987년 미국 애머스트대 경제학과 졸업 △1987년 뱅커스트러스트 입사 △2000년 CSFB(Credit Suisse First Boston) 이사 △2001년 골드만삭스 상무 △2002년 삼성증권 캐피탈마켓사업본부장 △2009년 메리츠종합금융증권 부사장 △2010년 메리츠종금증권 대표이사 사장

윤정현 기자 hit@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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