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점 조작'에 오염된 문화시장

유명 개봉 영화들도 '평점 조작' 비일비재
스트리밍·다운로드 수 늘려 음원 실시간 차트 끌어올려
장르 안가리고 불법 '성행'

"소비자 신뢰 떨어뜨리고 콘텐츠 창작 의욕 꺾어"
“감동적인 후기로 예매까지 하도록 만들 수 있습니다.”

서울 강남지역에 사무실을 둔 한 콘텐츠 홍보대행업체 대표는 “인터파크티켓의 뮤지컬 평점을 올려줄 수 있느냐”는 질문에 이렇게 답했다. 국내 최대 공연 예매 사이트인 인터파크티켓은 이 사이트에 등록된 평점이 네이버에서 해당 공연을 검색했을 때 첫 페이지에 노출되기 때문에 조작효과가 크다는 설명도 덧붙였다.

◆“몰입이 뭔지 가르쳐준 작품”

서울의 한 콘텐츠 평점 조작업체 사무실. 직원 3명이 벽을 따라 배치된 컴퓨터 앞에 앉아 뭔가에 몰두하고 있다. 평점 조작을 의뢰하면서 “성공한 사례를 보여줄 수 있느냐”고 요청하자 업체 대표는 최근 개봉했던 한 영화 얘기를 꺼냈다. 네이버에서 8점대의 양호한 네티즌 평점을 기록 중인 영화였다. 댓글은 2000개 넘게 달려 있었다.

그는 “네이버에 이 영화에 대한 높은 평점의 댓글을 1000개 넘게 달았다”며 “그렇지 않았으면 평점이 5~6점대로 떨어졌을 것”이라고 말했다. 댓글을 자세히 보니 ‘만점 평점’과 함께 “몰입이 뭔지를 가르쳐준 작품”이라는 호평이 눈에 들어왔다.

인터넷상 콘텐츠 평점 조작이 매우 심각한 수준이라는 점을 확인하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영화 홍보대행사에서 일하고 있다는 한 관계자는 “홍보대행을 하는 영화의 평점이 10점 만점에 7점 이하로 떨어지면 댓글 마케팅 업체를 섭외해 일을 맡겼다”고 전했다. 그가 평점을 조작 중이라고 지목한 영화들을 보니 이름만 들으면 알 수 있는 유명 개봉작이 즐비했다.

경쟁사나 경쟁작품을 비방하는 ‘평점 테러’ 작업이 병행될 때도 있다.

◆공연 영화 음원 등 장르 불문

평점 조작업체는 서울에만 수십 곳이 성업 중인 것으로 추정된다. 접촉은 인터넷 검색 등 공개된 통로로는 어렵다. 해당 분야를 잘 아는 사람의 소개를 받는 게 일반적이다. 합법적인 바이럴 마케팅회사로 홈페이지를 만들어두고 “인터넷 평점이 낮은 게 문제”라며 고객에게 은밀하게 조작을 제안하는 일도 잦다는 전언이다.

평점 조작은 장르를 가리지 않는다. 한 평점 조작업체 관계자는 “스마트폰 게임 앱(응용프로그램)의 차트 순위를 올려줄 수 있느냐”고 묻자 “다수의 앱스토어·플레이스토어 아이디를 확보하는 데 성공하면 가능하다”고 설명했다.

실시간 차트 순위가 흥행에 큰 영향을 미치는 음원 시장도 조작 의혹에서 자유롭지 않다. 주로 동시 접속자 수가 줄어드는 새벽에 다수의 ‘작업용 계정’을 통해 음원 스트리밍과 다운로드 수를 늘려 순위를 끌어올린다.

한 엔터테인먼트업계 관계자는 “1억원을 주면 차트 순위권 진입이 가능하다는 말이 공공연하다”고 말했다. 최광호 한국음악콘텐츠산업협회 사무국장은 “음원을 다운로드하고 서비스에서 탈퇴한 뒤 다시 가입해 재다운로드하는 ‘탈다’ 방식을 쓰면 기술적으로 추적이 어렵다”고 설명했다.

◆절반 이상 조작 댓글로 도배되기도
인터파크티켓에는 한 유명 공연에 대한 후기(평점 포함)가 2626개(9월 말 기준) 올라와 있다. 한 ID로 여러 개의 후기를 중복해서 올린 걸 1개로 계산하면 후기 수는 1143개로 줄어든다.

후기를 10개 이상 올린 ID도 43개나 된다. 이들 43개 ID가 올린 후기 655개 가운데 평점이 10점 만점인 건 510개(77.9%)고 8점 이상까지 합하면 639개(97.6%)에 달한다. 일부 ID는 만점으로 20개가 넘는 후기를 올리면서 내용은 거의 똑같이 썼다. 반면 다른 관람객의 공감을 많이 받은 후기는 상위 11개 가운데 5개가 평점을 최하점으로 준 것들이다.

평점 조작은 문화산업의 성장 동력을 떨어뜨리는 부메랑으로 돌아온다는 게 전문가들의 우려다. 성동규 중앙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부 교수는 “창작자의 역량이 공정하게 평가받을 수 있도록 자정이 시급하다”고 지적했다.

양병훈/박진우 기자 hu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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