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네이버 FARM]

20년간 3000여종 꽃밭 가꾼 아버지…20만명 찾는 관광 명소로 꽃피운 딸

입력 2017-10-12 18:56 수정 2017-10-13 03:01

지면 지면정보

2017-10-13A29면

아산 세계꽃식물원

꽃 같은 부녀
남기중 원장과 남슬기 LIAF 대표

희귀 식물보다 흔한 꽃에 꽂힌 아버지
사계절 꽃길 걷는 1만여㎡ 유리온실 만들고
KAIST 경영학 석사 출신 딸은 원예 체험과 꽃차 제품 등 선보여

충남 아산 세계꽃식물원은 1년 내내 꽃을 볼 수 있는 곳이다. 논밭 위에 세워진 유리 온실에 3000여 종의 꽃이 자란다. 아산지역 화훼 농민들이 힘을 합쳐 2004년 문을 열었다. 1만6530㎡(5000평) 규모의 식물원은 꽃 농산물 전시장에 가깝다. 식물원 교육센터 의자는 꽃 구근을 담았던 상자, 로비를 비추는 조명 재료는 화분 받침이다. 공사 현장에서 가져온 컨테이너로는 매표소를 만들었다. 남기중 식물원장이 직접 제작한 피라미드는 식물원의 상징 타워로 변신했다. 폐품에 가까운 물건들이 식물원을 구성하는 소재로 재탄생했다.

이 식물원엔 희귀 식물이 별로 없다. 화분이나 장식도 소박하다. 그런데도 매년 15만~20만 명이 이 식물원을 찾는다. 조금 투박한 것 같지만 그런 자연스러움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식물원과 남 원장에게 환호한다. 전시 온실 바로 옆엔 아산아름다운정원영농조합법인의 재배 온실이 있다. 지역 농민들이 20여 년간 꽃을 직접 키워온 곳이다.

남 원장은 꽃에 미친 남자다. 건국대 원예학과를 나와 종묘회사에서 꽃 수출 일을 했다. 1986년 아시안게임을 앞두고 화훼붐이 일자 직접 농사에 뛰어들었다. 1988년 서울올림픽을 앞두고 성화봉송로 주변에 심을 대규모 국화 주문을 받았다. 신이 나서 열심히 길렀다. 그런데 갑자기 주문이 취소됐다. 상당한 자금을 투자한 터라 타격이 컸다. 모든 것을 정리하고 호주로 떠났다. 2년 동안 현지에서 남의 땅에 농사를 지어주며 살았다.

호주에서 돌아온 그는 자신의 농산물을 키우고 싶었다. 농가 12곳과 힘을 합쳐 영농조합을 세웠다. 1994년 아산에 대규모 화훼농원을 조성했다. 이번엔 외환위기가 닥쳤다. 매출은 급감했고 조합원은 떠났다. 그러다 2002년 망했던 농원 일부를 바꿔 식물원을 조성하기 시작했다. 영농조합을 새로 구성하고 재배지 5만6200㎡ 중 1만6530㎡를 식물원으로 리모델링했다.

그게 바로 지금의 세계꽃식물원이다. 식물원의 꽃은 영농조합을 비롯해 농가에서 생산한 것들이다. 개관 소식이 알려지면서 자신의 식물을 전시해 달라고 가져오는 사람들도 있었다. 1만6530㎡의 공간이 석 달 만에 식물로 가득 찼다.

남슬기 LIAF 대표는 아버지 남 원장의 꽃 사랑을 그대로 보고 자랐다. 꽃 하나에 평생을 바쳐온 아버지를 존경했지만, 세상과 타협하지 않는 아버지의 고집불통이 답답할 때도 있었다고 한다. 2009년 대학을 졸업한 뒤 식물원 경영에 합류했다. 주변에선 그 스펙에 왜 시골에서 농사일을 하려 하냐고 물었지만 남 대표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식물원을 더 잘 보여주고 싶었다. 아버지의 투박한 열정을 더 멋지게, 더 세련되게. 하지만 영농조합과 식물원의 농부들은 서비스업에 미숙했다. 서비스에 초점을 맞춘 영농법인의 자회사를 세우자고 결심했다. 남 대표가 KAIST 경영학 석사(MBA) 학위를 받은 뒤 설립한 자회사가 LIAF다. ‘Life is a flower’의 앞글자를 땄다. “음식이 육체적인 배고픔과 목마름을 해결하듯이 꽃은 정서적 허기를 해결할 수 있지 않을까요.”

LIAF는 가든센터라는 공간을 통해 생활 속에서 꽃을 즐길 수 있는 다양한 방법을 소개한다. 원예 프로그램, 다양한 제품, 식음료 서비스까지. 그는 아버지에게 ‘우리다움’을 잃지 말자고 한다. 조금은 늦게 가도 괜찮다고 말한다.

식물원 입장료는 8000원이다. 비싸다고 하는 사람도 있지만 남 대표는 식물원에 전시된 꽃의 가치를 낮추고 싶지 않다고 했다. 그래서 소셜커머스에서 흔한 입장료 할인 같은 것도 하지 않는다. 식물 가격은 모두 정찰제다. 꽃이며 농산물에 대한 소비자 인식을 바꾸기 위한 시도다.
남 원장 부녀는 앞으로 꽃 문화가 제대로 자리 잡지 못한다면 한국의 화훼산업은 무너질 것이라고 했다. 그래서 그들은 일상에서 누구나 쉽게 접할 수 있는 꽃을 꿈꾼다. 그 접점이 식물원에도 있는 가든센터라고 본다. 외국처럼 화분이나 식물은 물론이고 상토, 비료, 농기구, 울타리를 쉽게 살 수 있는 곳. “지금 도문화센터가 근처에 많이 있듯이 가든센터도 지역마다 랜드마크처럼 생긴다면 꽃을 향한 사람들의 인식도 달라질 겁니다.”

정찰제를 중요하게 생각하지만 그동안 꾸준히 나눠온 것도 있다. 다육식물이다. 10년쯤 전부터 식물원 방문객에게 나눠준 게 100만 개를 넘었다. “식물원에 온다는 것 자체가 식물을 사랑할 수 있는 사람들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처음엔 별 관심이 없더라도 다육식물을 집에 가져가서 두고 보면서 식물 키우는 게 재미있는 일이란 걸 알게 됐을 겁니다.”

남 대표는 ‘꽃 한잔 드세요!’ 캠페인을 진행 중이다. 커피 한 잔처럼 꽃 한 송이를 일상에서 사자는 캠페인이다. “커피도 문화가 없었지만 테이크아웃 잔과 상점이 늘어나면서 자리 잡았죠. 꽃도 그럴 수 있지 않을까요. 멋지고 대단한 게 아니라 집에 김치 담는 통에 심어도 되는 게 꽃이거든요.” 아산=FARM 고은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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