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춘호의 글로벌 Edge]

되풀이된 '도시바의 비극'

입력 2017-10-12 18:15 수정 2017-10-13 09:32

지면 지면정보

2017-10-13A38면

오춘호 선임기자·공학박사 ohchoo@hankyung.com
최근 일본에서 인기를 끄는 경영서는 단연 《도시바의 비극(東芝の悲劇)》(오시카 야스아키 저)이다. 20년 넘게 도시바를 취재한 현직 기자가 도시바 실패의 본질을 파헤친 책이다. 회계 부정 스캔들에서 드러난 책임 회피나 파벌주의, 연공서열에 기반한 수직형 조직, 지나친 정부 의존 등을 짚고 있다.

GE 기술을 순전히 모방하고 상품화하는 데 주력한 것도 비판한다. 무엇보다 저자가 무게를 두는 건 과거 최고경영자(CEO)들의 행태다. 저자는 “도시바는 경제환경의 격변과 기술혁신의 속도에 대응하지 못한 것도 아니고 갑자기 강대한 라이벌이 출현해 시장에서 축출된 것도 아니었다”고 진단하면서 “조락(凋落)과 붕괴는 오로지 역대 CEO 중 인재가 없었기 때문”이라고 단언한다.

50년 만에 도시바 악습 재연

일본 특유의 인세이(院政: CEO가 임기가 끝나고 상담역이나 고문을 맡아 후임 경영진을 감독하는 일본 특유의 경영 시스템)가 심한 것도 지적한다. 이런 ‘실패의 DNA’들이 사원 20만 명의 피와 땀을 물거품으로 만들었다는 분석이다.

놀랍게도 51년 전인 1966년에도 같은 제목의 책 《도시바의 비극》(미키 요노스케 저)이 발간됐다. 이 책 또한 당시 도시바의 경영 실패를 다뤘다. 당시 도시바 조직의 폐단이 지금과 거의 똑같았다는 점은 더욱 충격적이다. 도시바는 2차 세계대전 후 성장을 계속했지만 1961년부터 급속한 침체가 이어졌다.

저자는 이런 침체가 당시 도시바 경영진의 극단적인 파벌싸움에서 기인한다고 설명했다. 부서 이기주의도 극심했고 책임 회피가 만연했다. 앞을 보지 못하는 이상한 엘리트 의식이 뿌리 깊었다. 저자는 서두에서 전후 만연했던 ‘대도시바(大東芝)정서’가 간부층에 뿌리 깊었으며 “이런 특권 의식에 의해 현실을 볼 수 없는 두려움이 도시바 비극의 핵심”이라고 지적했다.

개인보다 바꾸기 힘든 기업DNA
정작 미키의 책이 나온 뒤 도시바는 황금시대를 맞았다. 1970~1980년대 일본 경제의 호황시대에 편승해 실적을 올렸다. 도시바가 반도체 사업에 손을 댄 것도 이때였다. 하지만 도시바의 악성 DNA가 뿌리 뽑힌 것은 아니었다. 1990년대 이후 CEO들은 정계나 관계에 인맥 쌓기에 바빴다. 편가르기와 특권 의식도 다시 생겨났다. 기술자들은 외부 기술을 모방하기에 분주했다. 도시바를 병들게 했던 웨스팅하우스 인수도 일본 정부의 입김이 많이 작용했다. 인세이 시스템도 다시 부활했다. 2000년 사장을 지낸 니시무로 다이조는 ‘도시바의 천황’으로 불렸다.

이런 도시바의 행태는 일본의 전자산업이 기울던 2000년대 초부터 급속히 나타났다. 급기야 회계를 조작하고 비리를 저지르는 기업으로 바뀌었다. 경기 호황에서 가려있던 조직 문화의 악성 DNA가 튀어나온 것이다. 이 같은 DNA는 자정 능력을 파괴시키고 과거의 악습을 부활시켰다. 학계에서는 일반 개인의 DNA보다 조직의 DNA가 더욱 생명력이 있다는 지적도 있다.

도시바는 역설적으로 산요나 르네사스처럼 망하지는 않았다. 지금도 일본 경제산업성에는 간부 직할의 도시바 대책창구가 있다고 한다. 기업과 정부 간 밀착관계는 지속되고 있다. 오시카는 에필로그에서 사원들의 자주성 상실을 가장 한탄한다. 50년 동안 개인은 변해도 기업의 DNA는 변하지 않는다. 혁신 생태계를 만들기는 그만큼 어렵다.

오춘호 선임기자·공학박사 ohchoo@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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