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7년 튼튼한 국가재정 '위기극복 마중물'…2017년 늘어난 국가채무 '위기재발 도화선'

입력 2017-10-12 18:51 수정 2017-10-13 04:44

지면 지면정보

2017-10-13A10면

한국경제 창간 53주년

외환위기 20년 우린 달라졌나 (4) 나라 곳간 튼튼해졌다?
김대중(DJ) 전 대통령은 당선 이틀 뒤인 1997년 12월20일 임창열 당시 부총리 겸 재정경제원 장관을 불러 나라 곳간 형편부터 물었다. 외환위기를 맞아 정부가 국제통화기금(IMF)에 자금 지원을 공식 요청한 지 한 달째 되는 날이었다. 임 부총리는 “외환보유액이 38억달러에 불과하며 IMF 지원을 받더라도 한 달 뒤 만기가 돌아오는 외채를 갚기엔 역부족”이라고 답했다. DJ는 자서전에서 당시 상황에 대해 “충격이었다. 나라의 금고는 텅 비어 있었다. 기가 막혔다”고 적었다. DJ의 말은 반만 사실이었다. 다른 하나의 금고, 재정은 상대적으로 튼튼했다. 당시 국가채무는 60조3000억원 수준으로, 국내총생산(GDP)의 11.4%에 불과했다. 정부가 금융회사 부실 정리를 위해 168조7000억원에 달하는 공적자금을 신속히 투입할 수 있었던 것도 튼튼한 곳간 덕이었다.

“나라의 금고는 텅 비어 있었다”

재정건전성은 이처럼 위기 때 큰 힘을 발휘한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때도 그랬다. 외환위기 극복을 위해 막대한 공적자금을 쏟아부은 김대중 정부와 본격적으로 복지지출을 늘리기 시작한 노무현 정부를 거치면서 2007년 국가채무는 299조2000억원으로 불어났다. GDP 대비 28.7%로 10년 전에 비해 건전성 지표는 악화됐지만 그렇다고 금융위기에 대응할 실탄이 부족할 정도는 아니었다. 정부는 당시 국내 은행이 2009년 6월까지 도입하는 외채에 대해 1000억달러까지 3년간 보증하기로 했고, 이는 외화유동성 부족 문제를 해소하는 데 크게 기여했다. 재정의 발빠른 대응 덕에 한국은 2009년 마이너스 성장하는 추락을 피할 수 있었고, 이듬해 6.5% 성장하는 강한 회복력을 보였다.

문제는 그 이후였다. 재정건전성이 지속적으로 악화하면서 이제는 재정이 위기 극복의 마중물은커녕 위기의 도화선이 될 가능성이 있다는 경고가 나오고 있다. 지난해 국가채무는 626조9000억원, GDP 대비 38.3%로 외환위기 때와 비교해 채무 규모는 열 배, 채무비율은 네 배가량 급증했다. 정권마다 복지 확대 등 표심잡기 정책을 쏟아내면서 재원 조달 마련용 적자국채를 남발한 탓이다. 국채는 1997년 28조6000억원에서 지난해 587조5000억원으로 20배가량 늘었다.

김태준 동덕여대 국제경영학과 교수는 “재정건전성이 악화돼 정부가 재정운용 능력에 대한 대외 신뢰를 잃을 경우 조그만 위기에도 자본이 급격히 유출되는 등 금융과 외환시장이 동요할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늘어나는 사회복지 지출

재정건전성에 대한 위기감은 이번 정부가 들어서면서 특히 커지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이 역대 최대 규모의 복지 확대 공약을 내걸고 당선되면서다.

한국경제신문이 이영 한양대 경제금융학부 교수에게 의뢰해 작성한 ‘한국의 사회복지지출 수준과 속도 추정’ 보고서에 따르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기준으로 본 한국의 사회복지지출 비중은 지난해 10.4%(GDP 대비)에서 현 정부 임기 말인 2021년 12.7%로, 5년 새 2.3%포인트 높아질 것으로 추정됐다. 정부가 아동수당 신설, 기초연금 인상 등을 위한 복지지출을 2021년까지 연평균 9.8%씩 늘리기로 한 것을 감안한 수치다.

이런 증가 속도는 OECD 평균보다 훨씬 빠른 것이다. 1980~2015년 21개 OECD 국가의 사회복지지출 비중은 5년마다 평균 1.14%포인트씩 상승한 것으로 파악됐다. 문재인 정부의 복지지출 증가 속도는 2010년 재정위기를 겪었던 그리스(5년마다 2.44%포인트)나 포르투갈(2.09%포인트) 등 재정부실 국가와 비슷한 수준이다.

국가채무는 결국 미래세대의 빚

정부는 그럼에도 2021년 GDP 대비 국가채무비율이 40.4%로 충분히 관리 가능한 수준이라며 재정건전성에 문제가 없다는 견해다. OECD 국가의 평균 국가채무비율이 112.2%(2015년 기준)인 점을 감안하면 양호하다는 것이다.

하지만 임기 이후를 생각하면 얘기는 전혀 달라진다. 국회예산정책처가 추경호 자유한국당 의원에게 제출한 ‘문재인 정부의 주요 재정사업이 중장기적 국가재정여건 등에 미치는 영향’을 보면 장기적인 재정 악화는 현실로 나타날 가능성이 높다.
예산정책처는 △기초연금 인상 △아동수당 신설 △공무원 증원 △최저임금 인상분 지원 등 정부의 주요 4개 재정사업만 시행해도 국가채무는 2040년에 GDP 규모를 넘어설 것으로 예상했다. 국가채무 규모는 2020년 906조원, 2040년 4703조원, 2060년 1경5499조원으로 눈덩이처럼 불어날 것으로 추정됐고 국가채무 비율은 2020년 46.6%, 2040년 104.3%로 늘어나는 데 이어 2060년에는 194.4%로 200%에 육박할 것으로 분석됐다.

국가채무는 결국 미래 세대의 빚으로 돌아온다. 추 의원은 작년 말 국가채무 비율을 유지하기 위해 정부가 증세하면 1인당 세부담은 2016년 580만원에서 2060년엔 6403만원으로 11배가량 급증할 것으로 추정했다. 전문가들은 급속한 저출산·고령화에 따라 기존 복지제도를 유지만 해도 갈수록 지출이 급증해 재정 악화가 불가피한 만큼 정책의 속도 조절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강미은 숙명여대 미디어학부 교수는 “건전한 재정은 위기를 극복하게 하는 가장 큰 힘”이라며 “위기 때마다 국가채무가 크게 늘어났던 점을 감안하면 정치적 유혹에 흔들리지 말고 국가채무를 가능한 한 줄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김일규/이상열 기자 black0419@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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