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보굴레' 탓하며 성급한 판단 말고
미국 정치상황도 감안한 협상력 키워
신중하게 상호이익 설득해 나가야

김태황 < 명지대 교수·국제통상학 >
문재인 정부는 ‘나라다운 나라’, ‘사람 중심’ 재정 운용에 치중해 경제와 통상의 우선순위는 상대적으로 약화된 것 같다. 그나마 지난 8월22일 ‘코러스’(KORUS: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을 지칭하는 용어) 1차 공동위원회 특별회기에서 신임 통상교섭본부장의 대응력은 기대를 갖게 해줬다. 트럼프 대통령의 ‘KORUS 폐기’ 언급이 협상용 엄포인지 실제적 결단인지 그 진의가 불투명한 상황에서 우리 정부는 중대한 숙제를 풀어야 한다. 미국이 내심 폐기의 배수진을 친다면 우리는 최대한 긴 호흡으로 맞서야 한다. 삼성, LG 세탁기에 대한 세이프가드 발동이 곤혹스럽더라도 개정 협상은 별개의 사안으로 시간끌기를 해야 한다.

첫째, 한국의 대미(對美) 상품무역 흑자폭이 지난해부터 감소세를 나타내고 있으므로 협상 시한을 늦출수록 미국의 손실 주장을 약화시킬 수 있다. 올 들어 8월까지 대미 상품 수출은 전년 동기에 비해 2.5% 증가한 반면에 수입은 22.4% 늘어 상품수지 흑자규모는 32.2% 감소했다.

둘째, 서비스무역과 투자 추이를 고려할 시간을 더 확보할 필요가 있다. 미국의 대한(對韓) 상품무역 적자폭은 2011년 124억달러에서 2015년 280억달러로 증가한 뒤 2016년에는 277억달러로 감소세를 나타낸 반면, 서비스 무역의 흑자폭은 2011년 70억달러에서 2016년 101억달러로 증가했고 이런 증가세는 지속될 것으로 전망된다. 더욱이 지난 5년간 미국의 대한 투자액은 282억달러에서 391억달러로 38.7% 증가한 것에 비해 같은 기간 한국의 대미 투자액은 199억달러에서 409억달러로 2배 넘게 증가해 투자 규모가 역전됐다.

셋째,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 재협상 과정과 결과를 응용할 시간을 벌어야 한다. 넷째, 한·미 교역 불균형의 구조적 원인을 우선적으로 분석해야 한다. 트럼프의 시곗바늘대로 단판 승부를 하는 것은 무모한 만용이다. 다섯째, 우리나라 무역의 미국 의존도를 줄일 대안을 마련하는 데 시간적 여유가 더 필요하다. 미국과 중국 시장을 보완할 대체 시장 발굴의 시간을 조금이라도 더 확보해야 협상력을 높일 수 있다. 여섯째, 통상교섭본부의 정상화와 체력 단련을 위한 시간이 필요하다. 통상 전문인력이 4년 반이 지나 ‘헤쳐모여’를 했으므로 인력 보강과 팀워크 강화가 절실하다. 통상교섭본부는 오는 12월20일이 기한인 한·중 FTA의 후속협상으로 서비스와 투자 부문 협상도 병행해야 한다.
일곱째, KORUS는 통상문제인 동시에 안보문제와 직결돼 있으므로 신중한 입장을 견지해야 한다. 안보와 통상 중에서 하나를 얻기 위해 하나를 양보해야 한다는 일반적 협상 논리에 편승해 성급한 판단을 내려서는 안 된다. 여덟째, 우리 국민이 한·미 FTA 개정 협상 과정과 결과로부터 받을 영향력이 최소화될 수 있도록 적응 기간이 필요하다. 지난 5년간 대미 수출 주도 산업은 KORUS에 익숙해져 있다. 자동차의 경우 미국의 관세 2.5%가 지난해에 철폐됐다 하더라도 협정이 개정된다면 최우선적으로 경쟁력을 보강해야 할 부문이 될 것이다. 아홉째, 트럼프 방식의 보호무역주의는 논리적 근거가 취약한 정치적 전략이므로 한편으로는 엄밀한 논리적 대응력으로, 다른 한편으로는 정치적 공감대 형성으로 점진적인 협상을 해나가는 것이 효과적이다.

마지막으로, ‘트럼프 리스크’는 가장 영향력이 큰 변수다. 미국 정치와 정책의 불안정성을 지켜보는 것이 유리하다. 트럼프 행정부는 북핵문제를 지렛대로 삼아 KORUS 개정 협상을 상대적으로 신속하게 해결하기를 기대할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트럼프 리스크가 정치적 쟁점으로 가시화될수록 협상력을 높일 수 있을 것이다. KORUS가 코러스(chorus)로 울려퍼지지 못하고 독창이 되거나 억지 제창이 된다면 아름다운 화음은 소멸된다. 노무현 정부에서 시작된 KORUS의 화음이 문재인 정부에서 사라지는 역사적 역설이 현실이 돼서는 안 된다.

김태황 < 명지대 교수·국제통상학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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