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치정부, 분리독립 절차 유보

스페인 증시 움직이는 6개 기업
바르셀로나 본사 옮기기로 결정
이탈 땐 수십만개 일자리 사라져

독립시 EU서 배제돼 경제타격
S&P도 신용등급 강등 경고

카탈루냐 자치주의 분리독립 지지자들이 10일(현지시간) 카를레스 푸지데몬 카탈루냐 자치정부 수반의 분리독립 선언을 기다리며 환호하다가(사진 위) 선언 유보 연설에 실망한 표정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아래) 바르셀로나EPA연합뉴스

스페인으로부터 분리독립을 추진하던 카탈루냐 자치정부가 독립 절차를 잠정 중단하고 스페인 정부에 대화를 요구하고 나섰다. 하지만 스페인 정부는 대화할 의사가 없음을 분명히 했다. 유럽연합(EU)도 스페인 정부의 손을 들어줬다. 주민투표 이후 오히려 자치정부 위세가 약화되고 헌법적 질서를 강조하는 중앙정부에 정당성과 무게가 실리는 상황이다. 그 배경에는 카탈루냐 중심도시 바르셀로나에 본사를 둔 기업들의 엑소더스(탈출)가 있다.

◆‘독립 논의 중단’ vs ‘대화 못해’

카를레스 푸지데몬 카탈루냐 자치정부 수반은 10일 밤(현지시간) 자치의회 연설에서 “카탈루냐와 스페인 간 관계 재정립을 위해 대화가 필요하다”며 의회에 “독립 승인 절차를 몇 주간 중단해 달라”고 요청했다. 그는 “우리는 대화에 응할 준비가 돼 있다”며 스페인 정부와의 대화를 희망했다. 푸지데몬 수반은 지난주까지만 해도 ‘분리독립 찬성 의견이 승리한 것으로 공식 확인되면 48시간 이내에 독립을 선포한다’는 태도를 고수했다. 스페인에 대한 일종의 ‘투항’이라는 분석이 제기되는 이유다.

하지만 소라야 사엔스 데 산타마리아 스페인 부총리는 이날 “민주주의자 간 어떤 대화든 법의 테두리 안에서 이뤄져야 한다”고 말해 타협의 여지가 없음을 분명히 했다. 스페인 정부는 카탈루냐 자치정부의 분리독립 주민투표, 자치의회의 후속 심의가 위헌이라는 헌법재판소 결정에 따라 자치정부가 불법 행위를 계속하고 있다고 보고 있다.

◆중소기업까지 이전 움직임

푸지데몬 수반이 독립 절차를 중단한 것은 투표 이후 기업들의 엑소더스가 이어진 탓이라는 분석에 무게가 실리고 있다. 스페인 증시의 아이벡스(IBEX)35지수를 구성하는 핵심 대기업 가운데 7곳이 바르셀로나에 본사를 두고 있다. 이들 기업은 카탈루냐 지역의 부와 힘의 원천이다. 일자리도 여기서 나온다.

하지만 카탈루냐 독립 움직임이 일면서 이들 가운데 6개 기업이 본사 이전을 결정했다. 무엇보다 카탈루냐 최대 은행이자 스페인 3위 은행인 카이사방크가 발렌시아로 본사를 옮기기로 한 소식은 이 지역 기업과 주민에게 충격으로 다가왔다. 카탈루냐 2위 은행인 방코 사바델도 이전 결정을 내리면서 카탈루냐 경제는 크게 흔들렸다. 카탈루냐는 마드리드 못지않은 금융 중심 지역이다. 카이사는 3만2403명을 고용하고 있고, 방코 사바델도 1만7000명에게 일자리를 제공하고 있다.

중소기업들도 발 빠르게 이전을 준비하고 있다. 스페인 일간지 엘파이스 등에 따르면 이미 30여 개 기업이 마드리드 등으로 본사를 옮기기로 결정했고, 수십 개 기업이 이전을 심각하게 검토 중이다. 산업 투자는 계속 지연되고 있고 관광객 예약도 평상시의 절반으로 줄어들었다. 바르셀로나의 은행 지점에선 예금을 카탈루냐 외 지역으로 옮기려는 예금자들의 행렬이 길게 이어지고 있다.

일자리도 크게 줄어들 전망이다. 이들 대기업이 떠나면 약 10만 명의 일자리가 사라지게 된다. 중소기업을 포함하면 수십만 개의 일자리가 사라질 것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EU의 관세와 브랜드 손상 두려워

카탈루냐가 독립한 뒤 유럽연합(EU)에 독립국으로 참여할 수 있을 것인지에도 기업들은 상당히 부정적이다. EU 가입에는 회원국의 전원일치 동의가 필요한데 스페인이 반대할 것이 분명하다. 유로존에서 떨어져나가면 관세 혜택이나 유럽 금융권의 지원을 전혀 받지 못할 것으로 예상된다.

기업 신용에도 문제가 생긴다. 글로벌 신용평가사들은 카탈루냐 기업들에 부정적인 신호를 보내고 있다.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는 지난주 카탈루냐 지방정부 채권의 신용등급 전망을 부정적으로 바꿨다.
◆카탈루냐 급격하게 힘 잃을 수도

카탈루냐 지역 금융권과 기업들이 흔들리자 오히려 스페인 정부가 직접 나섰다. 루이스 데 귄도스 경제장관은 9일 CNBC와의 인터뷰에서 “카탈루냐의 독립이 현실화되지 않는다는 것은 너무나 명확하다”며 “시민들은 카탈루냐 지역 은행에 있는 예금에 대해 걱정할 필요가 없다”고 말했다.

기업들이 카탈루냐로 돌아오지 않는다면 바르셀로나 등의 지역은 힘을 잃을 것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엘파이스는 이날 사설에서 “바르셀로나의 투표는 오히려 스페인 정부에 분리 독립을 막을 정당성을 가져다줬다”고 지적했다.

오춘호 선임기자 ohchoo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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