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호 칼럼]

쌀에서 탈출해야 농업이 산다

입력 2017-10-11 18:08 수정 2017-10-12 09:39

지면 지면정보

2017-10-12A38면

농업 예산 40% 쌀 농사에 쏟아부어도
추수철마다 도심 메우는 농민단체 시위
'쌀=성역' 깨지 않는 한 농업에 미래 없어

김정호 수석논설위원
추수철은 추수철인 모양이다. 광화문 네거리에서 청와대 길목에 이르는 ‘시위 벨트’가 농민단체들로 메워지고 있는 걸 보면 말이다. 추석 전에는 지게에 볏단을 짊어지고 행진을 벌이더니 엊그제는 나락을 잔뜩 실은 화물차까지 동원해 차량 시위를 벌였다. 레퍼토리는 다르지 않다. ‘쌀값 3000원 보장’ ‘100만t 정부 매입’ ‘밥쌀 수입 중단’ 등이 내건 표어들이다.

정부가 내놓은 수확기 쌀 수급안정 대책이 농민 기대에 못 미치는 것은 아니다. 농민을 섭섭하게 대할 리 없는 문재인 정부다. 공공비축미 35만t과 추가격리 물량 37만t 등 모두 72만t을 조기에 매입하기로 했다. 시장격리 물량은 작년보다 7만t이나 많은 사상 최대다. 사실상 올해도 초과생산분 전량을 매입해 시장에 풀리는 것을 막겠다는 것이다.

그런데도 농민단체는 막무가내다. 쌀값 1㎏당 3000원을 보장하려면 100만t을 매입해야 하며, 밥쌀용 쌀 수입도 중단해야 한다는 것이다.

하긴 농민단체의 억지가 어제오늘 얘기는 아니다. 재배 면적을 줄이라고 해도 무턱대고 농사짓고 소출은 정부가 알아서 처리해 달라는 게 지금의 벼농사다. 정부 대책이 조금이라도 삐딱해 보이면 시위대를 꾸리면 그뿐이다.

쌀은 지천이다. 생산량을 아무리 줄인다 해도 늘 400만t을 웃돈다. 올해도 모내기철 가뭄이 심각했다지만 400만t은 너끈하다는 전망이다.

수요는 줄곧 감소세다. 2005년만 해도 80㎏ 한 가마였던 1인당 쌀 소비량이 올해는 60㎏ 밑으로 떨어질 것이라고 한다. 수요를 아무리 넉넉히 따져도 380만t 정도다. 매년 20만~30만t이 남아돈다.

게다가 ‘쌀 원리주의자’들의 방해로 시장 개방 시기를 놓쳐 세계무역기구(WTO) 규정에 따라 의무수입해야 하는 물량이 매년 41만t이다. 차곡차곡 쌓인다. 재고가 넘친다. 351만t이나 된다. 나라 곳간에 쌓여 있는 것만 따져도 233만t이다. 적정 재고의 무려 네 배다.

그러니 가격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 쌀값이 가마당 12만원대까지 폭락해 난리를 벌인 게 작년이다. 농가 소득 보전을 위해 정부가 지급하는 변동직불금이 WTO가 정한 농업보조금 한도를 초과하는 초유의 사태가 벌어진 이유다.

근본적으로 쌀을 성역으로 여기는 발상 자체가 문제다. 개방과 경쟁, 소비자의 선호 변화를 도외시한 채 불변의 보호와 지원 대상으로 안주해온 쌀이다. 케케묵은 식량 안보론과 쌀 주권론은 쌀값을 반드시 정부 보조금으로 떠받쳐야 하는 신줏단지로 만들었다. 그렇다 보니 농업 예산의 40%가 쌀에 투입된다. 예산이 죄다 쌀에 매몰되니 농업 경쟁력이 높아질 리 없다.

우루과이라운드(UR) 대책 이후 지난해까지 농업에 퍼부은 보조금이 220조원 수준이라고 한다. 천문학적 규모다. 하지만 농업 경쟁력이 나아졌다는 흔적은 없다.

10년째 연 3000만원 선에 머물러 있는 농가 소득은 지난해 오히려 감소했다. 쌀 소득 감소가 가장 큰 요인이었다. 쌀이 농가 소득의 발목도 잡고 있는 것이다. 그나마 농가 소득을 떠받친 게 각종 보조금이다. 농가 소득의 원천이 정부 보조금이라는 게 말이 되는가. 모두 세금이다.
게다가 농업 보조금의 상당 부분은 필요한 신기술 도입 농가나 영세농에 흘러가지 않고, 일부 농업법인 등 소수 특권층에 무분별하게 지급됐다. 얼마 전 농업법인 조사 결과가 그렇다. 정부 지원을 받는 5만2293곳 가운데 20%인 1만1096곳이 ‘무늬만 농업법인’으로 밝혀져 시정 및 해산명령을 받았다. 세금이 줄줄 샌다.

표를 흔들어대는 농민단체와 이들의 눈치나 살피는 정치권의 포퓰리즘에 이미 농업은 멍들 대로 들었다. 쌀에 집중하는 지금 정책으론 농업의 미래는 없다.

우리와 사정이 비슷한 일본도 아베 신조 총리 주도로 쌀 정책을 뿌리부터 흔들고 있다. 변동직불제는 이미 없앴고, 고정직불제는 내년에 폐지키로 했다. 또 쌀 보조금을 줄이고 다른 작물에 주는 보조금을 확대하는 쪽으로 보조금 정책을 개편했다.

쌀을 포기하자는 얘기가 아니다. 농업은 국제 경쟁력 있는 산업으로 키워야 한다. 성장과 수출, 일자리 창출의 보고로 만들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 쌀 중심의 농정에서 탈출하자는 것이다. 그래야 6차 산업도, 스마트농업도 가능하다. 쌀에서 벗어나야 농업이 산다.

김정호 수석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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