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경제 창간 53주년
외환위기 20년 우린 달라졌나

"문재인 정부도 개혁의지 이어가야"

정규직 노조 경직성 깨는 동시에
비정규직 교육·지원 강화하고 여성·고령자 취업 대책도 세워야
부실기업 구조조정 미흡한 편…중단없는 개혁 추진해야

빠른 시간안에 외환위기 넘기고 경쟁력 끌어올린 한국 국민
스스로 자랑스러워할만

'글로벌 위기' 전이 속도 빨라져…국제통화체계 강력한 개혁 필요

1997년 12월3일 한국 정부와 국제통화기금(IMF)의 구제금융 서명 현장을 TV로 지켜보며 테이블 한쪽에 앉아있던 은발의 사내를 기억하는 국민들이 지금도 많다. ‘미스터 IMF’ ‘저승사자’로 불리며 한국에 고강도 개혁을 주문한 미셸 캉드쉬 전 IMF 총재(84)다. “한국 경제의 낡은 경제 구조를 바꿔야 한다”는 날 선 비판과 “이번 개혁이 한국 경제에 ‘축복’이 될 것”이라는 위로를 동시에 건넸던 그는 20년이 지난 지금, 그 결과를 어떻게 보고 있을까.

그에게 인터뷰를 요청하는 이메일을 보내자마자 몇 분 만에 ‘그러자’는 답신이 날아왔다. 그의 답신에는 IMF의 최근 연례보고서 등을 훑어보며 공부한 흔적이 가득했다. 계속되는 추가 질문에도 꼼꼼한 답변이 이어졌다. 그만큼 캉드쉬 전 총재는 한국의 외환위기에 대해 하고 싶은 말이 많은 듯했다. 그는 인터뷰 내내 한국 경제의 성과와 경쟁력에 대해 칭찬을 이어갔다. “한국 국민들은 외환위기 이후 보여준 20년간의 성과에 스스로를 자랑스러워해야 한다”고 했다. 그러면서도 미완의 개혁에 대한 경고를 잊지 않았다. “한국이 처한 구조적 문제점들을 해결하지 못하면 위기의 파장은 더 길어지고 깊어질지 모른다”고 진단했다.

▷건강은 어떤가.

“매우 좋다. 프랑스 중앙은행 명예총재, 아프리카발전패널(APP) 회원으로 활동하면서 다양한 세계 석학, 전문가들과 교류하는 등 외부 활동을 하고 있다. 이들과의 토론을 통해 전 세계 경제, 사회 분야의 위기와 기회를 조망하고 대응책을 모색하는 일에 관심이 많다. 지난 2월에는 호르스트 쾰러 전 독일 대통령, 파스칼 라미 전 세계무역기구(WTO) 사무총장 등 글로벌 리더들과 함께 20~30년 후 미래 전망과 문제점을 분석한 ‘더 월드 인 2050’을 출간했다.”

1997년 12월3일, 국제통화기금(IMF) 구제금융 합의서에 서명하고 있는 임창열 경제부총리(가운데)와 이경식 한국은행 총재(오른쪽). 왼쪽은 미셸 캉드쉬 IMF총재. /한경DB

▷한국 외환위기 원인에 대해서는 아직도 의견이 분분하다.

“우선 정부와 한국은행 등의 대응이 잘못됐다. 1997년 후반까지도 한국 정부는 사태의 심각성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했다. 미국, 일본 등의 지원을 받으면 해결할 수 있을 것이라고 낙관했다. IMF의 지원 제안이나 외환 관련 정보 공개 요구도 거부했다. 결국 사태가 더욱 악화되고 나서야 IMF에 손을 내밀었다. 물론 대응 방식의 문제가 위기의 직접적 원인은 아니다. 이전부터 쌓여온 문제점이 많았다. 후진적인 금융 시스템과 낡은 기업 지배구조, 비효율적인 노동시장 등이 대표적이다. 이 때문에 치료 강도도 세질 수밖에 없었다. 가장 취약한 분야는 금융이었다. 한국 정부는 한국은행 독립성을 강화하는 내용의 한국은행법 개정안을 통과시키고 금융감독기구를 통합하는 금융개혁법도 마련했다. 부실 금융회사 퇴출, 공적 자금 투입 등의 조치도 뒤따랐다. 기업 분야에서도 WTO 규정에 대한 자율규제 준수에 따라 많은 조치가 취해졌다. 부실기업 구조조정이 진행됐고, 수입 규제가 완화됐다. 또 자본시장 개방, 기업 지배구조 선진화, 강력한 노동시장 개혁 등이 필요했다. 외환위기 이전에 이 같은 조치를 취했다면 위기를 예방할 수 있었겠지만 긴 시간이 필요한 개혁에 과감히 나선 정부가 없었다.”

▷구조조정과 대규모 실직 사태 등에 따른 국민들의 상처가 상당히 컸다. 외환위기에 대해 여전히 트라우마를 갖고 있다.

“당시 고강도 처방은 불가피한 측면이 있었다. 국민들이 상당한 고통을 겪었다는 점을 잘 알고 있다. 하지만 당시 고통을 외면하고 일시적인 조치에 그쳤다면 한국의 구조적 개선은 불가능했을 것이다.”

▷정부는 IMF의 권고에 따라 공공, 노동, 금융, 기업 등 네 가지 분야에서 개혁을 단행했다. 한국의 개혁 성과에 대해 어떻게 평가하나.

“외환위기 직후 출범한 김대중 정부는 정말 대단한 노력을 기울였다. 한국 경제는 빠르게 회복됐을 뿐 아니라 안정된 기반을 다졌다. 21세기 첫 10년 동안 글로벌 경제는 정보기술(IT) 거품 붕괴, 글로벌 금융위기, 유럽 국가들의 재정파탄 등으로 상당한 경제적 충격에 시달렸다. 하지만 한국 경제는 외부 충격에도 불구하고 탄탄한 성장을 이어갔다. 물론 외환위기를 유발했던 모든 문제점이 해결된 것은 아니다. 하지만 결과는 IMF 총재 시절 예상했던 수준을 뛰어넘었다.”

1999년 12월, 김대중 대통령이 ‘IMF 2년 국제포럼 만찬’에서 미셸 캉드쉬 IMF 총재와 건배하고 있다. 강경화 현 외교부 장관(왼쪽 두 번째)이 당시 통역을 맡았다. /한경DB

▷한국의 외환위기에 따른 개혁 조치가 여러 가지 부작용을 심화시켰다는 지적도 있다. 이를테면 기업들의 보수 경영, 기업가 정신 위축 등이 대표적이다.

“안정성에 대한 집착에는 반대할 이유가 없다. 아무리 긍정적인 조치라도 부작용이 없을 수는 없다. 하지만 외환위기 이후 채택된 일련의 조치를 통해 한국은 특유의 역동성과 잠재력을 일깨웠다. 긍정적인 점은 이후 차기 정부들도 줄곧 개혁에 대한 끈을 놓지 않았다는 점이다. 그후 개혁은 한국 경제의 일상으로 자리 잡고 있다. 이런 정신이 흐트러지면 안 된다. 현 정부도 개혁의 속도를 유지해 나가야 한다.”

▷외환위기 이후 기업들은 강도 높은 재무구조 개선과 사업 구조조정을 단행했다. 하지만 여전히 가야 할 길이 멀다는 의견들이 있다.

“전반적인 구조조정 수준은 매우 양호하다. 재무 건전성은 우수한 수준이며 지배구조 문제는 개선의 여지가 있다. 일부 부실기업도 존재한다. 이들 기업의 사업 구조조정이 추가로 이뤄져야 한다. 그에 따라 불이익을 받게 되는 근로자들을 지원하기 위한 사회적 조치도 뒤따를 필요가 있다. 기업 구조조정은 성장을 위해 가장 필수적인 분야다. 기업의 건전성을 높여야 투자와 고용을 늘리고 한국의 국내총생산(GDP)을 끌어올릴 수 있다.”

▷외환위기 이후 개혁이 가장 미진한 분야는 어디라고 보는가.

“세계경제포럼(WEF) 경쟁력 지수에서 보여지듯 한국은 우수한 거시경제 환경과 첨단 산업 인프라를 갖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금융시장 발전과 노동시장 선진화의 두 가지 분야에서 미흡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이번 정부에서도 가장 노력해야 되는 분야들이다. 특히 노동 분야는 외환위기 직후 한국 정부와 IMF가 도입한 사회 개혁 조치들이 제 기능을 못하고 있어 아쉽다. 계속 파행을 보인 노사정위원회가 대표적이다. 한국 노동시장도 여전히 많은 문제를 지니고 있다. 노동시장 이중구조가 고착화되면서 청년 실업자가 늘고 정규직, 비정규직 간 불평등도 심화됐다. 노동시장의 유연성을 높이는 동시에 기업이 비정규직 고용을 자제하도록 유도해야 한다. 비정규직에 대한 직업훈련도 강화해야 한다. 노동시장의 여성 참여 비율도 높여야 한다. ”

▷한국 경제가 직면한 위협은 어떤 게 있나.

“한국 경제의 놀라운 성취에 대해 한국 국민들은 스스로를 자랑스러워해야 한다. 하지만 2012년 이후 성장 잠재력이 조금씩 낮아지고 있다. 1997년과 같은 방식의 유동성 위기가 재연될 가능성은 낮지만 새로운 구조적 위기가 다가오고 있다는 얘기다. 빠른 고령화, 노년 빈곤층 확대, 소득 양극화, 노동시장 왜곡 등이 뇌관이 될 수 있다. 몇몇 분야의 취약한 산업 경쟁력, 높은 가계 부채 등도 생산성 약화를 유발하는 요인들이다. 향후 10년 안에 또 다른 금융위기가 올지 모른다는 점을 외면하면 안 된다. 유동성의 문제가 아니라 시스템의 문제임을 인식해야 한다.”
캉드쉬는 누구?
환란때 고강도 개혁 주도…'구원투수' '저승사자' 별명


미셸 캉드쉬는 외환위기를 기억하는 한국인들에게 매우 낯익은 이름이다. IMF의 구제금융 프로그램에 따라 많은 부실기업과 은행들이 문을 닫으면서 실업자들이 길거리에 쏟아졌고, 이를 주도한 캉드쉬 전 총재는 ‘저승사자’라는 별명을 얻었다. 캉드쉬의 고강도 개혁에 대한 평가는 아직도 엇갈린다. 한국 경제의 체질 개선을 이끈 ‘구원투수’라는 찬사와 가혹한 조치로 부작용을 양산했다는 비판이 혼재돼있다.

캉드쉬 전 총재는 1933년 프랑스에서 태어나 파리대를 졸업하고 파리정치대에서 석사 학위를 받은 뒤 공무원 생활을 시작해 1982년 재무부 장관 자리까지 올라갔다. 유럽 경제공동체(EEC) 통화위원회 의장, 프랑스 중앙은행 총재 등을 거쳐 1987년 7대 IMF 총재가 됐다. 지금은 프랑스 중앙은행 명예총재로 있으면서 고령에도 여전히 활발하게 저술과 강연활동을 하고 있다.

고경봉 기자 kgb@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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