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경제 창간 53
외환위기 20년 우린 달라졌나

은행 퇴출 → IT기업 재취업 → 실직 → 치킨집 창업 → 신불자
"지난 20년간 경제적으로 뒷걸음질 치기만 했다"
1998년 6월29일. 서울 적선동 동화은행 본점에 근무하던 김모 대리(51·현재 무직)는 TV 저녁 뉴스를 보다 청천벽력 같은 소식을 접했다. 몇몇 은행이 구조조정 대상에 올랐다는 얘기는 들었지만 자신이 일하던 곳이 퇴출 명단에 오를 것이라곤 생각하지 못했다. 그날 이후 김 대리의 인생은 180도 달라져버렸다.

김씨는 다음날부터 명동성당으로 출근했다. 동료들과 함께 은행 퇴출의 부당성을 주장하며 3개월을 살았지만, 결국 은행으로 돌아가지 못했다. 몇 푼 안 되는 퇴직금도 자사주 매입을 위해 빌린 돈을 갚는 데 거의 들어갔다.

살기 위해 무슨 일이든 해야 했다. 6개월간 구직활동의 결과는 성업공사(현 한국자산관리공사) 전산 계약직. 은행 다닐 때의 절반 수준으로 떨어진 봉급은 어린 두 딸을 키우기엔 턱없이 부족했다. 비정규직 노조를 만들고 회사에 처우 개선을 요구했지만, 돌아온 건 계약직이라는 냉대와 권고사직뿐이었다.
어둠의 끝에서 실낱같은 기회는 찾아왔다. 2000년대 초반 정보기술(IT) 열풍을 타고 우후죽순 생겨난 조그만 벤처기업에 일자리를 얻은 것. 하지만 벤처기업 신화는 채 2년도 못가 신기루처럼 사라졌다. 30대 중반이 넘어선 김씨를 받아주는 곳은 어디에도 없었다.

마지막 승부수로 은행 다닐 때 마련한 집을 담보 잡아 2006년 치킨집을 열었다. 하지만 난데없이 조류인플루엔자(AI) 사태가 터지고, 글로벌 금융위기로 경기가 위축되면서 가게 운영은 어려워져만 갔다. 카드빚을 돌려가며 유지했던 가게를 접은 것은 2015년. 김씨에게 남은 건 6000만원에 달하는 채무와 신용불량자라는 족쇄뿐이었다. 김씨는 “은행이 없어진 뒤 20년간 사회 경제적으로 뒷걸음치기만 했다”며 “당시 같이 은행을 관둔 대다수 동료가 비슷한 처지일 것”이라고 말했다.

김순신 기자 soonsin2@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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