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상 공세' 수위 높이는 미국…'속수무책' 당하는 한국

불확실성 커진 미국 시장
세탁기, 태양광 전지·패널…2조4000억원 수출 차질

15년 만에 세이프가드 초읽기
ITC "한국 세탁기·태양전지 미국 산업에 심각한 피해" 판정

냉전시대 규제도 동원
한국산 철강제품 상대로 미국 안보피해 여부 조사명령

미국 국제무역위원회(ITC)가 지난 5일 수입세탁기로 인해 자국 세탁기 산업이 피해를 입었다고 판정하면서 삼성전자와 LG전자의 미국 세탁기 수출에 빨간불이 켜졌다. /연합뉴스

미국 국제무역위원회(ITC)가 지난 5일 한국산 세탁기 수입으로 자국 산업이 피해를 입었다는 판정을 내려 삼성전자와 LG전자의 대미 수출에 제동이 걸릴 가능성이 높아졌다. 특히 미국 정부가 세탁기뿐 아니라 철강, 태양광, 페트(PET·폴리에틸렌 테레프탈레이트) 수지, 변압기 등 한국의 주요 수출품에 대한 통상 규제를 동시다발적으로 추진하고 있어 업계의 불안감이 높아지고 있다.

◆잇따르는 美 통상 규제

8일 산업통상자원부 등에 따르면 미국 ITC는 오는 19일 자국 세탁기 산업에 대한 세이프가드(긴급수입제한 조치) 발동을 위한 공청회를 연 뒤 12월께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에게 구제조치안을 보고할 예정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후 60일 이내 최종 구제안을 확정해 발표한다. 이는 ITC가 한국산 세탁기 수입으로 자국 기업의 피해가 인정된다고 판단한 데 따른 후속 조치다. 삼성과 LG가 미국에 수출하는 세탁기 매출은 연간 1조원 안팎에 달한다. ITC는 지난달 말에는 한국과 중국 등 지역에서 수입하는 태양광 전지 및 패널도 자국 산업에 심각한 피해를 입혔다고 판정했다. 이 역시 세이프가드 규제를 내놓기 위한 사전 심사 절차다. 한국 기업들의 태양광 전지·패널 수출 규모는 연간 12억달러(1조4000억원)에 이른다.

세이프가드는 원산지에 관계없이 제품 수입을 제한하는 것으로 자유무역을 선호하는 선진국들은 거의 사용하지 않는 통상 규제다. 미국도 가장 최근 사례가 15년 전 수입 철강제품에 8~30%의 관세를 부과한 것이었다.

한국 기업을 겨냥한 다른 통상 규제도 잇따르고 있다. ITC는 지난달 26일 한국 등 5개 국가가 미국으로 수출하는 페트 수지에 대한 반덤핑 조사에 착수했다. 또 지난 6일엔 2012년부터 올해 말까지 한국산 전력 변압기에 매긴 반덤핑 관세 연장 여부를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이에 앞서 트럼프 대통령은 4월 한국 등에서 수입한 철강제품이 미국 안보를 침해하는지 여부를 조사하라는 행정명령에 서명했다. 이 법은 미국과 소련이 긴장관계에 있던 냉전시대(1962년)에 만들어진 것이다.

◆“통상규제 공정하지 않다”
안덕근 서울대 국제대학원 교수는 “미국 제조업체들이 보호무역을 앞세운 트럼프 정부가 들어선 이후 해외 경쟁 기업에 대한 제재를 강하게 요구하고 있다”며 “이런 요구를 받은 미 행정부는 자국 업체에 지나치게 유리한 방향으로 통상압력을 가하고 있다”고 말했다.

삼성과 LG를 ITC에 제소한 미국 가전업체 월풀은 과거 5년간 평균 수입 물량으로 국가별 수입 쿼터를 할당하고 쿼터를 초과한 물량에 대해서는 특별관세(47.9%)를 부과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하지만 삼성과 LG는 자사의 수출 확대가 세이프가드 발동에 필요한 핵심 요건인 ‘예측하지 못한 급격한 수입 증가’와 ‘심각한 산업 피해’ 등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반박하고 있다. 월풀의 시장 점유율이 소폭 하락하긴 했지만 미국 세탁기 시장이 커지면서 매출과 이익은 오히려 늘어났다는 항변이다. 월풀의 세탁기 시장 점유율은 2012년 41.8%에서 2016년 38.4%로 3.4%포인트 하락하는 데 그쳤다. 그런데도 ITC는 이번에 한국 기업의 해명 대신 월풀의 일방적 주장에 손을 들어줬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미국 상무부가 4월 한국산 유정용 강관의 반덤핑 관세율을 최대 24.92%까지 인상한 것도 부당한 통상 규제 사례로 꼽힌다. 무역협회 관계자는 “당시 상무부 판정에 동원된 무역특혜 연장법상 ‘불리한 가용 정보(AFA)’나 ‘특정 시장 상황(PMS)’ 조항은 세계무역기구(WTO) 협정 위반이라는 설이 다수”라며 “최종 조치가 확정되면 WTO에 제소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좌동욱 기자 leftking@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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