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 포럼]

재활로봇 상용화, 늦지만은 않았다

입력 2017-09-28 18:38 수정 2017-09-29 00:32

지면 지면정보

2017-09-29A33면

수술로봇 다빈치처럼 주목받는 재활 로봇
로보캅같이 하반신 마비환자 걷게 도울 것
건강보험 의존 벗어나 범부처적 육성해야

방문석 < 서울대 의대 교수·재활의학 >
척수를 다쳐 마비가 온 환자들과 치료 중 하게 되는 면담은 20년 넘게 재활의학 교수로 일해온 필자에게도 어려운 일이다. 다시 걸을 수 있을지, 영영 마비된 채 휠체어 생활을 해야 하는지에 대한 질문에 적절한 답과 대안을 제시해야 할 때가 가장 난감하다.

한때 줄기세포 등 신경 재생에 대한 의학적, 사회적 관심이 높았던 적이 있다. 하지만 치료 현장에 적용하기에는 더 많은 연구가 필요하다. 그런데 직접 신경이 살아나지 않아도 마비된 다리를 본인의 의지대로 움직일 방법이 있다. 보행을 위한 치료에 로봇을 활용하는 것이다.

로봇산업과 기술의 발달은 의료 분야에도 많은 변화를 몰고 오고 있다. ‘다빈치’ 로봇으로 불리는 수술용 로봇은 국내 병원에서도 여러 수술에 활용되고 있다. 최근에는 재활 치료와 장애인의 삶을 보조하는 분야 재활 로봇이 주목받고 있다. 상용화될 정도로 발전된 것이 마비된 환자를 걸을 수 있게 하는 보행 로봇이다.

보행 로봇에 대한 아이디어는 영화와 관련이 많다. 낙마 사고로 목을 다쳐 전신이 마비된 영화 ‘슈퍼맨’의 주인공 크리스토퍼 리브는 생전에 트레드밀(러닝머신)에서 보행 재활 치료를 받아 화제가 된 적이 있다. 그러나 그는 “실제 걷는 것은 아니고 낙하산 슈트 같은 장치에 매달리고, 여러 명의 치료사가 마비된 내 다리를 걷듯이 움직여줄 뿐”이라고 했다. 숙련된 물리치료사 두세 명은 있어야 가능한 치료다. 비용이 많이 들고 효율도 좋지 않아 경제력이 없다면 누구나 리브처럼 받을 수 있는 치료도 아니었다. 지금은 그 역할을 치료용 보행 로봇이 하고 있다. 팔다리를 움직이는 동력이 있는 로봇이 센서를 통해 환자의 의지를 감지해 트레드밀 위에서 걷는 동작을 가능하게 해준다. 대표적 제품인 스위스 호코마의 ‘로코맷’은 세계에 수백 대가 보급돼 있고, 국내에서도 뇌졸중 환자와 척수 손상 환자의 보행 재활에 쓰이고 있다. 7, 8년 전 국제세미나에서 호코마가 자사 제품을 소개할 때 세계 보급 현황을 지도에 표시해 보여준 적이 있다. 흥미롭게도 북한에도 한 대가 있는 것으로 지도에 표시돼 있었다. 회사에서는 직접 판 기록은 없다고 한다. 아마도 당시 국제적인 금수 조치에도 불구하고 최고 권력자 김정일의 뇌졸중 치료를 위해 정상적이지 않은 경로를 통해 도입한 것으로 여겨진다.
영화 ‘아바타’에서는 하반신이 마비된 전직 해병대원이 가상현실과 아바타를 통해 다시 전사로서 활약하고, ‘아이언맨’에서는 백만장자가 특수 제작된 슈트를 착용하고 걷고 뛰고 하늘을 날기까지 한다. ‘로보캅’이나 ‘아이언맨’에 나오는 로봇처럼 보행을 가능하게 해주는 로봇을 ‘웨어러블 보행 로봇’이라고 한다. 원리는 간단하다. 엉덩이와 무릎 부분을 움직이는 동력 장치가 있는 프레임 형태의 외골격 로봇을 입듯이 착용하는 것이다. 이전의 하지 보조기에 소형화된 동력 장치와 본인 의지대로 조종할 수 있는 위치 센서, 컴퓨터, 배낭처럼 등에 메는 배터리가 결합된 것이다. 현실에서는 아이언맨처럼 유연하지는 않고 아직 로보캅처럼 기계적인 걸음걸이만 가능하다. 2012년 런던마라톤 때 척수 장애로 하반신이 마비된 영국의 클레어 로마스가 이스라엘제 보행 로봇을 착용하고 42.195㎞ 풀코스를 완주해 화제가 됐다. 당시 마라톤 코스 완주에 걸린 시간은 16일이었다.

현재 이 분야의 상용화에 앞서가는 나라는 스위스, 미국, 일본, 이스라엘이다. 한국에서도 여러 대학 및 연구소에서 비슷한 시제품을 개발한 적이 있지만 제품화는 한참 뒤처져 있다. 이를 극복하려면 개발자들의 열정, 초기 단계부터 수요자인 장애인과 의료인이 참여하는 연구 풍토, 관련 분야 스타트업에 대한 정부 지원 등이 절실하다. 그다음 단계는 국제 기준에 맞는 임상연구를 해 안정성, 실용성을 인증받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중요한 것은 적절한 가격에 구매가 이뤄지는 것이다. 일본의 요양보험, 미국의 일부 민영 의료보험, 퇴역 군인에 대한 보훈의료 혜택이 그 예라 할 수 있다. 우리나라 건강보험의 저(低)수가 정책으로는 관련 산업이 성장하지 못할 것이다. 이 분야 산업이 성장해 국내는 물론, 외국의 장애인도 한국산 재활 로봇의 혜택을 보려면 건강보험에 의존하는 현재의 형태에서 벗어나 범부처적인 관련 산업 육성과 지원이 필요하다.

방문석 < 서울대 의대 교수·재활의학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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