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표 등록 시도했다 무산
예외 적용받은 사업자에게 2015년 상표권 소송 당해
대표 "고유지명이 상표라니"
허영만 화백의 만화 ‘식객’은 한국인이 잘 몰랐던 전국 음식과 숨은 맛집을 소개해 큰 인기를 얻었다. 이 만화에는 국내 대표 불고깃집으로 ‘사리원불고기’가 소개됐다. 사리원을 운영하는 나성윤 대표는 고향인 황해도 사리원식 불고기를 팔던 외할머니로부터 1992년 가게를 물려받았다.

나 대표는 서울을 중심으로 아홉 개 직영매장을 운영하며 해외 진출을 꿈꿨다. 하지만 2015년 8월을 기점으로 모든 게 바뀌었다. ‘사리원’이라는 할머니의 간판은 사리현으로 바꿔 달아야 했다. 간판이 바뀌자 필리핀 파트너도 태도가 바뀌었다. 가맹사업이 어려울지도 모른다고 통보해 왔다. 레시피만 내어주고 계약 해지를 당하기 직전이다.

시작은 2년 전 받은 내용증명 한 통이었다. “사리원불고기가 상표권을 침해했으니 가게 이름을 바꾸라”는 내용이었다. 이어 서비스표권 침해 중지 등 민사소송뿐 아니라 형사고발(서비스표권 침해)까지 당했다. 이후 사업은 뒷전, 법원과 변호사 사무실을 드나들어야 했다. 자부심이던 ‘사리원’이라는 간판과 메뉴 이름도 지난 5월 ‘사리현’으로 바꿨다. 백화점 입점도 물거품이 됐다.

내용증명을 보낸 사람은 대전에서 ‘사리원면옥’이란 상호로 냉면집을 운영하는 김래현 대표였다. 그 역시 증조할머니가 운영하던 가게를 물려받았다. 사리원면옥은 1996년 대전 특허청에 상표를 출원했다. 이를 근거로 ‘사리원불고기’ 간판을 내리라고 요구했다.

나 대표는 사리원면옥 상표 출원 4년 전인 1992년부터 ‘사리원불고기’를 써왔기 때문에 억울하다고 했다. “황해도 사리원시는 특허청에서 상표 등록을 금지하는 ‘현저한 지명’에 해당하기 때문에 특정인이 독점할 수 없다”는 얘기다. 상표법 제33조는 ‘현저한 지리적 명칭이나 그 약어, 또는 지도만으로 된 상표는 상표 등록을 받을 수 없다’고 명시하고 있다. 많이 사용하는 언어를 상표로 등록시켜주면 사용의 자유가 침해되고 혼란도 발생한다는 취지다.
특허청도 1988년 이후 15건의 ‘사리원’에 대한 상표 등록을 거절했다. 남포 해주 강계 등 북한 도시들도 ‘현저한 명칭’에 해당한다는 이유로 거절당했다. 나 대표도 이를 알고 ‘사리원불고기’를 상표 출원하려다 포기했다. 이에 대해 특허청 관계자는 “사리원면옥은 현저한 지리적 명칭에 해당은 하지만 ‘등록된 상호’라는 예외 조항의 적용을 받아 등록이 가능했다”고 말했다. 이 예외 조항은 2002년 삭제됐다.

하지만 특허법원은 특허청과는 다른 판결을 내렸다. “사리원에 대한 일반 수요자 인지도(19.2%)가 낮아 현저한 지명으로 볼 수 없다”며 1, 2심 모두 김 대표의 손을 들어줬다. 김 대표 측 변호인인 김앤장이 한 자체 여론조사 결과가 근거였다. 나 대표 측은 대법원에 항소했다.

나 대표는 “30곳 이상이 사리원을 식당 상호로 사용하고 있다”며 “근거가 불분명한 상표권 소송으로 치열한 레시피 개발 등을 통해 20년 이상 키운 브랜드 가치가 한순간에 날아가는 것은 심각한 문제”라고 했다.

외식업계에는 상표 문제로 곤란을 겪는 경우가 적지 않다. 이금호 법무법인 다래 변리사는 “사업을 시작하기 전에 반드시 동종 업계에서 ‘이미 등록된 상표가 아닌지’ 점검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이유정 기자 yjlee@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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