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네이버 FARM]

1200만원짜리 유기농한우 처음 키워낸 산청 농부 "동물복지 한우 1호 도전합니다"

입력 2017-09-28 15:41 수정 2017-09-28 15:49

‘음머~.’ 방목장과 연결된 축사의 문이 열리자 송아지들은 앞다퉈 달려가기 시작했다. 넓은 풀밭에서 송아지들은 여유로운 한때를 즐겼다. 따사로운 햇볕 아래서 일광욕을 하기도 하고, 나무 밑 그늘에서 시원한 바람을 맞기도 했다. 풀을 뜯으며 배를 채우는 송아지들도 있었다.

지리산과 황매산이 만나는 곳. 경남 산청군 차황면에서는 이렇게 자유롭게 뛰노는 송아지들을 쉽게 볼 수 있다. 이문혁 산청군광역자연순환농업영농조합 대표가 운영하는 농장이다. 이 대표는 국내 최초로 ‘유기농 한우’를 키워낸 주인공이다. 이 대표의 농장에서 자라는 한우는 유기농 사료만 먹고, 방목장을 드나들며, 상대적으로 넓은 축사에서 생활한다.

이 대표는 유기농 한우을 어떻게 길러낼까. 궁금증을 풀기 위해 이 대표의 농장을 지난주(9월 18일) 찾았다. 이 대표는 “유기농 한우를 만든 것은 메뚜기 쌀”이라고 했다. 또 “이제는 최초의 유기농 한우농장을 넘어 국내 1호 동물복지 한우농장이 되는 것이 목표”라고 덧붙였다. 그의 이야기를 좀 더 자세히 들어보자.

◆“나는 한 게 없다. 메뚜기 쌀이 했지”

유기농 한우로 인증을 받기 위해선 몇가지 기준을 충족해야한다. 우선 사료를 모두 유기농으로 써야 한다. 사료로 쓰는 곡물(조사료)을 유기농으로 재배해야하는 것은 물론 곡물 등을 배합해 만든 배합사료의 원재료도 모두 유기농 작물을 사용해야 한다.

공간 기준도 있다. 한우 수소의 경우 한 마리당 7.1㎡의 공간이 확보된 축사에서 키워야하며 이보다 2배 넓은 운동장이 있어야 한다. 일반적인 한우농장에 비해 3배 가량 넓은 공간에서 키우는 것이다. 소들이 마시는 물도 사람이 마실 수 있을 정도로 깨끗한 것만 써야 한다는 규정도 있다.

이 대표는 “일반 농가들이 가장 기준을 맞추기 어려운 것은 공간보다는 사료”라고 말했다. 공간이야 축사를 넓게 짓는 것이 생각보다 어렵지 않지만 조사료와 배합사료를 모두 유기농으로 쓰려면 일반 사료에 비해 사료 비용만 50%가량 더 든다. 이 대표는 “유기농 한우가 산청군 차황면에서 시작된 배경도 이와 관련이 깊다”고 말했다. 차황면이 유기농 사료를 구하기에 적합한 곳이라는 게 그의 설명이다.

차황면은 한우보다는 쌀로 유명했던 곳이다. 1980년대부터 이곳에서 생산된 메뚜기 쌀은 친환경 농산물의 시작이기도 했다. 메뚜기 쌀은 ‘농약과 살충제 등을 사용하지 않고 유기농으로 재배해 메뚜기가 출몰하는 논에서 자라는 쌀’이라는 의미를 담은 이름이다. 1990년대 초반 부산 YWCA를 통해 전국적으로 알려지며 ‘메뚜기 잡기 축제’가 열리기도 했다.

1990년대 중반 유기농 인증제가 도입됐을 때 차황면은 전체가 친환경 단지로 인증을 받았다. 지리산과 황매산이 만나는 분지 형태의 지형이라 농약 성분이 외부로부터 들어올 일이 없다고 판단한 정부가 지역 전체에 인증을 해준 것이다. 이 대표는 “지역 전체가 인증을 받았기 때문에 우리는 차황면에서 생산되는 벼의 볏짚과 겨울에 이모작으로 심는 보리 등을 사료로 사용하면 자연스럽게 유기농 사료를 먹일 수 있게 된다”며 “지리적 이점이 전국 최초의 유기농 한우를 생산할 수 있었던 배경”이라고 설명했다.

◆메뚜기 쌀 후속작이 필요하던 시점...축산 전공자는 고향을 택했다

1990년대 친환경 쌀 바람을 주도했던 메뚜기 쌀은 1990년대 말부터 차츰 힘을 잃어갔다. 다른 브랜드 쌀이 많아지면서 차별화가 희미해졌고, IMF 사태가 터지며 쌀 값이 떨어졌다. 메뚜기 쌀로는 안된다는 위기감이 지역을 휘감았다.

경상대 축산학과를 졸업하고 농촌진흥청 등에서 일하던 이 대표가 고향인 차황면에 돌아온 것이 이 무렵이었다. “메뚜기 쌀에 이어 뭔가 새로운 소득원이 필요한 시점이었습니다. 벼농사에 축산을 결합하면 지역의 소득이 높아질 수 있다고 생각했죠.”

이 대표는 귀향 후 지역에 흩어져 있는 축산 농가들을 찾아가 ‘유기에 의한 순환 농법’에 대해 알리기 시작했다. 유기 순환 농법은 유기농으로 재배한 쌀의 부산물인 볏짚 등을 사료로 쓰면서 유기농 한우를 키우고 한우를 키우는 과정에서 발생한 배설물로 친환경 퇴비를 만들어 농사에 도움을 주는 식으로 상호작용하는 형태의 농법이다. 전 과정이 유기농으로 진행된다는 점에서 일반 순환농법과 다르다.

수년 간의 설득 끝에 2004년 이 대표는 지역의 150개 농가를 모아 차황친환경축산영농조합법인을 결성했다. 볏짚 뿐 아니라 청보리 라이그라스 호밀 옥수수 등 사료용 곡물을 재배하며 친환경 인증을 신청했고 축사 환경도 개선했다.

마침 FTA 광풍 속에 우리 농축산물을 고급화해야 한다는 분위기가 조성되면서 정부의 지원도 받았다. 이 대표는 “생산비 증가분의 대부분을 군으로부터 지원받을 수 있었기 때문에 초기 투자의 어려움을 극복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2007년 이 대표는 국내 최초로 유기농 한우 인증을 받았다. 현재는 28개 농가에서 총 585마리의 한우를 키운다. 모두 유기농 인증을 받은 곳들이다. 농가당 사육 마릿 수는 20~50마리로, 대부분 직접 유기농으로 농사를 지으며 축사까지 운영한다. 이 대표는 유기농 사료를 직접 생산할 환경은 안 되지만 유기농 축산을 하려는 농가들에 사료를 판매하는 사업도 하고 있다. 사료 판매액만 연간 5000만원이 넘는다.

◆백화점 소비자 사로잡은 ‘건강한 먹거리’

이 대표는 유기농 한우의 가장 큰 장점으로 안전한 먹거리라는 점을 꼽았다. 이 대표는 “소를 키울 때 방목 등을 통해 소가 받을 수 있는 스트레스를 줄이고, 유전적으로 검증이 되지 않은 유전자변형곡물(GMO) 사료를 쓰지 않는다는 점에서 다른 소보다 건강하다고 볼 수 있다”며 “2011년 대규모 구제역 파동 때 차황면이 청정지역이었던 것도 이를 뒷받침한다”고 말했다.

맛은 어떨까. 이 대표는 “유기농으로 키웠다고 해서 맛이 더 좋다고 할 수는 없다”고 선을 그었다. 유기농 한우는 맛이나 외형이 아니라 ‘클린 미트’라는 관점에서 접근해야한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다.

실제로 유기농 한우는 일반 한우에 비해 1++ 등급을 받기 어렵다. 등급을 좋게 받기 위해선 마블링이 중요한데, 인위적으로 지방을 축적시키는 사료를 먹이지 않기 때문이다. 방목장에서 뛰어놀며 지방보다 근육이 발달하기도 한다.

그러면서도 이 대표는 검사 성적을 바탕으로한 자랑은 아끼지 않았다. “우리 농장의 유기농 한우 검사성적을 보면 지방산 중 올레인산 성분 비중이 50%가 넘어요. 올레인산은 풍미와 감칠맛을 내는 성분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일반적으로 한우의 올레인산 비중이 약 45%인 것과 비교하면 약간 많긴 하죠.(웃음)”

2007년 유기농 한우가 처음 세상에 나온 후 롯데, 현대, 신세계, AK 등 백화점 상품기획자들이 앞다퉈 이 대표를 찾아왔다. “유기농 한우가 상업용으로 나온 게 처음이었으니까 백화점간 경쟁도 치열했죠. 하지만 가격이 일반 한우보다 최소한 35% 비싸야 하고 별도의 유기농 판매 매장을 만들어야 하는 등 조건이 까다로워 대부분은 발길을 돌렸어요. 현대백화점만이 끝까지 남았고, 이후 10년간 인연이 지속되고 있습니다.”

지금도 산청군광역자연순환농업영농조합에서 생산한 유기농 한우는 우선적으로 현대백화점으로 간다. 매년 1등급 유기농 한우 100마리를 납품한다. 한 마리당 가격이 1000만~1200만원으로 일반 한우(700만~800만원)보다 30~40% 비싼 한우다.

고급 한우만 골라 파는 현대백화점의 다른 한우보다도 소비자 가격이 15%가량 비싸지만 서울 압구정본점과 무역센터점 등 일부 매장에서만 판매해도 전량 소진될 정도로 인기다. 이번 추석 선물세트 판매전에서도 준비한 물량이 추석을 2주 앞두고 품절됐다.

이 대표는 “지방이 적고 소량만 나오는 안심 부위의 경우 엄마들이 아이 이유식용으로 사용하기 위해 도축 일정에 맞춰 미리 예약 주문을 할 정도”라고 설명했다.

1등급을 받지 못한 소는 농장 인근에 있는 가공공장에서 가공식품으로 만들어 판매한다. 사골곰탕, 다짐육 등은 자체 온라인몰에서도 구매할 수 있다. 최근에는 곰탕에 고기를 넣은 고기곰탕도 개발했다.

◆새로운 도전, 국내 1호 동물복지 한우 농장

안전한 먹거리에 대한 이 대표의 관심은 더 엄격한 기준인 동물복지 농장으로 향하고 있다. 이 대표는 “국내 최초로 동물복지 한우 농장이 되겠다”고 말했다.
현재 국내에서 동물복지 농장 인증을 받은 곳은 총 138곳이다. 계란을 생산하는 산란계 농장이 94개로 가장 많고, 닭고기를 생산하는 육계 농장이 23개로 뒤를 잇는다. 돼지와 젖소 농장도 각각 13곳, 8곳이 동물복지 인증을 받았다. 하지만 한우와 육우 등 소고기를 생산하는 농장 중 동물복지 인증을 받은 곳은 없다. 유럽의 기준을 그대로 따르다 보니 곡물 사료 비중이 50%를 넘어야 한다는 기준을 충족하는 곳을 찾기가 어렵다고 한다. 한우협회는 현재 국내 현실에 맞게 곡물 사료 비중을 낮추는 쪽으로 인증 기준 변경을 요청한 상태다.

이 대표는 “내가 직접 관리하는 농장은 인증 기준을 바꾸지 않은 상태에서도 동물복지 농장의 조건을 갖추고 있다”고 말했다. 곡물사료 비중은 60%가 넘고 방목장까지 갖추고 있어 동물복지 농장 인증을 받기에 충분하다는 것이 이 대표의 설명이다. 이 대표는 “지난달 인증 신청을 한 후 실사까지 마쳤다”며 “이르면 이달 내로 절차가 마무리돼 1호 동물복지 인증 농장이 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고 말했다.

직영 농장이 동물복지 인증을 받은 후에는 조합의 다른 농장도 차근차근 동물복지 기준에 맞는 농장으로 바꿔간다는 계획이다. 이 대표는 “조합 회원인 28개 농가가 키우는 500여 마리의 한우는 모두 동물복지 한우로 키워내겠다”며 “소비자들도 안전한 먹거리의 가치를 알아주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산청=FARM 강진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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