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란법’은 관습에 도전한 법
논란될수록 노이즈 마케팅 효과 나서 환영
이제 첫 걸음마 뗐을 뿐, 최소 10년 후에야 진정한 효과 볼 듯
이 법은 처벌 위한 게 아니라 상식적 사회 만들기 위한 법
좀 더 직군 현실에 맞게 쉽고 단순화한 매뉴얼 필요
직무 관련성 관련 해석 너무 복잡
김영란법 때문에 특정 업종에 피해 줬다 한다면
관행과 소비행태 바꾸는 게 우선
일선 공무원, 교사들 환영
교수, 언론계는 아직 익숙해지는데 시간 걸릴 듯

허문찬 기자 sweat@hankyung.com

이른바 ‘김영란법’이라 불리는 ‘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이 28일 시행 1년을 맞이한다. 한국경제신문은 국민권익위원장 시절인 2012년 이 법을 발의한 김영란 전 대법관(60·사진)과 27일 서강대 법학전문대학원의 연구실에서 약 2시간 20분동안 특별 인터뷰를 진행했다. 김 전 대법관은 현재 서강대 법학전문대학원 석좌교수로 재직 중이다.

그는 매우 소박한 차림새였다. 전직 대법관이라고 하기엔 믿어지지 않을 정도로 소탈했다. 김 전 대법관은 때로는 유쾌하게, 때로는 진지하게 분위기를 조절해 가며 대화를 나눴다.

▶감회가 남다르실 것 같습니다. 느낌이 어떠세요.

“아직 뭔가 감회라고 말하기엔 이르다고 생각해요. 이제 첫 걸음마를 뗐잖아요. ‘김영란법’은 그동안의 관습에 도전한 법입니다. 지금까지 사람들이 사회 생활을 하면서 당연하게 생각해 왔던 걸 당연하지 않다고 한 것이니 정착에 오래 걸릴 것이라고 봐요. 전 적어도 10년은 지나야 이 법이 우리 사회에 정착하리라고 전망합니다.”

▶아무래도 저 역시 기자, 시쳇말로 ‘기레기’다 보니 이 법에 관심이 많았습니다.

“그래도 언론에 얼마나 고마운지 몰라요. 언론에서 꾸준히 ‘김영란법’에 대해 다뤄준 덕분에 노이즈 마케팅 효과가 생겨서 사람들에게 법 이름 넉 자가 확실하게 새겨졌거든요. 법의 정식 명칭은 너무 길어서 모른다 해도, ‘김영란법’이 무엇이고 왜 만들어졌는지에 대해서 사람들끼리 열띠게 토론했잖아요. 소리 소문 없이 묻혀 버리는 법률들이 얼마나 많은데요. 전 앞으로도 언론에서 이 법에 대해 자주 기사로 다뤄줬으면 좋겠어요. 그런데 왠지 이 기자는 ‘김영란법’에서 자유로울 것 같은데요.(웃음)”

▶어떤 계기로 이 법의 아이디어를 떠올리셨나요.

“법안을 처음 제안한 건 2011년이고, 발의한 건 이듬해였어요. 하지만 아마 진짜 이 법의 필요성을 실감하기 시작한 건 제가 판사 생활을 하기 시작했을 무렵이었던 것 같아요. 지금은 좀 상황이 나아졌을지 모르겠지만 제가 판사였을 당시만 해도 변호사들이 판사들을 상대로 금품과 향응 제공을 정말 많이 했어요. 선물은 예사고, 발령날 때마다 난 화분이 쏟아져 들어왔어요. 그게 과연 진정 저를 축하하기 위함이었을까요? 아니죠. 제가 판사이기 때문이죠. 판사에게 잘해줘야 나중에 사건 담당할 때 뭔가 자신에게 유리하게 될 것이란 기대감이 있기 때문에 변호사들이 잘해준 것이죠. 그렇지만 그 때는 그걸 마냥 거절하기도 애매했어요. 주는 사람에게 모욕감을 안길 수 있다는 염려도 있었고, 동료들과 마찰이 있을지도 모른단 걱정도 있었고요. 그래서 업무와 연관된 청탁을 거절할 수 있는 ‘법적인 핑계’가 절실히 필요하다고 생각했어요. 한국의 뇌물 처벌 관련법은 다른 어느 국가와 견줘 봐도 상당히 엄격하지만, 뇌물 직전 단계인 네트워크 형성 단계에서 오가는 것에 대해선 관련법이나 매뉴얼이 없었거든요.”

▶현재 이 법의 시행이 원래의 취지와 맞게 간다고 보십니까.

“어려운 질문이네요. 사실 어떤 면에선 맞게 가는 것 같고, 어떤 면에선 많이 아쉬워요. 원래 이 법의 목적은 공직자와 교사, 교수, 언론인 등 사회에 공적인 영향력을 행사하는 모든 사람들이 부정한 청탁이나 물품을 받아선 안 된다는 걸 강조하는 겁니다. 그런데 이른바 ‘3-5-10’이라고 하죠? 식사 3만원, 선물 5만원, 경조사비 10만원 기준 말입니다. 지금 ‘김영란법’에선 식사 3만원, 선물 5만원, 경조사비 10만원을 기준으로 잡고 있는데 이건 상한선의 의미라기보단 상징적 의미가 훨씬 커요. 그런데 이게 본말이 전도돼 버렸어요. 대다수 사람들이 이 선을 처벌의 기준처럼 생각하거든요. 이 선 이하에선 뭐든지 해도 괜찮다는 식으로 말이죠. 이 법은 처벌을 위한 게 아니라 상식적 사회를 만들기 위해 발의했던 것인데 말이죠. 그래도 시간이 지나면 원래 추구했던 목적대로 자리를 잡으리라고 믿어요.”

▶이 법에 대해 ‘카네이션 법’, ‘캔커피 법’ 등등 별명이 많았잖아요. 아무래도 법에 대해 낯설게 생각하기 때문 아니었을까요.

“아무래도 그럴 겁니다. 실제로 학교에서 ‘스승의 날에 카네이션 한 송이도 못 드리냐’, ‘대학에서 제자들이 교수에게 커피 한 잔 못 드리냐’는 얘기 많았거든요. 그런데 꼭 마음을 물건으로만 전해야 하나요. 우린 관계를 형성하는 법에 대해 너무 미숙한 것 같아요. 한국 사회는 원래 농경사회 공동체에 기반한 ‘정(情)의 문화’에 기반을 두고 있었죠. 그 때는 태어나면서부터 죽을 때까지 그 공동체 안에서만 살았고, 그 안에서 위계질서가 있었어요. 그런데 산업화가 진전되고, 이해타산적인 네트워크가 점점 넓게 형성되다 보니 사람과 사람 간의 관계를 돈이나 고가 향응으로 사는 관행이 자리잡았죠. 사실 학연이나 지연을 따지는 것도 결국 관계를 맺는 방법에 대해 잘 모르기 때문 아닐까 싶어요. ‘김영란법’도 실은 그런 사회 전반적인 분위기를 좀 바꿔 보고 싶은 마음에서 비롯된 것이었어요. 불합리한 걸 불합리하다 말할 수 있도록, 부정 청탁을 거절할 수 있는 구체적 근거를 댈 수 있도록 말이죠. 그런데 정작 법 시행 과정을 보면 너무 복잡해요. 마치 이걸 안 지키면 무조건 처벌할 것처럼 생각해서 아쉽습니다. 이 법을 만든 의미는 그게 아닌데 말이죠. 어떤 사람들은 저더러 지나치게 이상주의적이라고 비판을 해요. 그렇지만 생각해 보세요. 세상을 바꾼 건 이상주의자들 아니었나요.”

▶혹시 이 법 때문에 개인적으로 비난을 받거나 피해를 보신 적은 없었나요.

“거의 없었어요. 가끔 가다가 악성 댓글을 볼 때는 있었지만 격려와 응원을 훨씬 많이 받았어요. 사실 저도 개인적으로는 한우 세트 사요.(웃음) 이번 추석에도 차례 지내려고 한우 세트 주문했지요. 법 시행 초기엔 식당 갈 때 혹시라도 저 알아보고 뭐라 할까봐 제가 누군지 알리지 않으려고 하기도 했는데, 정작 제 단골 식당이나 주위 식당 보면 ‘김영란 메뉴’가 이미 자리를 잡고 있더라고요. 더치 페이도 예전보다 늘었다고 들었어요.”

▶이 법을 누가 가장 환영하고 있나요.

“일선 공무원들과 교사들이죠. 젊은 학부모들도 아주 좋아해요. 공무원과 교사 입장에선 청탁 부담을 덜 수 있어서 좋고, 학부모들은 촌지나 선물 부담을 굳이 갖지 않아도 되니까 좋아해요. 하지만 아직 대학 교수들이나 언론계에선 그리 반갑게 여기진 않아요. 아무래도 이런 규제를 받은 적이 없기 때문일 겁니다. 특히 교수들 입장에선 이 법이 생긴 후 외부 강연을 나갈 때 언제, 어디서 어떤 내용으로 강의했는지까지 전부 기록해야 해요. 전 이런 부분은 좀 고쳐져야 한다고 봐요. 과도한 강의료를 막는 선에서 끝내는 게 좋다고 생각해요. 교수들로선 학문의 자유를 침해할 수 있단 염려가 당연히 생기거든요. 언론계의 경우 수사기관에서 이 법을 악용할 수 있다는 우려가 있는 것 같아요. 그런데 그걸 걱정한다면 수사기관과 사법기관의 개혁을 요구해야죠. 이 법이 잘못됐다고는 생각하지 않아요.”

▶이 법에 대해 언론에 바라는 점은 무엇인가요.

“미국이나 유럽, 일본 등에선 언론사마다 윤리 관련 전담 부서가 따로 있는 걸로 알고 있어요. 굳이 법률로 정하지 않아도 알아서 취재원들의 부정한 청탁이나 기자들의 금품, 향응 수수를 막는 것이죠. 그런데 한국 언론사들은 아직 그런 단계까진 안 간 것 같아요. 기자들 보면 취재원들과 같이 술을 마시거나, 취재원들로부터 선물을 받는 경우가 많잖아요. 전 기자들이 더치 페이한단 얘기는 한 번도 못 들어봤거든요. 그런 문화를 점점 바꿔 가는 게 좋지 않을까 생각해요. 아마 잘 될 것이라고 봅니다. 제가 언론에 바라는 건 ‘김영란법’에 대해서 계속 기사로 다뤄 주고, 어떤 점을 개선해야 하는지 꾸준히 지적하는 겁니다. 그래야 세월이 오래 지나도 이 법의 생명력이 간직될 것이라 보거든요. 그런 면에서 볼 때 언론의 역할이 정말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농축산업계나 화훼업계 등에선 ‘김영란법’에 대해 좋지 않게 보는 시각이 많다고 알고 있는데, 어떻게 보십니까.

“이 법이 농가나 축산업계, 고급 식당 등에 불이익을 준다는 비판을 많이 받는단 건 알지만 그 원인이 ‘김영란법’ 자체에 있다고 보진 않아요. 이 법 때문에 특정 업계가 불이익을 받았다 하면 그만큼 해당 업계가 불공정한 관행에 의존해 왔단 반증 아닐까요? 잘못된 관행과 소비행태 개선이 우선돼야 보고, 정말 피해가 확인되는 업계라면 정부 차원에서 한시적으로 지원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앞으로 ‘김영란법’이 어떻게 발전해 나가면 좋을까요.

“‘김영란법’의 효율적 시행을 위해선 직군별로 좀 더 현실에 맞게 쉽고 단순화한 매뉴얼이 필요해요. 특히 직무 관련성에 대한 유권해석이 너무 복잡해지다 보니 상황별로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난감해하는 경우가 많다고 알고 있어요. 공무원과 교사, 교수, 언론인 등 ‘김영란법’과 관련된 각 직군에서 이 법을 케이스마다 어렵지 않게 적용할 방안을 모색해야 해요. 한국 사회에선 관혼상제와 관련해 선물이나 금품을 주고 받는 경우가 매우 많죠. 이걸 일률적으로 단속하긴 어렵다고 생각합니다. 원래 법을 만든 취지도 그런 게 아니었고요. 직무와 상관이 없을 때 주고 받는 호의야 당연히 뭐라 할 이유가 없습니다. 그런데 직무 관련성의 범위가 너무 넓어요. 이걸 어느 정도는 조정할 필요는 있다고 봐요. 지금은 시행착오 과정이라 봅니다. 문제가 있다고 하면 그 부분을 고치면 될 것입니다. 법의 취지에 어긋나지 않는 선에서요.”

▶마지막 질문입니다. 꼭 하고 싶으신 말씀은 무엇인가요.

“당연하다 생각하는 걸 한 번쯤은 ‘이게 당연할까’ 하고 자유롭게 의문을 가질 수 있는 사회가 됐으면 좋겠어요. 이 법을 처음 제안하고 발의하는 과정에서 정말 숱한 고비를 겪었거든요. 어쩌면 고생을 사서 했는지도 모르죠. 그래도 이것이 한국 사회가 좀 더 나은 공간으로 발전할 수 있는 작은 계기가 될 수 있다면 그것으로 행복합니다.”

이미아 기자 mia@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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