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 칼럼]

100년 양복점

입력 2017-09-21 18:14 수정 2017-09-22 03:14

지면 지면정보

2017-09-22A35면

오형규 논설위원 ohk@hankyung.com
격동의 근·현대사와 압축성장은 서울의 풍광을 송두리째 바꿔놨다. 도심 곳곳에 덩그마니 표지석만 남은 ‘OO터’에선 아무 정취를 느낄 수 없다. 교포들도 10년 지나 서울에 오면 헤맬 정도인데 50년, 100년을 버텨온 가게들이 있을까.

하지만 상상보다 훨씬 많다. 서울시가 선정한 유서 깊은 종로·을지로 일대의 ‘오래 가게’ 39곳과, ‘서울 미래유산’ 목록을 보면 아직도 영업한다는 게 신기할 정도다. ‘오래 가게’는 오래된 가게가 오래 가길 바란다는 의미를 담았다.

서울의 최고(最古)가게는 조선 철종 때부터 5대째 162년을 이어온 금박연이다. 금박공예를 고집스레 이어온 장인정신이 놀랍다. 1913년 개업한 구하산방의 붓은 고종, 순종도 썼다고 한다. 낙원떡집은 현 대표의 외할머니(고이뽀 씨)가 창덕궁 상궁에게 떡기술을 배워 1912년 가게를 시작해 떡집의 대명사가 됐다.

종로2가 이문설렁탕은 러·일전쟁이 발발한 1904년 개업한 최장수 식당이다. 이문옥으로 출발해 4대째인데 아직도 휴일 없이 성업 중이다. 명륜동 진아춘(1925년), 평창동 형제추어탕(1926년), 다동 용금옥(1932년), 남대문 은호식당(1932년), 종로1가 청진옥(1937년) 등도 80~90년 업력이다. 재개발에 밀려 자주 옮겼어도 맛은 변함 없다.

1916년 개업한 종로양복점이 100년을 넘겼다. 창업주 이두용 씨가 일본에서 양복기술을 배워왔고, 서울 정도(定都) 600년 타임캡슐에도 유품이 들어갔다. 이승만 대통령, 이병철 정주영 회장 등이 단골이던 해창양복점(1929년), 김대중 대통령이 즐겨 찾은 한영양복점(1932년)도 있다.
혜화동의 성우이용원(1927년)은 파란 타일 세면대 등 옛 이발소 정취가 고스란히 남아 있다. 이회창 이수성 전 총리가 단골이던 문화이용원(1940년대)도 부근에 있다. 인사동에는 고서점 통문관(1934년), 수도약국(1946년·현 수도온누리약국) 등이 있다. 이 밖에 김봉수작명소(1958년), 허바허바사진관(1959년), 미스코리아 120여 명을 배출한 마샬미용실(1962년)은 지금도 운영된다.

하지만 100년 점포도 일본의 ‘시니세(老鋪)’에는 견줄 바가 못 된다. 세계 최장수 가게는 통일신라 때인 705년 설립된 야마나시현의 게이운칸 료칸이다. 1300년이 넘어 기네스북에도 올랐다. 200년이 넘은 장수가게(기업) 5586개 중 3146개(56.3%)가 일본에 있다. 유럽의 에르메스 샤넬 등 명품들도 작은 가게로 출발한 장수기업들이다.

우리나라는 너무 빨리 변해서 잊혀지는 것들이 많다. 역동적인 동시에 망각 사회다. 그래도 오래된 가게들을 발견하면 정겹다 못해 코끝이 시큰해진다. 사라져가는 것은 모두 아름답다고 했던가.

오형규 논설위원 ohk@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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