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마을]

'안아줘' '밥줘'… 꼭 사람 같았던 아기 침팬지

입력 2017-09-21 19:21 수정 2017-09-22 01:30

지면 지면정보

2017-09-22A27면

침팬지와의 대화

로저 파우츠·스티븐 투켈 밀스 지음 / 허진 옮김 / 열린책들 / 528쪽 / 2만5000원
아동심리학자를 꿈꾸던 대학원생 로저 파우츠는 1966년 돈을 벌기 위해 조교 자리를 알아보다 예상하지 못한 일자리를 얻는다. 새끼 침팬지에게 수화를 이용해 말하는 법을 가르치는 과학자 가드너 부부의 실험을 보조하는 일이다. 가드너 부부는 침팬지가 인간과 마찬가지로 의사소통 능력을 타고났다는 가설을 세우고 있었다.

파우츠는 이듬해 두 살배기 침팬지 ‘워쇼’를 처음 만났다. 가드너 부부는 ‘침팬지 양육’ 실험을 했다. 인간 가족이 새끼 침팬지를 인간 아이처럼 키우며 그의 언어 이용 능력을 관찰하는 것이다. 파우츠는 하루에 4~8시간씩 워쇼와 생활했다. 워쇼의 언어 능력은 나날이 발달해 아침이 되면 ‘로저 빨리’ ‘와서 안아줘’ ‘먹을 거 줘’ ‘옷 줘’ ‘나가자’ 등의 수화를 쏟아냈다. 당시 두 살 난 아들이 있던 파우츠는 “내가 매일 아침 아들 조슈아에게서 듣는 말과 똑같았다”고 말한다.

워쇼와의 만남으로 그의 삶은 완전히 바뀐다. 심리학자를 꿈꾸던 청년은 세계적인 영장류 학자이자 동물 권익 운동가가 됐다. 그가 워쇼를 포함한 여러 침팬지와 함께한 30여 년의 경험과 연구를 담아 1997년 미국에서 처음 출간한 《침팬지와의 대화》가 국내에 번역 출간됐다. 이 책은 침팬지 언어 연구 분야의 명작이자 다른 동물과 삶을 공유하는 방법을 배워가는 한 학자의 진솔한 성장기다.
침팬지는 단어와 단어를 연결해 문장을 만들고 ‘담요 위 칫솔’과 ‘칫솔 위 담요’를 구분할 줄 안다. 말을 안 듣는 아이에게 부모가 얘기하는 ‘저기 어딘가의 큰 호랑이’가 공포의 대상이듯 워쇼는 ‘침팬지를 잡아먹는 크고 검은 개’를 무서워했다. 또 다른 침팬지 루시는 발정기가 되면 여성 잡지 ‘플레이걸’을 탐독했다.

침팬지의 유전자 98.4%는 인간과 일치한다. 바로 그 이유로 일부 침팬지는 인간에게 고초를 당한다. 사람을 대신해 우주 의학 실험 대상이 되거나 에이즈, 간염 등의 연구에 이용된다. 파우츠는 침팬지 언어 연구를 계기로 인간과 다른 동물들 간 관계를 다시 생각해본다. 인간도 존재의 한 형태일 뿐이고, 다른 존재들과 지구를 함께 쓰고 있는 것뿐이라는 것이다. 그는 “내 아이에게 심장이 필요하다고 해서 옆집 사람의 심장을 빼앗는 것이 정당하지 않다면 다른 동물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라고 말한다.

실험용으로 인간 세계에 끌려온 침팬지는 연구소 아니면 철창 신세였다. 파우츠는 10년간 기금을 모아 우림과 가까운 환경을 조성하고 인간의 눈에서 벗어나 숨을 쉴 수 있는 곳도 마련한 ‘침팬지 인간 커뮤니케이션 센터’를 지었다. 과학 연구에 사용된 침팬지들을 위한 보호소 건립에도 힘썼다. 이 책은 인간이 다른 종에 대해 갖고 있는 우월감이 얼마나 부끄러운 것인지 깨닫게 한다.

마지혜 기자 looky@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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