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포식자'로 등장한 중대형 슈퍼…연매출 100억 이상만 2500곳

입력 2017-09-20 18:36 수정 2017-09-21 09:15

지면 지면정보

2017-09-21A5면

대형마트 규제 7년…유통 생태계가 바뀐다

식자재마트 등 '골목의 코스트코' 전국 6만여 곳

대형마트·SSM 규제 이후 편의점 급증하자
동네 슈퍼·도매업자 손잡고 '대형화'로 반격
출점·영업시간 제한 없어 골목상권과 마찰도

20일 서울 마포구의 한 식자재 마트에서 소비자들이 쇼핑하고 있다. 지난달 문을 연 이 슈퍼는 오전 8시부터 밤 11시까지 연중 무휴로 영업하며, 배송 서비스도 시작했다. /김범준 기자 bjk07@hankyung.com

서울 지하철 2호선 아현역 주변 반경 2㎞ 안에는 올 들어 중대형 마트 4개가 들어섰다. ‘진로마트’ ‘아현식자재마트’ ‘아이마트’ ‘하나식자재마트’ 등이다.

이들은 모두 매장이 661㎡(200평) 규모다. 농축수산물은 물론 공산품 등을 할인 판매한다. 연중 무휴다. 1~2개월 간격으로 문을 열면서 경쟁도 치열하다. 매일 산지 직송 특산물을 싸게 파는 이벤트도 하고, 경품으로 자동차와 TV를 내놓기도 한다. 배달 서비스도 시작했다. 주말이면 계산대에 긴 줄이 늘어서고 인근 도로에선 주차난이 벌어진다. 대형마트 규제와 편의점 성장의 틈새를 비집고 슈퍼마켓이 대형화했다. 중형 마트는 ‘골목의 코스트코’로 불리며 세를 넓혀가고 있다.

◆도매업자들의 ‘틈새 전략’

중형 마트는 2012년부터 본격적으로 늘었다. 대형마트와 기업형 슈퍼마켓(SSM) 규제로 대기업이 새 점포를 내지 못하자 틈새시장이 생긴 것이 가장 큰 이유다. 동네 슈퍼가 편의점에 치여 경쟁력을 잃은 것도 중형 마트 시장을 열어줬다. 일부 슈퍼마켓 주인은 편의점으로 간판을 바꾸지 않고 대형화로 방향을 잡았다. 이들은 지역 도매업자와 손잡고 중형 마트를 열기 시작했다.

인근 지역에 청과 수산물 등을 납품하던 도매업자들은 산지 가격으로 물건을 떼올 수 있었다. 매장 규모가 커지자 공산품도 싼 가격에 사서 팔 수 있었다. 정육 코너와 수산물 코너 등은 아예 개인 또는 별도 법인에 임대하는 방식으로 운영하기도 한다. 소비자들은 싼 가격과 다양한 제품, 좋은 품질을 금방 알아봤다.

서울 마포구에 사는 주부 한승영 씨(62)는 “인근 공덕역에 있는 이마트까지 가려면 매번 차를 갖고 가야 하는 번거로움이 있는데 집 앞에 싸게 파는 마트가 여러 곳 생겨 장보기가 수월해졌다”고 했다.

최근 5년간 서울 도심 지역 뉴타운과 지방 소도시의 대규모 아파트 단지가 늘어난 것도 중대형 마트가 급증한 이유다. 업계 한 관계자는 “661㎡(200평) 이상의 마트가 들어서려면 최소한 주변에 3000가구 이상의 수요를 끼고 있어야 한다”며 “신도시와 뉴타운, 개발지역 등에 중대형 마트가 몰리고 있다”고 전했다.

◆또 생겨난 먹이사슬

중형 마트는 출점 규제나 영업시간에 제한을 받지 않는다. 개인 사업자 또는 법인명이 도·소매업으로 등록돼 있기 때문이다. 또 유통산업발전법에 따라 연간 매출에서 농축수산물이 55%를 넘으면 영업시간 제한 등의 규제를 받지 않는다.

비즈니스가 커지자 대형 업체도 생겨났다. 서원유통, 한국유통, 하나마트, 세계로마트 등이 주요 업체다. 대구·경북 지역 등에서 ‘탑마트’ 77개 점포를 운영하는 서원유통은 이 일대 유통시장을 장악하며 연매출 1조원, 자산 규모 10조원대 대기업으로 성장했다.

도소매업자의 생존 전략이던 중대형 마트가 또 다른 먹이사슬을 만들어냈다는 지적도 있다. 중대형 마트가 들어선 상권 주변 정육점, 편의점, 전통시장 등에선 불만이 터져나온다.
대구의 남문시장, 메트로센터 상인회는 탑마트 대구점 입점이 확정된 지난 5월 ‘대형마트 입점 철회’를 요구하며 시위하기도 했다. 2015년 탑마트가 골목상권을 침해하고 있다는 여론이 생기자 대구시가 전통시장 인근을 ‘서민경제특별진흥지구’로 설정하고 조례를 만들어 입점 규제를 시작한 것은 이들이 얼마나 성장했는지 보여주는 사례다.

하지만 중형 마트가 출혈 경쟁을 하고 있다는 분석도 있다. 서로 상권을 침해할 수 있는 거리에 우후죽순처럼 늘어나고 있기 때문이다. 업계 관계자는 “이미 포화 상태인 지역도 있어 뒤늦게 뛰어든 사람은 6개월도 안 돼 투자한 돈을 다 날리고 문 닫는 경우도 있다”며 “누가 먼저 문을 닫나 버티는 사람이 이긴다는 심정으로 버티는 업체도 많다”고 말했다. 최승재 소상공인연합회장은 “물류 선진화나 소비자의 편익이 느는 측면에서는 영세 상인들에게도 긍정적이지만 일부 중형 마트는 법인을 넘어 덩치가 너무 커졌다”고 주장했다.

■ 6만 개

전국의 중형마트 수. 대형마트 규제 사각지대를 노린 중형마트가 신도시, 뉴타운 등을 공략하며 급성장, 연매출 100억원이 넘는 업체만 전국적으로 2500곳에 달하는 것으로 업계는 추정하고 있다.

김보라 기자 destinybr@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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