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뢰인·의뢰대상자 모두 협박…'요지경 흥신소'

입력 2017-09-20 19:03 수정 2017-09-21 01:30

지면 지면정보

2017-09-21A31면

"가족사진 안 넘기겠다" 돈 뜯고… 의뢰인엔 "경찰 입 막아야…" 또 뜯어

서울만 수백곳…'점조직' 전문화
개인정보 불법 취득·거래…"일부선 해커 동원 통신사 해킹도"
경찰, 흥신소 업자 9명 검거

'사설 탐정제' 도입 놓고 논란
합법화로 사생활 보호 필요…'불난 집 기름 붓는 꼴' 반대도
사업가 김모씨(48)는 2014년 난데없는 협박을 당했다. 자신을 흥신소 관계자라고 소개한 박모씨(32)가 “당신에게 원한이 있는 사람이 뒷조사를 부탁했다”며 직접 촬영한 김씨 가족 사진을 보여준 것. 박씨가 “의뢰인에게 사진을 넘기면 가족들이 ‘염산 테러’를 당할 수 있다”며 사진을 넘기지 않는 대가로 돈을 달라고 요구해 김씨는 1000만원을 주고 말았다.

의뢰 대상자인 김씨에게서 돈을 뜯어낸 박씨는 의뢰인 이모씨(32)에게도 마수를 뻗쳤다. 이씨는 김씨를 해칠 생각이 전혀 없었다. 의뢰 내용도 “김씨가 신용할 수 있는 사람인지 알아봐 달라”는 것에 불과했다.

박씨는 사인(私人)에 의한 개인정보 수집이 불법이라는 점을 거론하며 이씨를 협박했다. “경찰이 수사하려는 것 같으니 입막음 비용을 달라”는 박씨 요구에 못 이겨 이씨는 2000만원을 건넸다.

◆범죄 조직 닮아 가는 불법 흥신소

서울지방경찰청 광역수사대는 주민번호·주소지·휴대전화 번호·가족 관계 등 타인의 사생활을 수집해 사고판 흥신소 업자 황모씨(42) 등 6명을 구속했다고 20일 밝혔다. 경찰에 따르면 황씨 등은 2012년 2월부터 지난 6월까지 홈페이지 등에서 ‘뒷조사’를 원하는 의뢰인을 모집했다. 이들은 564회에 걸쳐 피의뢰인 개인정보를 불법 수집한 대가로 2억원을 챙겼다.

채권추심 업체에서 근무한 황씨는 채무자를 찾아다닌 경험을 악용해 개인정보를 수집했다. 인터넷 검색에서 모은 ‘조각 정보’와 불법 구매한 개인정보 데이터베이스(DB)를 이용하는 게 주된 수법이었다. 통신사 대리점에서 고객 이름과 전화번호 등을 받기도 했다. 직접 조사가 어려운 사항은 미행, 정보 조회 등을 특기로 삼은 흥신소 업자에게 맡기고 10만~50만원을 지급했다.

경찰 관계자는 “통신사나 인터넷 사이트에서 불법 유출된 대규모 개인정보가 이들의 ‘자양분’이 됐다”며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자신의 개인정보를 무방비로 게시하는 사람이 늘어난 것도 이유”라고 설명했다. 또 “요즘 흥신소는 과거와 달리 전문화돼 SNS에 올라온 작은 단서도 놓치지 않고 해커까지 동원해 통신사를 해킹하기도 한다”고 덧붙였다.

◆‘사설탐정제’ 도입 통한 양성화 논란
흥신소 영업이나 흥신소에 타인의 개인정보 조사를 의뢰하는 행위는 법으로 금지돼 있다. 채권추심업을 허가받은 신용정보회사 외에는 특정인의 소재 및 연락처를 알아내거나 상거래 관계 외 사생활 등을 조사해서는 안 되고 정보원·탐정 등 명칭을 사용해서도 안 된다. 민간인이 특정인을 미행하거나 당사자 동의 없는 사진 또는 동영상을 촬영하는 등의 행위는 엄연히 불법이다.

일각에서는 음지로 몰리는 민간조사 수요를 양지로 끌어내기 위해 민간조사업을 합법화하자는 주장이 나온다. 유우종 한국민간조사협회장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가운데 민간조사가 법제화되지 않은 곳은 한국뿐”이라며 공인탐정 합법화를 요구하고 있다. 경찰도 호의적인 반응이다. 불법 흥신소들이 사생활 침해 범죄를 거리낌 없이 저지르고 있기 때문에 양성화해 국가의 관리체계로 편입시키는 게 낫다는 판단이다.

반면 변호사업계는 부정적인 반응이다. 사생활과 개인정보 침해가 더 확산될 것이란 이유에서다. 대한변호사협회 관계자는 “개인정보 유출 사고가 빈번한 한국에서 민간조사업이 도입된다면 불난 곳에 기름을 끼얹는 꼴이 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성수영 기자 syoung@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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