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정책이 섬세해야 하는 이유 보여준 '규제의 역설'

입력 2017-09-18 18:12 수정 2017-09-19 03:30

지면 지면정보

2017-09-19A39면

선의(善意)로 시작하지만 오히려 더 나쁜 결과를 초래하는 이른바 ‘착한 규제의 역설’이 끝도 없다. 대학 시간강사의 처우를 개선하자는 취지로 제정됐지만 일자리 상실을 우려하는 강사들의 반발에 직면한 ‘강사법’, 공공기관 채용 중단으로 이어져 청년실업을 되레 악화시키는 ‘정규직 전환’, 대·중소기업 임금격차를 더 키우는 ‘최저임금 인상’, 청약시장을 투기판으로 변질시키는 ‘분양가 상한제’, 골목상권 보호는커녕 소비 감소를 초래하는 ‘유통규제’ 등이 모두 그런 사례다. 왜 이런 현상이 반복되는 걸까.
이런 규제가 실패할 수밖에 없는 데는 그럴 만한 이유가 있다. 내세우는 명분은 그럴듯하지만 시장원리를 고려하지 않는 등 정책의 섬세함이라곤 전혀 갖추고 있지 않다. 의도와는 다른 부작용을 수반하는 건 당연한 결과다. 정책적 완성도가 떨어지는 규제가 쏟아지는 배경에는 정치적 포퓰리즘이 자리하고 있다. 당장의 표나 지지층 확보에 유리하다면 여·야 할 것 없이 일단 규제하고 보자는 쪽으로 질주한다.

설익은 규제가 쏟아지더라도 사전에 걸러낼 장치가 제대로 작동한다면 부작용을 막을 수 있다. 하지만 이런 규제가 활개를 친다는 것은, 새로운 규제가 생기거나 기존 규제가 강화될 경우 이것이 미칠 파급효과를 사전에 분석해 불합리한 규제를 방지한다는 ‘규제영향평가제도’가 유명무실하다는 증거다. 정부입법은 규제심사를 받는다지만 실질적인 평가가 이뤄지는지 의문이고, 의원입법은 그나마 이런 절차를 거치지도 않는다. 이러다 보니 의원입법이 규제를 신설·강화하는 주된 채널이 돼 버렸다. 정부조차 의원입법을 빌려 규제를 양산하는 실정이다. 오죽하면 OECD(경제협력개발기구)조차 의원입법도 규제심사를 받도록 하라고 한국에 권고할 정도다.

의원입법이 심사 대상이 된다고 해도 지금처럼 겉도는 규제영향평가제도로는 헛일이다. 규제심사도 선진국처럼 과학적 연구를 필요로 한다. 학제적으로 규제에 관한 지식을 생산하는 ‘규제과학적 접근’이 그것이다. 규제에 대한 지적 선별 능력을 갖추면 부작용이 훤히 내다보이는 섬세하지 못한 정책은 설 땅이 없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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