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과장 & 이대리]

"이 동호회 남탕 아니죠?"…여성 회원 많은 곳만 집중 공략

입력 2017-09-18 19:59 수정 2017-09-19 06:26

지면 지면정보

2017-09-19A26면

가을바람 부는데 내 짝은 어디에

"네 페북 친구, 딱 내 스타일"…상사의 집요한 소개팅 요구 괴로워

일러스트=이정희 기자 ljh9947@hankyung.com

5년간 사귄 여자친구와 올해 초 헤어진 ‘은행맨’ 석 대리는 요즘 들어 부쩍 마음이 시리다. 일에 쫓기고 여름 무더위에 허덕이느라 외로울 새도 없다가 선선한 초가을 바람이 불면서 마음 한구석이 허전해지기 시작했다. 그는 “다가오는 크리스마스를 이대로 혼자 맞을 순 없다”는 생각에 소개팅 스케줄을 잡기 시작했다. 부쩍 줄어든 머리숱과 ‘슈트 핏’을 망치는 뱃살도 해결하기로 했다. 탈모 클리닉에 등록하고 헬스장 회원권까지 끊었다.

내 짝을 찾기만도 버거운데, 다른 사람의 짝까지 찾아야 하는 스트레스도 겪는다. 가을이 오면 어김없이 늘어나는 직장 선배들의 소개팅 주선 요구 탓이다. 김과장 이대리들이 간신히 짝을 찾는다 해도 막상 결혼에 골인하기도 쉽지 않다. 직장 일을 하면서 결혼 준비까지 챙기다 보면 크고 작은 갈등과 다툼이 이어지기 때문이다. 결혼이 ‘없던 일’이 되는 불상사도 겪는다. 본격적인 결혼 시즌을 앞두고 곳곳에서 사랑을 찾고 있는 직장인들의 사연을 들어봤다.

가을 미션 ‘내 짝을 찾아라!’

직장인 박모씨는 요즘 살사댄스, 영화감상, 우쿨렐레(하와이의 전통 현악기) 등 다섯 개의 동호회에서 활동하고 있다. 한때는 주말 점심과 저녁으로도 모자라 평일 점심에도 소개팅을 하던 그였다. 하지만 어색한 분위기에서 신상 정보를 주고받는 식의 만남으로는 쉽게 인연을 찾기 어려웠다. 그래서 동호회로 눈을 돌렸다.

처음엔 시행착오를 겪었다. 여성들의 관심사를 몰라 무작정 동호회에 가입했다가 ‘남탕’ 동호회인 것을 확인하고 나오기 일쑤였다. 이제는 여성 회원이 많은 동호회를 찾아내는 노하우도 생겼다. 박씨는 “같은 취미를 공유하며 서로 오래 알아갈 수 있어 나와 잘 맞는 분을 만날 것 같다”고 말했다.

소개팅은 어색하고 정기 모임이 있는 동호회가 귀찮은 경우는 다른 길을 찾는다. 한 건설회사에 다니는 홍 대리는 요즘 금요일 밤마다 ‘밤과 음악 사이’라는 술집에 간다. ‘밤사’라는 약칭으로 통하는 이곳은 1980~1990년대 유행 가요를 틀어준다. 큰소리로 노래를 따라부르거나 일어나서 춤추는 데 거리낌이 없는 분위기다.

“마음에 드는 여성을 발견하면 자연스럽게 같이 춤을 추다 말을 걸어요. 유승준의 ‘열정’, 클론의 ‘초련’ 같은 옛 노래를 같이 부르며 이미 동질감을 형성한 뒤라 어색함이 적죠. 친구 한 명이 밤사에서 만난 분과 최근 결혼했는데 저한테도 그런 행운이 오길 바라고 있습니다.”

소개팅 조르는 솔로 상사에 골머리

짝을 찾는 미혼 상사가 무리하게 지인 소개를 요구해 냉가슴을 앓는 직장인도 꽤 있다. 한 제조기업에 근무하는 김모씨는 최근 페이스북 활동을 잠정 중단했다. 평소 김씨의 페이스북을 염탐하면서 프로필 사진이 예쁜 여성을 발견할 때마다 “소개해달라”고 칭얼대는 노총각 선배 때문이다. “이 친구는 남자친구가 있다”는 등 핑계를 대며 피했지만 결국 선배가 사고를 쳤다. 김씨의 친구에게 페이스북 메시지로 직접 말을 건 것이다.

머리 끝까지 화가 치솟았지만 하늘 같은 선배에게 화를 낼 수는 없는 일이었다. 김씨는 “제발 그러지 말아 달라”고 선배에게 단호히 말한 뒤 페이스북 계정을 비공개로 돌렸다. “선배 때문에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도 마음대로 못하겠어요. 일할 때는 멀쩡한데 이성 문제에서는 유독 비이성적으로 나오는 선배를 보니 당황스럽습니다.”

중견 건설사에 다니는 이 대리도 자꾸 소개팅을 요구하는 같은 부서 박 과장 때문에 괴롭다. 말로는 아무나 소개해달라고 하지만 실제로는 아니다. 지난주 이 대리가 박 과장과 동갑인 여성을 소개하겠다며 사진을 보여주자 박 과장은 “날 이 정도로밖에 보지 않느냐”며 되레 면박을 줬다. 이어 박 과장은 “형 아직 잘나간다”며 “나보다 대여섯 살은 어리고 마른 체격에 잘 웃는 여성을 소개해달라”고 ‘가이드라인’까지 제시했다. 이 대리는 “예쁜 친구에게 소개팅에 나와달라고 부탁해 ‘충성 인증’이라도 해야 할 판”이라며 한숨을 쉬었다.

결혼까지 가는 길도 ‘가시밭’
짝을 찾아도 결혼에 성공하긴 여전히 어려운 일이다. 한 대기업에 다니는 박 과장은 우여곡절 끝에 마침내 결혼을 눈앞에 뒀지만 결혼 준비 과정을 이해해주지 않는 40대 중반의 미혼 팀장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고 있다. 박 과장은 신혼집 계약이나 인테리어 업체 계약 등의 일을 처리하기 위해 종종 연차를 냈다. 그러자 팀장은 “왜 업무에 차질을 빚으면서 개인 일을 보느냐”며 날선 반응을 보였다. 박 과장은 “팀 회식 때 결혼 관련 고민을 털어놓는 것도 눈치가 보인다”며 “팀장이 결혼 준비 과정을 전혀 이해하지 못하다 보니 크고 작은 갈등이 계속 발생한다”고 토로했다.

청첩장을 주고받는 방식이 갈등의 씨앗이 되는 경우도 있다. 건강식품업체에 다니는 지모씨는 다음달 결혼하는 후배가 모바일 메신저 단체 채팅방에 100명가량의 회사 사람을 초대해 모바일 청첩장으로 결혼을 통보해 기분이 확 상했다. 그는 “멀리 있는 고향 친구도 아니고 매일 얼굴 보는 회사 사람들에게 종이 청첩장을 주며 결혼을 알리는 게 그렇게 힘든 일이냐”고 말했다.

결혼 준비와 직장 일이 겹치다 보니 짝과 갈등을 겪는 경우도 흔하다. 제약회사에 다니는 신모씨(32)는 “회사 일이 바빠 직장 상사의 눈치를 보느라 신혼살림 준비 과정을 거의 챙기지 못해 툭 하면 예비신부와 말다툼을 벌였다”며 “감정이 서로 상해 거의 헤어지기 직전까지 간 적도 있다”고 하소연했다.

마지혜 기자 looky@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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