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마을]

'시대에 뒤처진 돼지'가 어떻게 미국의 아이콘 됐나

입력 2017-09-14 19:38 수정 2017-09-15 05:42

지면 지면정보

2017-09-15A28면

할리데이비슨, 브랜드 로드 킹

클라이드 페슬러 지음 / 박재항 옮김 / 한국CEO연구소 / 232쪽 / 2만원

미국 오토바이 제조업체 할리데이비슨은 1980년대 들어 창사 이래 최대 위기에 직면했다. 대공황과 2차 세계대전을 거치며 미국 유일의 오토바이업체로 살아남은 할리데이비슨은 1960년대까지 시장에서 독점적인 지위를 누렸다. 하지만 1960~1970년대 혼다, 야마하, 스즈키, 가와사키 등 일본 업체들이 물밀듯 미국 시장에 진입하면서 할리데이비슨의 절대적 아성이 허물어지기 시작했다.

1969년 할리데이비슨을 인수한 미국 스포츠용품업체 AMF가 단행한 생산공정 단순화와 인력 구조조정으로 노사분쟁이 심해지고 제품 불량률이 높아졌다. 소형 제품을 주로 판매하던 일본 업체들이 할리데이비슨의 주종목인 대형 제품을 내놓자 매출도 급감했다. 1972년 1000㏄ 이상 대형 오토바이 시장에서 100%를 자랑하던 점유율은 1982년 15% 수준으로 급락했다. 혼다의 미국 시장 점유율은 65%까지 치솟았다.

점유율 하락보다 더 심각한 것은 ‘이보다 더 나빠질 수 없을 만큼’ 추락한 브랜드 이미지였다. 2차 세계대전 이후 수십 년간 할리는 기름이 새고 툭하면 수리를 받으러 공장에 넣어야 하는 제품이었다. 대중이 보기에 할리를 타는 사람은 지저분하고 헝클어진 외모에 법규 따위는 지키지 않고 소동을 일으키는 무뢰한들이었다. ‘위험한 질주’ ‘이지 라이더’ 등 폭주족을 그린 할리우드 영화는 ‘불량배나 무법자가 타는 오토바이’란 제품 이미지를 확산시켰다. 미국 오토바이잡지 ‘사이클’은 할리데이비슨을 ‘시대에 뒤처진 돼지들(prehistoric hogs)’로 규정했고, 그 이미지가 고착됐다.

《할리데이비슨, 브랜드 로드 킹(원제 Rebuilding the brand: how harley-davidson became king of the road)》은 도산 직전까지 몰린 할리데이비슨이 바닥으로 떨어진 브랜드를 미국 문화를 상징하는 ‘아이콘 브랜드’로 탈바꿈시키며 화려하게 재기하는 과정을 생생하게 보여준다. 저자는 할리데이비슨에서 25년간 근무하며 브랜드를 개조하고 성장시키는 데 중추적인 역할을 담당한 클라이드 페슬러 전 비즈니스개발 부사장이다.

저자는 먼저 고객이 좋아하는 ‘브랜드 개성’을 구축하는 4단계를 다음과 같이 제시한다. 첫째, 제품 또는 서비스 수준을 고객이 최소한 받아들일 수 있는 정도 이상으로 높여라. 품질이 뛰어나다는 평판이 있다면 좋다. 둘째, 브랜드와 결부된 스토리를 만들어라. 신화처럼 또는 초현실주의적으로 들리면 더욱 좋다. 셋째, 다른 이들이 우회전할 때 좌회전하라. 기존 관습과 엇박자 나는 문화적 모순을 보여줘라. 넷째, 브랜드 개성이 지속·유지되도록 고객과 함께 늘 호흡하고, 새로운 신화와 스토리를 만들어라.

할리데이비슨은 이 단계를 충실히 이행하며 부활에 성공했다. 1981년 이 회사의 최고경영진 13명은 기업회생 의지가 부족한 모회사 AMF로부터 경영권을 8000만달러에 사들이고, 본격적인 개조 작업에 착수했다. 품질 문제부터 잡았다. 최대 경쟁사인 혼다의 ‘일본식 공장 경영’ 시스템을 도입해 불량률을 낮추고, 재고를 줄였다.

핵심은 ‘좌회전 전략’이다. 일본 기업들이 효용성 높은 이동수단을 만들려고 ‘우회전’할 때, 할리데이비슨은 ‘좌회전’하기로 결정했다. 전통과 상징성 등 할리데이비슨의 강점인 역사적 유산을 최대한 살리며 모터사이클의 자유와 도전 정신을 강조하는 ‘브랜드 체험’을 팔기로 한 것이다. 프로모션 비용의 70~80%를 기존 고객에게 투자했다. 일본 업체들이 돈을 쏟아붓는 TV·라디오 광고 대신 랠리와 중요 모터사이클 행사에 치중하며 고객과의 유대를 강화했다.
할리데이비슨 라이더에 대한 부정적인 평판을 ‘거친 개인주의’란 신화와 스토리를 만들어내며 긍정적으로 전환하는 데 전력을 기울였다. 1983년 할리데이비슨 소유자 모임인 ‘H.O.G(Harley Owner Group)’를 발족시켰다. 라이딩의 로망을 충족하고 안전하면서도 소속감을 높일 수 있는 행사를 유도했다. 이를 통해 ‘돼지(hog)’란 부정적 이미지가 긍정적인 의미로 바뀌고, ‘불온의 상징’이던 할리데이비슨 동호인 행사가 ‘동경의 대상’으로 변모했다. H.O.G 회원은 4년 만에 10만 명을 돌파했고, 2000년대 미국에서만 100만 명을 넘어섰다. 할리데이비슨은 1986년부터 2006년까지 매년 최대 매출 기록을 경신했고, 2000년 세계 모터사이클 시장 1위에 재등극했다.

페슬러는 내부자의 시선으로 ‘브랜드 리빌딩’을 주도한 실무자의 경험과 교훈, 실행방식을 매뉴얼처럼 담아내며 마케터들이 부러워하는 할리데이비슨 고객의 높은 브랜드 충성도가 어떻게 형성됐는지 보여준다. 브랜드 체험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더 많은 고객층을 확보하기 위해 브랜드를 확장하고, 인기 많은 제품들과 브랜드 연상 관계를 만들고, 모든 브랜드 접점에서 일관성을 유지하고, 브랜드가 구축된 사회에 보답하는 과정을 상세하게 기술한다. 할리데이비슨의 위기 극복 사례를 다룬 기존 경영서들과 다른 점이다. ‘행복한 고객이 최고의 영업사원’임을 일깨운다.

송태형 기자 toughlb@hankyung.com

ⓒ 한경닷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광고

투표김영란법 시행 1주년, 어떻게 생각하세요?

  • 부패방지를 위한 획기적 계기로 현행 유지해야 593명 65%
  • 민생경제 활성화 위해 현실에 맞게 금액 수정해야 315명 35%
광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