폴 매카시 "벌거벗은 나를 조형화…현대사회 금기 건드렸죠"

입력 2017-09-14 18:46 수정 2017-09-15 06:55

지면 지면정보

2017-09-15A35면

미국 현대미술 거장 폴 매카시 국제갤러리 개인전 개막

만화영화·동화 등 소재로 물질만능사회 풍자·성찰
백설공주 캐릭터 활용해 미디어의 상업성 꼬집어
성적인 감정 일으키는 페티시적 아이콘 조형화도

폴 매카시

미국의 전방위 아티스트 폴 매카시(72)는 미국 유타주 솔트레이크시티에서 태어나 1950년대 미국 경제 부흥기에 유년기를 보냈다. TV에서 방영하는 어린이 만화영화, 디즈니 애니메이션, 그리스 신화를 통해 선과 악의 경계가 뚜렷하게 구분되는 가상 현실을 자연스레 경험하며 자랐다. 그가 신화나 디즈니풍의 동화 이미지를 작품 소재로 즐겨 다루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환상적이면서도 어딘가 모르게 생기 없어 보이는 디즈니랜드, 동화책에 나오는 백설공주, 바람을 넣어 부풀린 돼지, 사지가 잘려나간 생명체 같은 이미지를 조각 형태나 영상아트, 회화로 보여주는 식이다. 일견 혼란스럽고 산만해 보이지만 현대 자본주의 사회 풍자와 성찰이 곳곳에 담겨 있다.

14일 시작해 다음달 29일까지 서울 소격동 국제갤러리에서 열리는 폴 매카시 개인전은 40여 년에 걸친 실험정신을 들여다볼 수 있는 자리다. 2012년 ‘아홉 난쟁이’전 이후 5년 만에 여는 서울 개인전이다.

서울 소격동 국제갤러리에 전시된 폴 매카시의 설치작품 ‘화이트 스노우 헤드’. /국제갤러리 제공

전시회 개최에 맞춰 방한한 매카시는 14일 “실제 사람의 본을 떠 만든 조각들이 환상 속에 갇혀 있는 듯한 모습으로 형상화된다는 것에는 그 이상의 의미가 내재돼 있다”며 “관람객은 이런 점을 고려해 작품을 감상했으면 한다”고 인사했다.

샌프란시스코 아트인스티튜트와 서던캘리포니아대에서 영화와 영상, 미술을 공부한 매카시는 비디오아트와 퍼포먼스, 회화, 조각 설치 등 다양한 장르를 넘나들며 작업해왔다. 1990년대 들어 조각, 설치, 그리고 로봇공학을 접목한 작업과 대형 풍선 조각을 선보이며 작업의 보폭을 넓혔다.

그는 2001년 뉴욕 뉴뮤지엄의 개인전을 비롯해 영국 테이트 리버풀(2001~2002)과 테이트 모던미술관(2003), 스톡홀름 현대미술관(2006), 뉴욕 휘트니미술관(2008) 등 세계 유수 미술관에 잇달아 초대되며 세계적 거장의 반열에 이름을 올렸다.

그의 작품은 미국의 물질적 풍요 속에 감춰진 퇴폐와 금기를 적나라하게 드러낸다. 대중문화에 대한 고정관념, 폭력과 성적 욕망, 비인습적 성 정체성의 모호함과 정면으로 부딪친다.

프랑스 화가 프란시스 피카비아(1879~1953)의 작품 ‘여인과 우상’에서 영감을 받아 제작한 신작 조형물 ‘피카비아 우상’은 이교도 우상을 안고 있는 에로틱한 여인의 형상을 원시적 캐릭터로 변환한 작품이다. 성적 감정을 일으키는 페티시적 아이콘의 원형을 여러 형태의 조형물로 재현해 자본주의 욕망을 은유했다.

1937년 월트 디즈니가 제작한 최초의 장편애니메이션 ‘백설공주와 일곱 난쟁이’ 속 순진무구한 백설공주의 캐릭터를 활용한 작품(‘화이트 스노우 헤드’)은 미디어가 인간의 욕망을 어떻게 상업화하는지 명쾌하게 보여준다. 실리콘을 재료로 제작한 백설공주의 두상은 얼핏 보면 단순한 조형물 같지만 대중적 캐릭터의 형상을 차용해 무의식적으로 강요하는 미디어의 상업성을 건드린다.

작가는 “미술가란 기존의 영화, 드라마에서 등장 인물이나 설정을 가져와 새로운 이야기를 꾸미는 스토리텔러”라며 “이런 ‘스핀오프(spin-off)’ 기법으로 예측 불가능한 새로운 ‘파생작품’을 만들어내는 게 예술가의 역할”이라고 설명했다.
벌거벗은 자신의 모습을 자르거나 절단해 이어붙인 설치작품 ‘컷 업(Cut Up)’시리즈도 관람객의 시선을 사로잡는다. 나체를 본떠 만든 모형을 3차원(3D) 스캔한 뒤 컴퓨터 프로그램으로 모델링을 거쳐 고밀도 우레탄 레진으로 제작했다. 작가는 “극사실적으로 묘사된 조각을 통해 현대사회에 은폐된 금기는 물론 ‘B급 정서’의 호러물과 고전 조각 사이의 불안정한 균형을 보여주고 싶었다”고 했다.

신작 컷 업 시리즈의 스캐닝 작업에서 추출된 신체 모형 이미지를 실물 크기로 프린트한 작품들도 나와 있다. 미묘한 회색빛과 푸른빛이 감도는 프린트에는 자신의 나체와 함께 ‘DEATH’ ‘PENIS FACE’ 그리고 ‘CUT UP’과 같은 단어를 낙서하듯 구성했다. 겹치고 뒤엉킨 색감에 무거운 운동감까지 가미된 작품은 불가사의한 그라피티가 더해져 마치 부검소견서처럼 보인다. 설계도를 연상케 하는 극도로 세밀한 프린트 이미지를 통해 자본주의 사회의 제조업에 대한 ‘상업성’을 삐딱한 시선으로 바라본다. (02)735-8449

김경갑 기자 kkk10@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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