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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컬러스 콜리지 컨데나스트 영국 이사회 의장

입력 2017-09-14 17:14 수정 2017-09-14 17:19

지면 지면정보

2017-09-15B3면

영국 명문가 출신 저널리스트
손 대는 잡지 줄줄이 히트
글로벌 패션 매거진의 황제

일러스트=이정희 기자 ljh9947@hankyung.com

니컬러스 콜리지 컨데나스트 영국법인 이사회 의장은 패션잡지 업계의 ‘차르(황제)’라는 별명을 갖고 있다. 세계에서 120여 종의 잡지를 발행하는 미국계 글로벌 미디어회사 컨데나스트 인터내셔널(Cond Nast)의 회장을 지냈다. 컨데나스트라는 이름이 낯설게 느껴지지만 보그, W, 글래머, 얼루어, GQ, 배너티페어, 태틀러, 트래블러, 골프다이제스트, 와이어드 등 이 회사가 만드는 잡지의 목록을 보면 누구든 고개를 끄덕일 것이다.

콜리지는 지난 8월1일 컨데나스트 인터내셔널 회장 자리에서 물러나 컨데나스트 영국의 이사회 의장직을 맡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여전히 문화계의 거물이다.

신학도에서 저널리스트로

1957년 영국에서 태어난 콜리지는 명문가 출신이다. 보험회사 로이즈오브런던 경영자를 지낸 데이비드 콜리지의 맏아들이다. 명문 이튼스쿨과 케임브리지트리니티 컬리지를 나왔다. 트리니티에서 그는 신학과 사학을 공부했다.

어릴 때부터 말도 잘하고 사교성이 뛰어났다. 이튼스쿨 재학시절 영국의 유명 비평가 겸 풍자가 크레이그 브라운과 어울려 다녔으며, 브라운과 함께 토론대회에 참가해 큰 상을 받기도 했다.

컨데나스트에서 26년 일하며 파티에 1만5000번 참석했지만, 그의 정체성은 패션 피플보다 저널리스트에 가깝다. 20대 초반엔 ‘도쿄 조’ 등의 나이트클럽에 다니기를 좋아했으나 1982년 이브닝스탠더드지의 칼럼니스트가 되면서 미디어 세계로 들어왔다.

그해 그는 영국출판협회에서 주는 ‘영저널리스트’ 상을 받았다. 30세에 패션잡지 하퍼스의 편집자가 되면서 패션잡지계로 넘어갔다. 32세에 컨데나스트의 편집 담당 이사를 맡았다. 지금 기준으로도 초고속 승진이다. 이후 컨데나스트 영국의 경영자로 26년간 일했다. 영국에서 배너티페어, 컨데나스트 트래블러, GQ 스타일, 와이어드 등을 출간해 대부분 성공시켰다.

1999년부터 미국 회사 컨데나스트의 미국 외 지역을 총괄하는 컨데나스트 인터내셔널 부회장을 맡았고 2011년에는 회장이 됐다. 회장으로 일하는 동안 러시아 중국 일본 인도 동유럽 등으로 영역을 넓히는 데 주력했다. 또 컨데나스트 패션·디자인 학교를 런던 소호에 세웠다.

비상장사 컨데나스트 인터내셔널의 매출은 한 해 1억파운드(약 1500억원) 정도며 이익률은 15% 수준으로 알려져 있다. 컨데나스트 인터내셔널을 소유한 뉴하우스 가문이 2015년 그의 노고에 보답하기 위해 연봉을 40% 올려서 130만파운드(약 19억5000만원)를 지급한 것이 당시 업계에서 큰 화제가 되기도 했다.

올해 이탈리아 보그와 영국 보그지 편집장에 남성을 앉히기로 하면서 이 잡지의 101년 전통을 깬 것도 그의 결정이다. 특히 영국 보그의 새 편집장 에드워드 에닌풀은 가나 출신 이민자여서 주목받았다. 내부 진통도 있었지만 콜리지는 “보그는 원래 (흑인 모델) 나오미 캠벨 등을 표지모델로 내세우는 다양성의 전통을 지닌 회사였지만 에드워드가 그런 전통을 한층 강화할 것”이라며 자신의 판단을 밀어붙였다.

“디지털 시대 영향력 과대평가”

콜리지는 디지털 시대에는 오프라인 잡지가 살아남기 힘들다는 주장에 정면으로 맞섰다. 지난해 4월 그는 미디어소사이어티 행사에서 “잡지 판매가 약간 줄었다고 해도 (그간의 성장세에 비하면) 미미한 수준”이라고 평가했다. 대표적인 사례로 본인이 몸담았던 컨데나스트의 주요지인 보그가 1989년 13만5000부 팔렸는데 지금은 20만 부 이상 팔린다는 점을 꼽았다. 또 태틀러는 이 기간 2만5000부에서 8만5000~9만 부로, GQ는 4만 부에서 12만 부로 부수가 늘었다고 했다.

지난해 기준 컨데나스트는 세계적으로 124종 잡지를 540만 부 발행하고 있다. 이 회사의 이익은 여전히 90%가 오프라인 잡지에서 나오고 디지털 부문 이익 비중은 10%에 그치고 있다.

그는 15년 전 한 미래학자가 “잡지 시장이 디지털 공습을 받아 10년 내로 완전히 끝장날 것”이라고 했지만 틀렸다고 강조한다. “윤이 나는 잡지에는 사람들을 홀리는 뭔가 특별한 것이 있으며 두꺼운 것일수록 그렇다”고 그는 주장했다. 잡지를 직접 들어서 펼쳐볼 때 자기 스스로 매력적인 표식을 가진 것처럼 느끼게 되며, 이런 감정은 빠르게 움직이는 다른 매체로는 충족되기 어렵다는 것이다.

그는 장기적으론 디지털이 대세라는 점을 인정하면서도 사람들이 지나치게 디지털의 부상에 현혹돼 있다고 봤다. “잡지산업은 아마도 약간 축소된 형태로 아주 오랫동안 살아남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자신이 평생 몸담아온 업계에 대한 애정의 표현일 수도 있지만, 아날로그 미디어의 강점을 잘 표현한 말이기도 하다.

디지털부문에 진출했다가 실패한 전력도 그의 이런 생각을 굳히게 했을 가능성이 있다. 컨데나스트는 지난해 온라인 명품쇼핑몰 스타일닷컴을 선보였으나 매출이 부진하자 10개월 만에 문을 닫았다.

규칙적인 글쓰기, 책 12권 펴내

콜리지는 패션계를 다룬 논픽션으로 베스트셀러가 된 《패션 음모》(1988)를 비롯해 《종이호랑이》 등 12권의 책을 낸 작가이기도 하다. 주말마다 오전 6시45분에 일어나 8시부터 낮 12시까지 앉아서 1000단어 분량의 글을 쓰는 습관을 유지하고 있다. “그러면 한 달에 1만 단어, 한 해에 책 한 권을 내기에 충분한 12만 단어 분량의 글을 쓸 수 있다”고 했다.

그는 2012년 텔레그래프지에 기고한 글에서 “글 쓰는 것을 사랑한다”고 고백했다. 해가 뜨고, 떡갈나무 냄새가 나며, 잔디에 맺힌 이슬이 증발하는 시간에 집 밖에서 손으로 쓰는 것을 좋아한다고 했다. 부슬비가 내릴 때도 어김없이 밖에서 쓴다.
잡지라는 매개를 바탕으로 문화계에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해온 그는 정작 이달 초 파이낸셜타임스(FT)와의 인터뷰에서 “나는 화려한 것에 그다지 관심을 둔 적이 없다”고 말했다. 실제 씀씀이도 큰 편은 아니다.

하지만 같은 인터뷰에서 런던 앨링턴가의 식당 르 카프리스에 ‘지정석’을 두고 그 자리가 고(故) 다이애나 왕세자빈 등의 자리였음을 강조하는 등 자기 과시 성향도 상당한 인물이다.

FT는 그를 두고 “재기 넘치고 뻔뻔할 정도로 자기 홍보를 하며 약간 짓궂기까지 하다”고 표현했다. 콜리지는 조만간 펭귄사를 통해 자서전을 낼 계획이다. 부인 조지아 멧캘프와의 사이에 4남매를 뒀고, 유명 모델 카라 델러빈(현재 은퇴)과 에디 캠벨 등 7명의 대부이기도 하다. 올해부터 런던의 빅토리아앤드앨버트 박물관의 이사회 의장도 맡고 있다.

이상은 기자 selee@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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