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태철의 논점과 관점]

한국 집값 수준 정말 높은가

입력 2017-09-12 18:19 수정 2017-09-13 0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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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9-13A34면

김태철 논설위원 synergy@hankyung.com
“영국과 독일보다 높은 한국 집값 수준”,“소득 대비 집값 역대 최고”.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과 국토연구원이 작년 11월과 올해 4월 각각 발표한 내용이다. 경실련은 우리나라 1인당 국내총생산(GDP) 대비 평균 집값이 8.8배로, 캐나다(9.9배) 영국(6.8배) 독일(5.0배) 미국(4.8배)과 비교했을 때 두 번째로 높다고 주장했다. 국토연구원은 ‘2016년 일반가구 주거실태조사’에서 소득 대비 주택가격 비율(PIR)이 5.6으로, 조사가 시작된 2006년 이후 최고치라고 발표했다. PIR이 5.6이란 것은 5.6년간 한푼도 안 쓰고 모아야 내집 마련이 가능하다는 의미다.

경실련과 국토연구원 자료들은 “집값을 잡기 위해 정부가 시장에 적극 개입해야 한다”는 문재인 정부 부동산 정책의 ‘정당성’을 지지하는 주요 근거로 활용되고 있다.

조사 기관마다 PIR 천차만별

주택 통계에는 적지 않은 함정이 도사리고 있다. 집값과 소득 등을 산출할 때 어떤 것을 기준으로 삼느냐에 따라 결과가 크게 달라지기 때문이다. PIR은 자주 오용(誤用)되는 대표적인 지수다. 보통 아파트가 단독주택이나 다세대보다 비싸기 때문에 모든 주택이 아니라 아파트 가격만을 분자로 쓰면 PIR은 커진다. 집값과 소득을 산출할 때 평균값(mean)을 쓰느냐, 아니면 중간값인 중위값(median)을 사용하느냐에 따라서도 결과가 차이 난다. 국내 연구소들이 산출한 PIR도 제각각이다. 3~7 정도 차이가 난다는 연구논문이 나올 정도다.

서울 집값을 미국 LA나 호주 시드니 등 다른 나라의 메트로폴리탄과 비교할 때도 오류가 발생한다. 약 1000만 명이 거주하는 서울(605㎢)은 강남과 강북 아파트값 차이가 3배를 넘는 경우가 드물다. 세계적으로 집값이 비싼 편에 속하는 시드니의 실제 행정구역은 서울 명동 수준이다. 흔히 시드니라고 불리는 곳은 시드니 광역권이다. 서울보다 20배 이상 넓지만 거주자는 492만 명(2015년 집계치)에 불과하다. 원주민과 이주자들이 주로 사는 서부와 외곽지역 집값은 부촌과 5~7배 차이 난다. 일부 국내 시민단체는 이런 것들을 고려하지 않고 서울 집값 수준이 시드니보다 높다고 주장한다. 조사 기준과 방식이 국가와 연구소마다 다르고 명확하지 않아 입맛대로 인용하고 해석할 수 있는 게 주택통계인 셈이다.

IMF "한국 집값 비싸지 않다"
그렇다면 국제기구와 외국 컨설팅업체들이 보는 한국 집값 수준은 어떨까. “높지 않다”는 게 대체적인 평가다. 국제통화기금(IMF)은 올해 1분기 ‘글로벌 주택동향’에서 2010년 PIR을 기준으로 잡았을 때 한국의 2017년 PIR은 조사 대상 31개국 중 25위라고 밝혔다. “한국 집값이 장기적 관점에서 봤을 때 다른 나라보다 비싸지 않다”고도 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2013년 PIR 조사에서 우리나라는 조사 대상 27개국 중 가장 낮았다.

글로벌 부동산컨설팅업체인 나이트프랭크가 세계 150개 도시의 최근 1년간(2015년 9월~2016년 9월) 집값 상승률을 조사한 결과에서도 서울은 3.1%로 91위였다. 미국 리먼브러더스가 파산한 2008년 9월과 비교해도 서울 집값 상승률은 2.1%에 그쳤다. 이 기간 영국 런던, 프랑스 파리 등 세계 주요 도시 집값은 50~70% 올랐다.

무주택자는 집값이 늘 비싸다고 느낄 것이다. 사교육비 등의 부담을 감안하면 체감 집값 수준은 실제보다 더 높을 수도 있다. 하지만 무주택자의 내 집 마련을 돕는 정책은 올바르게 통계를 활용하는 데서 시작된다. 잘못된 통계를 활용한 인위적인 ‘집값 억누르기’는 주택시장을 왜곡시켜 장기적으론 무주택자의 부담만 가중시킬 뿐이다.

김태철 논설위원 synergy@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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