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통상임금소송, 법의 이념 망각한 판결들

입력 2017-09-11 18:06 수정 2017-09-12 01:16

지면 지면정보

2017-09-12A35면

복지 좋은 기업만 '통상임금 뒤통수'
오락가락 판결, 신의칙 원칙도 모호
기준 명확히 해 법적 안정성 높여야

최준선 < 성균관대 법학전문대학원·명예교수 >
통상임금문제로 기업들이 크게 당황하고 있다. 정기상여금이 통상임금에 포함된다면 회사는 늘어난 통상임금을 기준으로 퇴직금과 초과근로수당 등 법정수당을 재산정해 임금을 추가 지급해야 한다. 임금채권의 소멸시효는 3년이므로 근로자는 과거 3년치를 한꺼번에 청구할 수 있다. 상여금은 대기업 정규 근로자들에게만 주어지는 축복이다. 대부분의 중소기업 근로자에겐 그림의 떡이다.

6년을 끌어온 기아자동차 통상임금소송 제1심 판결이 지난달 31일에 나왔다. 이 회사는 과거 총액 기준 매년 5% 전후의 임금인상을 해 온 결과, 평균연봉이 1억원에 육박한다. 회사는 예산편성에 따라 지급하기로 한 급여는 다 지급했다. 그런데 노조가 통상임금에 상여금 포함을 주장했고, 제1심 법원은 재산정한 임금과 이자를 합해 4223억원을 추가지급하라고 판결했다. 이 판결로 기아차가 실제 부담해야 할 추가금액은 대표소송 및 올해까지의 경과분 등을 고려해 1조원 내외가 되고, 2017년 3분기 적자전환이 예상된다.

문제는 판결이다. 2012년까지의 판례는 정기상여금은 통상임금에 속하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고용노동부의 행정해석도 같았다. 그러다 2012년 금아리무진 사건과 2013년 갑을오토텍 사건에서 대법원이 확정상여금은 정기성, 일률성, 고정성이 있어 통상임금에 포함된다고 판시했다. 이런 기준이라면 상여금, 점심값뿐만 아니라 1년에 한 번 지급하는 명절수당 휴가수당 체력단련비 월동보조비 개인연금지원금 단체보험료 선물비 생일격려금 회의식대 부서단합대회비도 정기·일률·고정적으로 지급되니 모두 통상임금으로 인정될 가능성이 있고, 이미 인정된 것도 있다. 차라리 상여금이나 이런 저런 수당을 없애면 문제가 없을 것인데, 근로자를 배려하고 복지가 풍성한 기업만이 경을 치게 됐다.

다만 대법원은 갑을오토텍 전원합의체 판결에선 재산정된 소급지급액 규모가 중대한 경영상의 어려움을 초래할 정도로 큰 경우, 민법 제2조에 적힌 ‘신의성실의 원칙(신의칙)’에 따라 소급 청구를 제한(불허)한다고 판시했다. 민법상 신의칙 규정은 구체적 구성요건이 없는 일반규정이어서 해석이 각각이다. 그래서 대법원은 그 나름대로 신의칙의 적용기준을 마련했다. △정기상여금을 통상임금에서 제외키로 하는 노사합의가 있었는지 △상시초과근로가 있는지 △상여금이 포함된 통상임금의 인상과 이를 기초로 재산정되는 실질임금의 상승이 얼마나 큰지 △당기순이익이 어떤지 등이 그것이다. 그런데 이후 하급심에서 위 기준 이외에 현금성 자산이나 이익잉여금 등 기업의 개별적인 사정까지 고려하기 시작했다. 이에 동종업계에서도 어느 기업은 추가 지급했고 어느 기업은 면제됐다. 동일회사에 대한 판결도 제1심과 제2심이 갈리는 경우도 있었다.
도대체 대법원이 말한 이 ‘신의칙’이란 기준이 상식적으로 합당하기나 한가? 예컨대 당기순익을 보자. 공기업은 당기순익과 무관한 기업이니 신의칙 위반이 애초 문제되지 않는다. 사기업의 경우 이익이 난 상태면 신의칙 위반이 아니고, 이익이 없는 상태에서 추가임금 재산정을 요구하면 신의칙 위반이 된다. 법적으로 받아야 할 임금이면 그 청구는 당연히 합법인데, 그 당시가 아닌 현재 그 기업의 경제사정이 안 좋으면 그 청구는 민법 제2조 신의칙 위반이고 따라서 위법이라는 참으로 이상한 논리다.

통상임금은 기업에서 수시로 사용해야 하는 개념이므로 판단기준이 간단·명료해야 한다. 지금은 신의칙 위반 여부에 대한 구체적 판단을 기업에 맡긴 꼴이다. 현재 일본 및 과거 우리 고용부의 지침과 같이 매월 1회 이상 지급되는 것만을 통상임금으로 보는 방식이 간단·명료하다. 법의 이념은 정의, 법적 안정성, 합목적성이다. 그중 법적 안정성이 최고의 가치다. 요즘 오히려 혼란을 부추기는 판결들이 부쩍 늘고 있다. 판사의 개성이 지나치게 표출되는 것도 우려스럽다. 통상임금 사건만의 문제가 아니다.

최준선 < 성균관대 법학전문대학원·명예교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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