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기업 '노사 상생 실험'

물가 상승률만큼만 임금 인상
1년 가까이 걸리는 임단협 협상에 '새바람'
호봉제도 개선…연령·생산성 따라 차등 인상
노사 각각 기본급 1% 사회적 상생 위해 기부

SK이노베이션이 국내 주요 기업 중 처음으로 임금 인상률을 소비자물가지수에 연동해 결정하기로 합의했다. 사진은 지난 4월 임금 및 단체협약 협상을 시작한 김준 사장(왼쪽부터)과 이양수 울산CLX 총괄, 이정묵 노조위원장. /SK이노베이션 제공

국내 최대 정유·화학 기업인 SK이노베이션이 국내 산업계의 소모적인 임금협상 문화를 바꿀 수 있는 계기를 마련했다. 매년 임금인상률을 물가상승률에 연동시킴으로써 노사 간 임금협상 자체가 필요없게 됐기 때문이다.

경제계에서는 매년 되풀이되는 협상 결렬부터 중앙노동위원회 조정 신청, 파업까지 관행적으로 이어져온 국내 노사문화를 바꾸는 데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고 있다.

◆SK노사의 파격적인 합의

지난해 SK이노베이션은 임단협 과정에서 노사 간 입장차를 좁히지 못해 중앙노동위원회 중재까지 받는 진통을 겪었다. 국제 유가 등 외부 변수에 영향을 많이 받는 업종 특성상 매년 기본급 인상이 쉽지 않은 데도 불구하고 경영실적과 무관하게 임금인상률을 정하다 보니 불필요한 노사 갈등이 발생했다는 게 회사 측 설명이다.

SK이노베이션 노사가 전년도 물가지수를 다음해 임금 상승률에 연동하기로 파격적인 합의를 이룬 것도 이 같은 점이 감안됐다. 급변하는 경영 환경에 효과적으로 대응하기 위해서는 그해 임금을 물가상승률 수준에 고정시키고 기본급 대신 경영 성과에 따라 받는 성과급 비중을 높이는 게 효율적이라는 판단에서다. 회사 관계자는 “노사 모두 지난해와 같은 전철을 밟지 말자는 공감대를 갖고 협상에 임했다”고 말했다.

노사는 올해 임단협에서 전년도 성과에 따라 다음해 초 지급하는 기존 성과급 외에 회사 성과지표(KPI) 등급에 따라 매년 7월 기본급의 최대 200% 수준의 성과급을 지급하기로 합의했다. SK이노베이션은 종전에도 경영 실적에 따라 성과급을 지급했다. 이 회사는 사상 최대 영업이익(3조2286억원)을 기록한 작년 실적을 반영해 올해 초 기본급의 1000%를 성과급으로 지급했다. 과장급은 2500만원, 팀장급은 3500만원 수준으로 작년 연봉의 50%에 달하는 규모다.

◆연령대와 생산성에 따라 차등

노사는 직원들의 연령대와 역량·생산성 향상도에 맞게 호봉 상승폭을 차등 조절하는 임금체계 개선안에도 합의, 임금 효율성을 높일 수 있도록 했다. 지금까지는 연차에 따라 일괄적인 호봉 상승폭을 적용했다. SK이노베이션은 직원들을 연령대별로 수습과 성장, 발전, 숙련 등 4단계로 구분했다. 이 가운데 결혼과 출산, 육아, 내집 마련 등으로 지출이 많은 성장과 발전 단계에 있는 30~40대 직원들의 임금 인상률을 숙련단계에 들어간 50대보다 높이겠다는 설명이다.

SK이노베이션 노사는 또 다음달부터 소외계층과 협력사 직원들을 지원하기 위한 사회적 상생 기부금도 도입하기로 했다. 직원들이 기본급의 1%를 출연하면 같은 금액을 회사도 내놓는 방식이다. 이정묵 SK이노베이션 노조위원장은 “이번 임단협은 조합원의 자긍심을 높이고 대기업 노조가 사회에 기여할 수 있는 방안을 고민한 결과”라며 “앞으로도 회사의 성장이 구성원과 사회의 행복으로 연결되도록 노력할 것”이라고 말했다.
◆다른 기업으로 확산될까

그동안 국내 산업계의 임단협은 해외에 비해 협상 빈도(임금협상 1년·단체협상 2년)가 너무 잦고 협상기간도 1년 가까이 걸려 소모적이라는 지적을 받아왔다. 고용노동부에 따르면 독일은 교섭 유효기간이 따로 없고 임금·단체협상도 따로 하지 않는다. 일본은 최장 3년이고, 미국은 법 규정은 따로 없고 통상 4~5년마다 임금협약을 재협상한다.

배규식 한국노동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경제 성장이 정체된 여건에서 매년 높은 수준의 임금 인상이 이뤄질 가능성이 점점 낮아지고 있다”며 “물가에 연동한 임금 인상은 불필요한 교섭 비용과 시간을 줄이고 합리적이고 예측 가능한 수준으로 임금인상률을 결정하는 장점이 있다”고 말했다.

김보형 기자 kph21c@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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