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국에서]

위기가 오면 변호사를 믿지 마라

입력 2017-09-06 18:57 수정 2017-09-07 01:56

지면 지면정보

2017-09-07A33면

법과 과학 뛰어넘는 국민정서법
기업들, 새 위기관리 매뉴얼 필요

김용준 생활경제부 차장
조현아 전 대한항공 부사장과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그리고 ‘릴리안’.

두 사람은 구속됐다. 한 브랜드는 존폐를 고민해야 하는 상황에 처했다. 위기관리란 측면에서 세 사건은 선명한 메시지를 남겼다. 변화된 위기의 지형이란 면에서 곱씹어볼 가치도 있다. “변호사는 위기관리의 책임자가 아니며, 정서는 법과 과학을 넘어선다”는 게 결론이다.

이른바 ‘땅콩회항’은 2014년 12월5일 일어났다. 대한항공 오너의 딸이 이륙 전 비행기를 잠시 후진시켰다가 비행해 돌아온 사건이다. 마카다미아가 발단이었다. 해프닝으로 끝났을 수도 있었지만 대형 사건이 됐다. 대한항공의 첫 번째 대응이 일을 키웠다. 사과문이었다. 요약하면 ‘조 부사장은 잘못이 없다. 고객 서비스를 위해 태도가 나쁜 직원들을 꾸짖었다’였다. ‘피해자를 관리하라’는 위기관리의 첫 번째 원칙을 무시했다. 가해자를 보호했다. 왜 그랬을까. 그들은 법정만을 염두에 뒀다. 법정에서 조 부사장에게 불리하게 작용할 어떤 조치도 취하지 않았다. 여론이 악화하자 뒤늦게 사과했다. 하지만 구속을 면하기에는 이미 늦은 뒤였다.

작년 12월6일.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청문회장에 나타났다. 사람들은 그의 입에 주목했다. 그러나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들어갔다. 청문회장에서 삼성의 전략은 모습을 드러냈다. 대한항공의 그것과 같았다. 법정에서 불리하게 작용할 수 있는 어떤 증언도 하지 않는 전략. 이 부 회장은 모르쇠로 일관했다.

이날 청문회가 끝나자 평가는 엇갈렸다. 삼성 내에서는 법적 문제의 소지를 없앴다는 평가가 나왔다. 하지만 위기관리 전문가들은 뭔가 이상하다고 했다. 일반인들 사이에서는 “삼성을 이끌 경영자로서의 어떤 면모도 발견할 수 없었다”는 평이 많았다. 그가 구속되자 삼성 내부에서도 평가가 달라졌다. “평판도 못 얻고, 구속도 됐다.”
두 사건 모두 법무 담당자들이 실권을 쥐고 대응한 흔적이 역력하다. 여론, 정치적 상황 등은 고려하지 않고 오직 구속을 면하는 길로 갔다. 그러나 변호사는 법정에서 고객을 법적으로 보호해주는 전문가이지 위기관리 전체를 담당하는 사람은 아니다. 그들을 중심으로 한 대응이 위기를 악화시킨 셈이다. 여론은 어느 곳에서나 법적 판단에 영향을 미친다. 물론 여론은 재판의 일부가 아니어야 한다. 그러나 현실은 그렇지 않다. 현실은 항상 당위 위에 서 있었다. 미국 변호사들이 심리학을 배우는 이유다. 삼성과 대한항공은 법정 전략과 여론 전략을 분리하지 못했다. 무죄추정의 원칙이 법정에서만 통용된다는 사실을 잠시 잊었다. 여론의 법정에서는 스스로 무죄임을 입증하지 않으면 유죄로 추정한다.

생리대 파동을 몰고 온 깨끗한나라의 릴리안 사태는 정서가 전문적 지식을 뛰어넘는 현실을 보여준 사례다. 이 사건은 과학적으로 검증하기 쉽지 않을 게 분명하다. 릴리안은 자신들이 생산해낸 제품, 즉 과학적 믿음에 근거해 초기에 소극적으로 대응했다. 그러나 정서는 과학을 덮어버렸다. 공포는 순식간에 확산됐다. 릴리안이 정신을 차리고, 실험 결과를 발표한 교수를 고발하며 대응에 나섰다. 하지만 타격은 컸다.

릴리안 사건은 기업이 맞닥뜨린 새로운 위기구조를 보여준다. 과학적 접근을 넘어서는 공포의 순간 확장과 여론의 전면 개입이 브랜드를 위협할 수 있는 그런 상황 말이다. 기업들이 새로운 위기관리 매뉴얼을 마련해야 할 때다.

김용준 생활경제부 차장

ⓒ 한경닷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광고

투표보험설계사·택배기사 등 노동3권 보장, 어떻게 생각하세요?

  • 특수형태 근로자도 노동조합을 결성하고 교섭을 통해 권익을 보호받을 것 410명 37%
  • 4대 보험 적용 등 고용주의 부담이 늘어나면 일자리가 되레 줄 수도 우려 702명 63%
광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