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 인터뷰]

천영우 "김정은 도발은 생존 위한 몸부림…사드 빠른 배치가 중국에도 '출구'"

입력 2017-08-27 19:38 수정 2017-08-27 19:38

지면 지면정보

2017-08-28A8면

천영우 전 청와대 외교안보수석이 말하는 '북한 도발 대응전략'

북한은 '핵 억지 이론' 안 통하는 비정상 체제
한국 자체 핵무장론, 현실 무시한 환상에 불과
북한, 미국이 선제공격해도 곧바로 대응 안 할 것
문재인 정부 외교전략은 너무 추상적이고 낭만적

허문찬 기자 sweat@hankyung.com

“김정은은 절대로 미친놈이 아닙니다. 정말 최고의 전략가입니다. 북한 도발의 근본적 원인이 체제 유지를 위한 몸부림임을 절대 잊으면 안 됩니다. 그 기조로 전략을 짜야 합니다. 그런데 그 간단한 이치를 우린 너무 자주 잊어버립니다.”

천영우 전 청와대 외교안보수석(65)은 지난 25일 한국경제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이같이 강조했다. 천 전 수석은 노무현 정부 시절 북핵 6자회담 수석대표였으며 이명박 정부에서 청와대 외교안보수석을 지냈다. 현재 한반도미래포럼 이사장으로 북핵 문제와 동북아 정세 분석 전문가로 활약하고 있다. 그는 ‘선제공격설’ ‘김정은 참수작전’ ‘한국 자체 핵무장론’ 등을 거론하며 “북핵 문제가 20년 넘게 해결되지 않는 걸 보면서 정부와 국민 모두 일종의 체념과 무기력함에 빠진 것 같다. 그러다 보니 별의별 주장이 다 나온다”고 지적했다.

▷북핵 문제 해결 방법으로 ‘김정은 제거설’이 꾸준히 제기되고 있습니다.

“김정은만 죽이면 모든 게 해결되리라 생각하는 건 대단히 순진한 발상입니다. 북한은 ‘김정은이 곧 나라’라고 생각하는 왕권신수설 체제입니다. 이 체제를 지탱하는 세력이 매우 막강하고, 북한 인민군 역시 이런 사고방식을 뼛속 깊이 새기고 있어요. 만일 선제공격 단계에서 김정은을 참수하겠다는 시나리오를 포함시킨다면 김정은은 거꾸로 먼저 공격을 감행하든지, 아니면 선제공격을 당한 뒤 본인도 죽을 각오로 반격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김정은의 진짜 의도는 무엇이라고 봅니까.

“김정은 정권이 전 세계를 상대로 도발을 감행하는 건 결국 살고 싶다는 의지의 표현 아닙니까. 김정은은 선제공격에 절대 맞대응하지 않을 겁니다. 매우 노련하고 인내심이 강한 인물입니다. 북한의 핵과 미사일 도발이 정말 안보를 위협할 정도로 턱밑에 다다르게 된다면 미국은 선제공격을 할 수도 있을 겁니다. 선제공격은 유엔 헌장 제51조에 보장된 자위권 행사니까요. 김정은은 만일 자신이 선제공격에 맞대응한다면 북한이 기껏해야 1~2주일밖에 못 버티고 초토화되리란 사실을 매우 잘 알고 있어요. 그런 생각을 가진 사람에게 참수작전설을 자꾸 흘리면 결국 도발의 유혹만 더 키울 뿐이죠.”

▷‘한국 핵무장론’을 어떻게 보십니까.

“북한은 전통적인 ‘핵 억지 이론’이 통하지 않는 체제입니다. 핵 억지 이론엔 ‘핵을 쓰면 망하고, 핵을 사용하지 않으면 망하지 않는다’는 전제가 깔려 있는데 이는 ‘정상 국가’에 적용됩니다. 핵 억지론의 기본 전략은 상호확증파괴(MAD: mutually assured destruction), 즉 핵을 쓰면 서로 절멸하기 때문에 핵을 사용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북한은 이게 통하지 않습니다. 정상 국가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현재 핵확산금지조약(NPT) 체제에서 합법적 핵 보유국인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상임이사국 5개국(미국·중국·러시아·영국·프랑스) 중 평화적 정권교체가 진행되지 않는 곳이 어딨습니까. 북한은 ‘핵을 안 쓰면 김정은 정권이 100% 쓰러지고, 핵을 쓰면 1%라도 체제 보장 가능성이 있다’고 믿고 있어요. 한국이 핵을 갖든 말든 북한은 상관하지 않습니다.”

▷북한은 절대 핵을 포기하지 않겠군요.

“생존과 관련한 확실한 약속을 받아내지 않는 한 절대로 먼저 포기하지 않을 겁니다. 미국도 그것을 알고 있기 때문에 더 이상 과거의 핵 억지론에 얽매여 북핵 문제를 보지 않고 있습니다.”

▷‘주한미군 철수설’까지 나오고 있습니다.

“북한의 완전한 비핵화 이후에나 가능할 시나리오인 데다 현실성마저 떨어지는 이야기입니다. 주한미군 철수는 북한이 원하는 평화협정의 핵심입니다. 북한과 평화협정을 맺으려면 북핵의 완전 폐기가 선행돼야 하죠. 그게 현실화되지도 않은 상황에서 이걸 논한다는 건 말도 안 되는 일입니다.”

▷중국과의 사드(고고도 미사일방어체계) 갈등이 계속되고 있습니다.

“주한미군 철수설과 사실상 맞닿아 있죠. 중국도 사드가 자국에 큰 위협이 되지 않는다는 걸 알고 있습니다. 중국 정부 당국자들이 시진핑 국가주석에게 사드 배치 논의 초반에 사드 성능을 과대평가해 보고했다는 설이 지배적입니다. 시 주석은 과거 중국 지도자들과 달리 사실상 1인 독재 체제를 구축하고 있습니다. 황제나 다름없는 위치가 돼 가고 있죠. 그런 상황에서 시 주석에게 감히 사드와 관련해 수정 보고를 할 사람이 없다는 게 중국 측 이야기입니다. 한국에서 가능한 한 빨리 사드 배치를 끝내야 중국으로서도 ‘출구’를 마련할 여지를 줄 수 있습니다.”

▷현 정부 외교정책을 어떻게 평가합니까.

“너무 초현실주의적이고 낭만주의적으로 접근하는 측면이 있습니다. ‘레드라인’ 발언 논란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고 봅니다. 레드라인은 모래 위에 선 하나 긋는 것처럼 단순한 일이 아닙니다. 미국이 레드라인에 대해 절대 거론하지 않는 이유는 북한이 레드라인을 넘었을 때의 대응 유연성을 확보하기 위해서입니다. 대통령이 레드라인에 대해 직접 언급하고, 훗날 북한이 그 레드라인을 넘어버렸을 때 한국이 실질적인 대응을 하지 못한다면 북한은 한국이 제시하는 레드라인을 무시해버릴 겁니다.”
▷북핵 해결을 위한 우리 정부의 올바른 방향은 무엇입니까.

“외교 전략을 짤 땐 두 발이 언제나 땅을 딛고 있어야 합니다. 그만큼 현실적이어야 한다는 뜻입니다. 지금 정부는 지나치게 추상적이고 낙관적인 외교적 언어를 쓰고 있는 것 같습니다. 안보 불감증은 어쩌면 정부가 자초하고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코리아 패싱(한국이 한반도 외교·안보 문제에 나서지 못하는 상황)’을 방지하기 위해선 한국이 북한에 실질적으로 무엇을 줄 수 있고, 무엇을 빼앗을 수 있는지 냉정히 평가해야 합니다. 북핵 문제 해결을 위한 힘을 모으려면 미국과 중국, 일본 등 주변 강국들과 적극 협력하는 정교한 외교가 필요합니다.”

■ 천영우 전 외교안보수석은

△1952년 경남 밀양 출생 △동아고, 부산대 불어과 졸업 △외무고시(11회) △외교부 정책총괄과장·경수로사업지원기획단 국제부장 △국제기구정책관 △유엔대표부 차석대사 △한반도평화교섭본부장(북핵 6자회담 수석대표) △주영국 대사 △외교통상부 제2차관 △청와대 외교안보수석

이미아 기자 mia@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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