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적립금 절반 헐어서 재원 보충 계획 세웠지만 지금도 법적 요구액 미달
2023년이면 소진 우려…"보험료 인상 불가피"
문재인 정부가 미용, 성형 등을 제외한 거의 모든 의료비에 건강보험을 적용하기 위해 건강보험 누적적립금 20조원 중 10조원을 쓰겠다는 계획에 대해 ‘건강보험법 위반 소지가 있다’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보건복지부는 지난 9일 “자기공명영상(MRI) 촬영 등 건강보험 비(非)급여 항목 3800여 개를 전면 급여화하기 위해 2022년까지 30조6000억원을 들이겠다”고 발표했다. 재원 조달 방안에 대해선 “건강보험 누적수지 20조원 중 절반가량과 국고 지원 확대, 보험료 인상 등을 통해 마련하겠다”고 했다.

건강보험법 제38조1항은 ‘건강보험공단이 회계연도마다 잉여금 중 그 연도의 보험급여에 든 비용의 100분의 5 이상을 그 연도에 든 비용의 100분의 50에 이를 때까지 준비금으로 적립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예컨대 공단이 한 해 보험료로 200만원을 거둬들이고, 보험금으로 100만원을 써 100만원의 잉여금이 생겼다면 이 중 5만원 이상을 따로 떼 50만원이 될 때까지 적립금을 쌓아야 한다는 의미다. 의료 수요 폭증에 대비해 곳간을 넉넉히 채워놓으려는 취지다. 공단은 지난해 53조원가량을 보험금으로 지출했다. 법에 따르면 지출금의 절반인 26조원까지 잉여금을 쌓아야 한다. 지난해까지 적립금이 20조원인 점을 감안하면 6조원의 추가 적립이 필요하다.

그러나 정부는 추가 적립은커녕 기존 적립금의 절반을 헐어 쓰겠다는 방침이어서 법 위반 논란이 일고 있다. 법조계 관계자는 “현재 적립금도 법적 요구액에 미치지 못하는 상황에서 이를 더 까먹겠다는 것은 현행법을 위반할 소지가 있다”고 말했다.

정부의 건강보험 적립금 사용 목적이 법에 위배되는 것 아니냐는 지적도 나온다. 건강보험법 제38조2항은 ‘준비금(적립금)은 부족한 보험급여 비용에 충당하거나 지출할 현금이 부족할 때 외에는 사용할 수 없다’고 규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복지부 관계자는 이에 대해 “1999년 법 제정 당시와 비교해 건강보험 지출금이 급격히 늘어났다”며 “지출금의 절반까지 적립하도록 한 것은 지금 현실과 맞지 않는다”고 말했다. 적립금이 20조원이나 되는 상황에서 이를 26조원까지 늘려 쌓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는 얘기다.
법 개정 움직임도 있다. 전혜숙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지난해 준비금 적립률을 지출금의 50%에서 15%로 낮추는 내용의 건강보험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건강보험 재정을 사용하지 않고 쌓아두면 보험료를 내는 국민만 부담을 질 뿐이라는 이유에서다.

문제는 복지부 예상보다 건강보험 재정이 더 소요될 경우다. 저출산·고령화가 빨라지는 상황에서 건강보험 보장성 확대로 의료 수요가 폭발적으로 늘어나면 적립금을 다 써도 모자랄 수 있다는 것이다. 기획재정부는 이미 건강보험 적립금이 2023년이면 소진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이렇게 되면 보험료를 급격히 올릴 수밖에 없게 된다. 김용하 순천향대 IT금융경영학과 교수는 “정부 계획대로라도 보험료율이 현재 6.12%에서 7% 중후반대로 오르게 될 것”이라며 “적립금이 소진될 경우 보험료 인상 압박이 더 세질 것”이라고 말했다.

김일규 기자 black0419@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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