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 이사 보수청구권의 부인
(대법원 2016년 1월28일 선고, 2014다11888 판결)

일러스트=조영남 기자 jopen@hankyung.com

주식회사에서 주주총회와 이사회 사이의 권한을 어떻게 나눠야 하는지는 회사의 의사결정과 관련해 매우 중요한 사안이다. 이사의 보수는 이사가 회사에서 위임받은 사무에 대한 집행의 대가로서 회사가 이사에게 지급하는 것이다. 이사의 퇴직금도 재직 중 직무 집행에 대한 대가로서 후급(後給)한다는 점에서 보수에 포함된다.

상법에 따르면 이사의 보수는 그 액(額)을 정관에 적어두거나 주주총회가 결정할 권한을 가진다. 이 때문에 주주총회가 이사의 보수 총액 등에 관해 아무것도 정하지 않은 채 이사회에 보수 결정을 무조건 일임하는 취지로 결의했다면 그 결의는 법적 효력이 없다. 이사가 회사 경영에 전문성을 가지고 있어 인사평정(人事評定)에 능하다는 점을 고려한다면 이사의 보수를 책정하고 결정하는 일은 본래 이사회 업무에 속해야 하지만, 이를 결정할 때 회사의 이익과 이사의 개인적 이익이 충돌할 우려가 있는 까닭에 상법이 아예 이를 정책적으로 정관에 정하거나 또는 주주총회 결의사항으로 규정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권재열 경희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이사회 산하 위원회가 그 구성원인 이사의 보수를 정하는 미국에서는 과도한 보수가 이사 스스로의 이익을 회사 이익보다 중시하는 것이라는 논란이 있어, 이사의 보수 책정과 관련해 충실의무(법령과 정관의 규정에 따라 회사를 위해 그 직무를 충실하게 수행할 의무) 위반 여부가 다툼의 대상이 되기도 했다. 하지만 한국에서는 지금까지 그런 우려는 크지 않았던 것이 사실이다. 상법은 이사의 보수에 대해 절차적인 측면을 규제할 뿐이어서 보수 규모 적정성 또는 상당성이 법적인 문제가 될 여지가 상대적으로 작았던 것에서 그 이유를 찾을 수 있다. 그러나 최근 들어서는 한국 법원도 이사가 회사에 제공하는 반대급부와 그 지급받는 보수 사이에는 합리적 비례관계가 유지돼야 한다는 입장을 견지하고 있다. 이런 법원의 태도를 한층 견고하게 하는 데 밑거름이 된 것이 바로 대법원 2016년 1월28일 선고 2014다11888 판결이다.

주총서 이사 퇴직금 규정 통과

이 판결 대상인 사건의 사실관계를 들여다보자. 피고 회사는 충남 당진 행담도 해양복합관광 휴게시설 개발사업을 위해 한국의 어느 공기업과 싱가포르 법인 및 국내 굴지의 건설회사가 함께 설립한 법인이다. 피고 회사의 경영 실적과 재무 상태가 지속적으로 어려워져 73억원가량의 누적 손실을 기록했는데, 대표이사에게 지급하는 급여가 그 손실의 주요 원인이었다. 피고 회사의 대표이사와 이사로 재직 중인 원고들은 자신들이 곧 이사직을 사임할 수밖에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는 상황에서 피고 회사가 발행한 주식 총수의 90%를 가진 지배주주에게 영향력을 행사해 자신들의 퇴직금을 과도하게 인상하는 것을 내용으로 하는 퇴직금 규정을 주주총회에서 통과시켰다. 그 퇴직금 규정을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대표이사에게는 종전의 5배에 해당하는 지급률(근속연수 1년당 5개월)을 적용하고 이사에게는 종전의 3배에 해당하는 지급률(근속연수 1년당 3개월)을 적용하며, 그 인상된 퇴직금 지급률을 임원의 근속기간 동안 소급해 적용하는 내용이었다. 그 후 대표이사와 이사직에서 퇴직한 원고들은 피고 회사를 상대로 거액의 퇴직금을 지급할 것을 청구했다.

“직무와 보수는 비례관계 유지돼야”

대법원은 비록 보수와 직무의 상관관계가 상법에 명시돼 있지 않더라도 이사가 회사에 제공하는 직무와 그 지급받는 보수 사이에는 합리적 비례관계가 유지돼야 함을 재차 확인했다. 이어 거의 도산 직전에 놓이다시피 한 피고 회사에서 퇴직을 목전에 둔 이사가 최대한 많은 보수를 받기 위해 자신의 지위를 이용해 영향력을 행사함으로써 주주총회에서 지나치게 과다한 보수 지급을 가능케 한 결의를 이끌어낸 경우, 그런 이사의 행위는 회사 재산 유출을 야기한 ‘배임’ 행위이므로 그의 보수청구권 행사를 허용하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이 판결은 이사들의 주도 아래 이뤄져 사실상 주주들의 자주적 판단을 결여한 주주총회 결의는 유효로 보되 이사의 보수청구권을 인정하지 않는 쪽으로 풀이한 것이다.

주총 결의도 결과는 배임 행위

국내에는 오래전부터 이사의 직무와 그 보수는 합리적인 비례관계에 있어야 하며 회사의 재무 상태에 비춰 적정해야 한다는 견해가 제시돼 왔다. 이사의 보수가 적정하지 않은 것은 회사의 자본충실(자본액에 상당하는 재산을 실질적으로 확보하는 것)을 해쳐 주주와 채권자에게 손실을 초래한다는 것이다. 대법원은 2015년 이사의 보수가 합리적인 수준을 벗어나 현저히 균형성을 잃을 정도로 과다하다는 특별한 사정이 있는 경우에는 보수청구권의 일부 또는 전부에 대해 행사가 제한된다고 판시했다. 또 회사는 합리적이라고 인정되는 범위를 초과해 지급한 보수의 반환을 청구할 수 있다고 봤다.

그러나 이 판결은 한 걸음 더 나아가 원고들을 비롯한 피고 회사의 이사들이 이사회 결의를 거쳐 퇴직금 규정을 마련하고 주주총회에서 이사회 결의안을 통과시켰다는 사정만으로 그들의 위법행위가 정당화될 수 없으므로, 그 배임 행위의 결과인 이 사건 퇴직금 규정을 근거로 퇴직금 청구권을 행사할 수는 없다는 식으로 법리를 발전시켰다.

주식이 광범위하게 분산돼 있는 회사는 그 주주가 회사 경영에 많은 관심을 가질 것을 실제 기대하기 어렵다. 주주총회가 ‘관객이 적은 희극’에 비유되는 것처럼 현실에서는 제대로 기능하지 않는다는 것은 널리 알려져 있는 사실이다. 그러다 보니 형식적으로는 정관으로 혹은 주주총회에서 이사의 보수를 결정하는 것으로 보이지만 실질적으로는 이사 스스로 자신의 보수를 정한 것과 다름없는 경우가 발생한다. 특히 한국의 여러 기업에서는 절대적인 지배주주가 이사를 겸하는 경우가 많은 만큼 회사 재산의 부당한 유출을 막아 소수주주와 채권자를 보호하기 위해서는 설령 주주총회에서 이사의 보수 총액을 정해도 법원이 공익 수호자로서 이사의 보수 규모가 적정한지에 관해 후견적으로 판단한 것에 대해 나무라기 어렵다.

법원이 보수의 적정성을 판단?

그러나 다음과 같은 이유에서 이사의 보수 규모에 대한 법원의 적정성 판단은 매우 극단적인 경우에 한정돼야 한다고 보인다. 첫째, 상법상 이사 보수의 결정에 대한 통제는 다층적으로 이뤄진다. 즉 이사의 보수가 정관 규정이나 주주총회에서 정해질 뿐만 아니라 이사 보수의 결정을 위한 주주총회에서 주주인 이사는 특별이해관계인에 해당돼 의결권을 행사할 수 없다. 우리처럼 원칙적으로 주주총회에서 이사의 보수를 정하는 일본에서도 법원이 이사의 보수 적정성을 심사하지 않는다고 한다. 게다가 보수 규모의 적정성을 판단하는 것은 주관적인 성격이 강하고 평가 방법도 매우 다양해 그 판단은 지난한 작업이다. 이 때문에 이사의 보수를 이사회 아래에 설치한 위원회 결의에 의해 정하는 미국에서도 이사의 보수 규모 적정성을 따지려 하지 않는 경향이 있다.

둘째, 상법상 이사가 회사에 대해 수임인의 지위에 있고 회사의 이익이 주주 이익과 반드시 동일하다고는 볼 수 없지만, 그렇다고 해서 회사 이익과 주주 이익이 상호 괴리됐다고 단정하기에는 무리가 있다. 이처럼 주주가 회사의 주된 이해관계자라는 점을 부인하기 어렵다면 주주총회의 결정에 왈가왈부하는 것은 자제돼야 한다는 주장도 가능하다. 특히 이 판결에서와 같이 법원의 후견적 역할은 주주가 자주적인 의결권 행사를 하고자 하는 유인을 감소시킴은 물론이고 주주들이 합리적 의결권을 행사하고자 하는 노력에 헤살을 놓는 것과 다를 바 없다.
'황금낙하산' 효력도 부인될 수 있어

‘황금낙하산’이라 함은 적대적 인수합병(M&A)이 성공해 이사나 기타 경영진이 퇴임하기에 이른 경우에 고액의 퇴직보상금을 지급하는 것을 내용으로 하는 정관 규정을 의미한다. 이는 대상 회사의 재무 상태를 악화시켜 적대적 M&A를 통해 획득할 수 있는 이익을 줄이는 것이어서 공격자의 M&A 공격 유인을 줄이는 방어 방법이다.

이런 황금낙하산이 과연 유효할까. 2008년 서울중앙지방법원은 거액의 퇴직보상금을 이사에게 지급하도록 정관에 정하는 것은 이사의 임기 중 주주총회가 특별결의로써 이사를 해임하는 것을 사실상 불가능하게 한다는 점에서 주주총회의 이사 선임 또는 해임 권한을 본질적으로 침해한 위법이 있다는 취지로 판단(서울중앙지법 2008년 6월25일 선고, 2007가합109232 판결)한 바 있다.

권재열 < 경희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 한경닷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