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산 칼럼]

슘페터가 케인스를 만날 때

입력 2017-08-10 19:03 수정 2017-08-11 03:34

지면 지면정보

2017-08-11A34면

규제개혁으로 슘페터의 공급측 혁신 꾀하되
부작용 해소 위해 케인스적 복지정책 필요
그런데 케인스만 보이고 슘페터는 어디 있나

안동현 < 자본시장연구원장 ahnd@kcmi.re.kr >
필자가 과거 미국 대학에서 교수로 재직할 당시 천재라고 생각한 학자가 두 명 있었다. 한 명은 지금은 학계를 떠나 헤지펀드를 운용하고 있는, 당시 워튼경영대학원에 재직한 샌포드 그로스먼 교수고 다른 한 명은 메릴랜드대에 재직하고 있는 앨버트 카일 교수다. 두 사람 모두 정보재무학의 거두로 그로스먼은 학계에 남아 있었다면 틀림없이 노벨상을 수상했을 것이다. 카일 교수는 그로스먼만큼 다작은 아니지만 한 편 한 편이 그야말로 주옥 같은 논문으로 심지어 그의 이름을 딴 ‘Kyle Meets Glosten and Milgrom (카일이 글로스틴과 밀그롬을 만났을 때)’이란 논문이 경제학 최고의 저널인 이코노메트리카에 실렸을 정도다.

공교롭게도 두 사람은 동갑으로 시카고대에서 2년차로 경제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어쩌면 이들보다 더 많은 업적을 남긴 학자들이 있을지 모르겠지만 필자는 이들만큼 ‘아름다운 두뇌(beautiful mind)’를 본 적이 없다. 한때 어떻게 이런 두 명의 천재가 동시에 나타났을까 하는 의문이 든 적도 있다.

1883년 마르크스가 세상을 떠난 해에 이들보다 더 유명한 두 명의 경제학자가 세상에 태어났다. 경제학의 거두 케인스와 슘페터다. 20세기 전반 당대 최고 학자로 경제학계를 주름잡은 두 사람은 평생 숙적으로 남았다. 케인스는 슘페터를 의도적으로 무시했고, 슘페터는 케인스를 질시하고 경멸했다. 케인스가 경제학적 직관과 정태적 분석을 중시했다면 슘페터는 수리적인 접근과 동태적 분석에 집중했다. 대공황에 대한 정책 접근에서도 상반된 입장에 섰다. 케인스가 재정 및 통화정책을 통한 단기부양책을 강조한 반면 슘페터는 경기 침체는 ‘건강에 좋은 냉수마찰’과 같으며 결국 기업가의 혁신을 부추겨 새로운 균형점을 찾아갈 것이기 때문에 정부 역할은 이런 혁신의 방해 요소를 제거하는 데 주력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케인스가 즉각적인 처방약을 중시했다면 슘페터는 면역기능 제고를 통한 자연적 치유를 강조한 것이다. 당연히 둘 중 승자는 케인스였다. 정책 효과가 보다 즉각적이고 정부 역할을 중시하다 보니 관료들이 선호하게 됨에 따라 케인스 이론이 더 각광을 받았다.

그러나 2008년 금융위기 이후, 특히 기술혁신에 기초한 4차 산업혁명이 화두가 되면서 슘페터 이론이 부활했다. 실제 그의 이론은 수리경제학적으로 많은 시사점을 던졌다. 그는 왈라스의 일반균형이론을 계승해 기존의 균형에서 이탈했을 때 어떤 조정 과정을 거쳐 새로운 균형이 성립되는지에 연구를 집중했고 이런 조정 과정에서 경기순환을 이해하고자 했다. 그런데 그는 기존 균형의 이탈은 ‘창조적 파괴’라고 불리는 기업가의 혁신에 의해 일어난다고 주장했으며 이런 공급 측 혁신에 의해 새로운 수요가 창출돼 유효수요 부족 문제가 해결된다고 봤다.
말년에 그는 정치에 관심을 돌려 기업가의 혁신으로 인해 자본주의는 성장하지만 같은 이유로 부의 불평등은 피할 수 없다고 봤다. 이에 따라 부의 불균형 해소를 위한 규제 강화 및 복지에 대한 요구 등 비(非)자본주의적 가치가 증폭하면서 자본주의는 궁극적으로 사회주의로 발전할 것이라고 예견했다.

최근 변양균 전 기획예산처 장관의 저서 《경제철학의 전환》을 읽어볼 기회가 있었다. 변 장관은 슘페터 이론을 통해 구조적 저성장 탈피를 주장하고 있다. 그는 혁신을 촉진시키기 위해 과감한 규제개혁을 비롯한 생태계 조성을 주장하면서 동시에 이로 인한 부작용을 해소하기 위해 교육, 주거, 의료 등 기본 수요(subsistence consumption)를 복지 차원에서 확보해 주는, 케인스적 복지정책의 겸용을 주장했다. 여기에 핵심은 경제주체 간에 ‘줄 건 주고 받을 건 받는’ 윈윈 전략을 통해 신뢰에 기반한 경제시스템을 만들어야 슘페터의 비관적 자본주의 결말을 피할 수 있다는 것이다. 필자가 가장 공감하는 부분이다. 경제란 결국 인센티브에 의해 좌우되기 때문이다. 문득 ‘슘페터가 케인스를 만날 때’를 부제로 했더라면 좋았겠다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현 정부 정책에서 케인스는 보이는데 슘페터는 어디에 있을까?

안동현 < 자본시장연구원장 ahnd@kcmi.re.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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