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뜨는 상권'의 그늘, 젠트리피케이션 해법을 찾아서

입력 2017-08-13 14:27 수정 2017-08-13 14:27

‘젠트리피케이션(gentrification).’ 재개발·뉴딜정책 등 도시 재생 사업으로 낙후된 도심 지역이 개발되면 자연스럽게 그 지역의 부동산 가치가 올라가면서 나타나는 현상이다.

임대료 등 높아진 비용을 지불하기 힘든 원래 거주민들은 결국 다른 지역으로 쫓겨나듯 이주한다. 그리고 이런 현상은 씁쓸하지만 어느덧 당연한 것으로 여겨지고 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젠트리피케이션 현상을 백안시할 수만은 없다. 투자와 보상이라는 자본주의의 결과물이 젠트리피케이션으로 나타나기 때문이다.

하지만 젠트리피케이션은 낙후된 도시를 재생시켜 새로운 도시로 만들어 주는 긍정적인 역할도 한다.

대표적인 곳이 미국 뉴욕의 ‘소호’거리다. 도시 재생을 통해 문화적 색깔을 덧입히고 세계의 관광객들을 불러들였다. 수많은 글로벌 상권들이 이와 같은 과정을 거쳐 탄생했다. 젠트리피케이션 자체가 부정적인 의미를 지니는 용어는 아닌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국내에서 젠트리피케이션이 ‘부정적’으로 다가오는 이유는 두 가지다.

먼저 젠트리피케이션의 속도가 지나치게 빠르기 때문이다. 매우 짧은 기간에 특정 장소에서 집중적으로 과다하게 일어나고 있다.

서울시의 ‘상업용도 변화 측면에서 본 서울시의 상업 젠트리피케이션 속도 연구’ 보고서에 따르면 2010년 이후 젠트리피케이션이 진행된 서촌과 성수동은 빠른 속도로 근린 상점이 감소했다.

서촌은 2011~2013년 근린 상점이 연평균 14.7% 줄었고 성수동은 2013~2015년 13.4% 줄었다. 한국에서 젠트리피케이션이 얼마나 빠르게 진행되고 있는지를 보여준다.

둘째, 이보다 더욱 문제가 되는 것은 젠트리피케이션 현상의 ‘최종 이익’이 원래 거주민이나 오랜 기간 ‘텃밭’을 일궈 온 기존 상인들에게 돌아가지 않는다는 점이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한국에서도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종로구 서촌과 성동구 성수동 상권을 비롯해 곳곳에서 자체적인 ‘상생 협약’을 체결하고 해법을 찾고 있다. 정부 역시 기존 상인들이 보다 안정적으로 생업에 종사할 수 있도록 임대 기간을 늘리는 방안도 고민 중이다.

하지만 쉽지 않다. 그러면 다른 나라들은 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했을까. 해외의 글로벌 상권들은 젠트리피케이션의 문제점을 완화하기 위해 어떤 노력을 하고 있을까.

어떤 방안을 고민하며 상인과 건물주 등 상권의 모든 구성원들이 ‘상생’할 수 있는 길을 찾아가고 있을까. 지금부터 우리가 하려는 이야기는 바로 이런 것이다.

한경비즈니스 5명의 기자들이 태국 방콕, 영국 런던, 프랑스 파리, 일본 도쿄, 미국 뉴욕, 중국 베이징을 다녀왔다. 글로벌 상권들의 젠트리피케이션 상생 해법 찾기.

그 첫째로 정부의 노력으로 젠트리피케이션을 극복한 태국 사례를 소개한다.

'자영업자의 왕국' 방콕 라따나코신을 가다

도시 재생 사업을 통해 새롭게 탈바꿈한 마하랏 선착장과 라따나꼬신 지역./ 마하랏 선착장 제공

태국의 수도이자 관문인 방콕. 1782년 라마 1세 국왕 때 세워진 이 도시는 옛것과 새것이 조화를 이루고 있는 태국을 가장 잘 보여주는 곳이다.

현대식 발전을 힘차게 추구하면서 전통을 존중하는 태국의 문화는 방콕의 거리 곳곳에 스며들어 있다.

그중에서도 라따나코신 지역은 태국 왕조의 역사와 현재 방콕의 도시를 만들어 낸 시초다. 수도 방콕에서 가장 오랜 역사와 전통을 지녔고 왕궁, 왓프라깨우(에메랄드 사원), 방콕의 옛 요새들 그리고 국립박물관 등 주요 관광지가 모여 있다.

이 때문에 기념품 가게와 다양한 먹거리를 파는 상권이 형성돼 있다. 또한 왕궁에서 약 1km 떨어진 방람푸시장 근처에 형성된 여행자거리는 방콕의 대표적 상권 밀집 지역으로 전 세계의 여행객들을 그러모으고 있다.

사람이 모이니 당연히 이들 지역의 상가는 임대료도 비싸다. 지역별 편차가 있기는 하지만 카오산로드는 한국 강남의 상가 평균 임대료(3.3㎡당 15만원 내외)와 비슷하다.

태국 1인당 국내총생산(GDP)이 6265달러라는 점을 감안하면 웬만한 태국 국민들은 상상도 할 수 없는 액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 지역에서는 대형 프랜차이즈 매장을 찾아보기가 쉽지 않다. 상가의 주인은 대부분이 자영업자들이다.

◆ 거대자본에 맞서는 자영업자들

한국보다 뒤처진 경제 환경과 열악한 인프라에도 불구하고 이들 상인들은 거대 자본으로부터 자신들의 상권을 지켜내고 있다.

문화와 지역적 특성을 고려한 행정부의 도시 개발 정책과 자신들이 일궈낸 상권을 지키려는 상인들의 노력이 만들어 낸 결과다. 이들은 도시가 건립되고 235년이라는 역사를 품으며 형성된 자연스러운 상권을 지키기 위해 노력한다.

가장 대표적인 곳이 방람푸다. 이곳은 노점상들이 즐비한 한국의 재래시장과 흡사한 모습이다. 태국의 대표 음식 팟타이·똥얌꿍·해물볶음밥·닭죽 등 다양한 현지 음식 냄새가 코를 자극한다.

단맛·짠맛·신맛 그리고 팍치(고수)의 향이 어우러진 태국만의 거리 냄새다. 상가는 허름하며 거리는 비좁고 도로는 울퉁불퉁하다. 또한 여기저기에서 올라오는 하수도 냄새에 코를 부여잡게 된다.

하지만 이 거리는 관광객들로 북적인다. 누구나 편하게 노상에 앉아 음식을 맛보고 친구들과 웃고 즐긴다. 이처럼 지금은 관광객의 명소가 된 방람푸이지만 사실 이곳 역시 많은 변화를 겪어 왔다.

방람푸는 태국의 대표적 쌀 시장이었다. 쌀 생산 1위 국가답게 대규모 쌀 도매상이 형성돼 있었지만 관광 지역으로 발전하면서 쌀가게는 사라지고 그 대신 관광객을 대상으로 하는 음식점과 관광 상품들이 매장을 차지하게 됐다.

하지만 상가의 형태는 대부분이 과거의 모습이다. 간단한 유지·보수와 리모델링을 했지만 건물을 허물고 대형 빌딩이 들어온 사례는 거의 없다. 이는 태국 행정부의 강력한 도시 개발 계획 때문이다.

과거 왕실과 가깝고 태국 고유 문화적 특성을 간직한 이곳을 관광·문화 보존 구역으로 묶어 개발을 제한하고 있다. 이곳의 땅과 건물은 왕실과 행정부 그리고 민간인이 고루 소유하고 있지만 단순히 돈이나 권력이 있다고 해서 개발할 수 없다.

태국 여행객에게 빼놓을 수 없는 장소, 카오산로드는 젠트리피케이션의 위협을 가장 많이 겪어 온 곳이다. 1970년대 후반부터 서양의 젊은이들이 이곳을 아시아 여행의 거점으로 삼으면서 개발되기 시작했다.

‘전 세계 배낭여행자들의 베이스캠프’라는 별칭이 붙을 만큼 언제나 여행자들로 북적이는 카오산로드는 방람푸 지역에서 가장 활기찬 분위기를 연출한다.

마하랏 선착장 외관./ 방콕(태국)=차완용 기자

◆ 여행자와 상인이 만든 거리 카오산로드

사람이 많이 모이기 때문에 이곳 상가의 임대료는 무척 비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곳에서 대형 음식점이나 프랜차이즈 매장을 찾기가 쉽지 않다.

그 대신 400m 정도 이어지는 2차로 도로에 수많은 게스트하우스·인터넷카페·레스토랑·바·클럽·마사지숍·기념품점 등 여행자 편의 시설 및 유흥업소가 모여 있다.

한국의 번화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프랜차이즈 매장이 없는 이유는 이곳 거리를 거닐다 보면 느낄 수 있다.

태국의 여행 문화에 빠진 사람들의 자유롭고 활기찬 분위기가 그 어느 곳이나 있는 프랜차이즈 매장과 어울리지 않는다.

팟타이를 먹으며 걸어 다니는 연인, 길거리 플라스틱 의자에 앉아 레게 머리를 땋거나 헤나를 그려 넣고 있는 여자, 길거리에 털썩 주저앉아 맥주를 홀짝이는 유럽인, 음악에 맞춰 춤을 추는 남자들 등 다양한 무리의 여행자들은 태국의 문화를 한껏 즐긴다.

방람푸 운하와 짜오프라야강 사이에는 왕궁을 둘러싼 또 다른 형태의 상가들이 있다. 이곳에도 다양한 물건과 음식을 파는 상가들이 즐비하다.

하지만 이곳은 방람푸나 카오산로드와 정반대의 느낌이다. 잘 정돈된 도로와 깨끗한 주변 그리고 유럽식 건물 속에 획일적으로 자리 잡은 상가다. 이런 상가가 들어선 건물은 근처 궁전 건물과 한데 어우러져 고풍스러운 느낌을 자아낸다.

이 지역이 가지고 있는 특성 때문이다. 왕궁은 태국 심장부와 같은 곳이다. 웅장하면서도 화려한 장식으로 치장된 건물이 인상적이다. 이런 왕궁과 어울리는 상가를 통해 하나의 상권을 만들었다.

◆ 유럽식 건물과 마하랏 선착장

이곳에서 약 1km 떨어진 곳에는 라따나코신 지역에서는 보기 드물게 민간이 독자적으로 주도한 쇼핑센터가 한 곳 있다.

바로 마하랏 선착장이다. 200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슬럼화돼 사람의 왕래가 없던 선착장이었지만 지금은 번듯한 쇼핑타운이 조성돼 있다. 개발이 엄격히 제한된 지역에서는 무척이나 이례적이다.

최신식 건물로 치장돼서인지 마치 한국의 아울렛 축소판 분위기를 연출한다. 이곳은 태국 내에서 상당히 성공한 도시재생 지역으로 꼽힌다. 운하와 한데 어우러진 레스토랑들과 카페들이 운치 있는 휴식 공간을 제공한다.

건물 구조도 인상적이다. 지역 경제와의 상생을 위해 인근에 자리한 구(舊)상가들과 통로를 공유한다. 입구가 단순히 한두 곳으로 정해져 있지 않고 수 갈래의 길이 구상가 도로를 통해 도로변으로 나갈 수 있다.
마하랏 선착장의 가장 큰 장점은 기존 상인들의 유입이다. 이 지역 대부분의 상인들이 판매하는 불상 전용 매장을 따로 만든 덕분이다. 슬럼화돼 사람의 발길이 끊겼던 지역을 개발하며 기존에 있던 상인들을 상가로 그러모았다.

물론 임대료는 기존에 비해 약 10배 정도가 올랐지만 마하랏 선착장 개발사인 슈파트라(SUPATRA)는 쾌적한 환경을 제공하고 방문객을 유치하기 위해 지속적으로 마케팅 활동을 펼치고 있다.

그 결과 태국의 중산층 이상의 관광객들과 외국인들이 즐겨 찾는 명소로 거듭났고 불상을 판매하는 상점의 매출도 올랐다.

상인들도 노력하고 있다. 자체적으로 운영위원회를 구성해 판매 품목이 겹치지 않게 매장을 운영하고 길거리에서 파는 제품과의 차별화를 위해 자체 인증 제도를 도입해 고객들에게 신뢰성을 높이고 있다. 그 결과 태국에서 판매하는 불상의 대표 상권으로 거듭났다.

방콕(태국)=한경비즈니스 차완용 기자 cwy@hankyung.com
사진 태국관광청 / 후원 한국언론진흥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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