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과장&이대리]

'아재룩'이라고 놀려도 반팔셔츠 포기 못해…땀 줄줄 나는데 부채 쓰란 공문보고 '한숨'

입력 2017-08-07 19:33 수정 2017-08-08 06:21

지면 지면정보

2017-08-08A26면

기상관측 사상 두 번째로 덥다는 올해 여름이다. 김과장 이대리들은 출근길부터 더위와의 전쟁이다. 찜통더위를 피하기 위해 체면은 잠시 접어둔다. ‘아재룩(아저씨를 의미하는 ‘아재’에 옷차림을 뜻하는 ‘룩’을 합친 말)’이라고 놀려도 할 수 없다. 반팔셔츠가 제일 시원하고 편하다. ‘쿨비즈’라고 우기면 그만이다. 더위를 피하려고 금쪽같은 아침잠도 줄이는 판이다. 기업의 냉방 사정에 따라 김과장 이대리들의 삶의 질에도 큰 차이가 난다. 김과장 이대리들의 힘겨운 ‘여름살이’를 들여다봤다.

“‘아재룩’이면 어때? 시원하면 그만이지”

공공기관에 근무하는 정모씨(31)는 요즘 반팔셔츠를 입고 출근길에 나선다. 아무리 더워도 젊은 세대에게 반팔셔츠는 섣불리 입기 어려운 옷이다. 아저씨 같은 옷차림을 의미하는 아재룩의 대표주자가 반팔셔츠라서다. 반팔셔츠를 입고 출근한 첫날 입사 동기들이 “이제 아재 다 됐네”라며 놀려댔다. 그럼에도 정씨는 꿋꿋하다. 모시 소재 셔츠나 민소매 러닝셔츠 등 전통의 아재룩에도 눈이 간다. “왜 지금까지 애써 덥고 갑갑한 긴팔셔츠를 입었는지 모르겠습니다. 겨드랑이 사이로 솔솔 들어오는 바람이 얼마나 소중한지 입어본 사람만 압니다.”

사무실엔 여름나기 아이템(기구)이 가득이다. 중소기업에 다니는 박모 대리(30)는 온갖 피서 아이템으로 중무장했다. 책상에는 보조배터리에 연결해 사용하는 휴대용 선풍기를, 책상 아래에는 발과 종아리를 시원하게 해 주는 일명 ‘발 선풍기’를 뒀다. 의자엔 바람이 잘 통하는 쿨방석을 깔았다. 수시로 몸의 열기를 식혀주는 냉각 스프레이도 뿌린다. 박 대리는 “사무실 에어컨은 일정 온도 이하로 못 내려가게 고정돼 있다”며 “업무에 집중하기 위해서는 개인용 냉방장비가 필수”라고 말했다.

냉장고 속 식재료도 좋은 피서 용품이 된다. 스타트업(신생 벤처기업)에 근무하는 정모 매니저(28)는 더울 때마다 오이 마사지를 한다. 차가운 오이를 꺼내 얇게 썰어 이마나 팔 등 노출된 신체 부위에 붙인다. 그는 “얼음팩도 있지만 오이가 훨씬 낫다”며 “오이는 모공을 좁히는 효과도 있어 일석이조”라고 말했다.

얼음 사서 출근하는 공공기관 직원들

대기업이나 은행에 다니는 직원들은 냉방병까지 걸린다지만 아무리 더워도 마음껏 에어컨을 켤 수 없는 공공기관 직원들에겐 여름은 분명 고난의 계절이다. 정부의 에너지 절약 정책에 따라 공공기관은 실내온도를 28도 이상으로 유지해야 한다. 전력 절감효과가 있는 냉방설비를 설치하면 26도까지 낮출 수 있지만 덥기는 마찬가지다.

서울 여의도의 한 공공기관에 다니는 장모 대리(31)는 얼마 전 점심시간에 노량진수산시장에 들렀다. 그가 찾은 곳은 얼음판매소. 단돈 만원에 승용차 트렁크를 가득 채울 정도로 많은 얼음을 샀다. 얼음을 가지고 사무실에 들어서자 부서원들이 줄을 섰다. 각자 준비한 대야에 얼음을 담은 뒤 물을 붓고 발을 담갔다. 30도를 웃도는 사무실 속 더위를 이겨내기 위해 직원들이 생각해낸 자구책이다. 장 대리는 “더위 피하려고 이런 것까지 해야 하나 싶다”며 “이 와중에 에너지를 절약하기 위해 에어컨 대신 부채를 쓰자는 식의 공문을 보면 절로 한숨이 나온다”고 푸념했다.

중앙부처 공무원 이모 주무관(39)은 점심시간이면 야외 주차장에 세워둔 자동차로 피신한다. 근무시간에는 그나마 켜져 있던 사무실 에어컨이 점심시간엔 꺼지기 때문이다. 대낮 뙤약볕을 피하기 위해 대형 햇빛가리개도 따로 장만했다. 이 주무관은 “주차장 중에서도 그늘지고 바람이 잘 통하는 곳이 명당으로 꼽힌다”고 말했다.

정부시책에 구애받지 않는 민간 기업들은 더위 ‘안전지대’다. 외국계 기업에 근무하는 신모 과장(31)은 요즘 회사로 ‘피서’를 간다. 클라이언트의 방문이나 회의가 잦다 보니 사무실 온도를 항상 23도로 시원하게 유지한다. 따로 카디건을 챙겨야 할 정도다.

지옥철 열기 피해 아침잠도 포기

출근길 찜통 같은 ‘지옥철’을 피하기 위해 출근 시간을 앞당긴 김과장 이대리들도 있다. 정유회사에 다니는 김모 과장(35)은 지난달부터 아예 새벽에 집을 나선다. 목적지는 회사 근처 요가학원이다. 땀 흘려 운동하고 찬물에 샤워까지 마치고 나오면 오전 8시30분. 출근 30분 전이다. 김 과장은 “뽀송뽀송한 상태로 출근하는 기분이 색다르다”며 “출근하기 전에 이미 할 일 하나를 끝냈다는 성취감도 쏠쏠하다”고 말했다.
출근한 뒤 일정 시간만 근무하면 자유롭게 퇴근할 수 있는 유연근무제를 십분 활용하는 이들도 많다. 한 경제연구소에 다니는 김모 연구원(30)은 7월 말부터 오전 7시에 출근하고 오후 4시에 퇴근한다. 김 연구원은 “동료들이 ‘아침잠이 없어 빨리 나왔다가 빨리 들어가는 임원 같다’고 놀리지만, 한증막 같은 지하철에서 땀을 빼며 출근하느니 아침잠을 희생하는 게 낫다”고 했다.

회사 근처 호텔에서 회사로 출근하는 직장인도 있다. 더위와 업무 스트레스에 지친 직장 동료들이 삼삼오오 짝을 지어 호텔로 피서를 떠나는 생활 속 ‘호캉스(호텔+바캉스)’족들이다. 카드회사에 근무하는 박모 과장(33)은 회사 선후배와 함께 지난주 수요일 5성급 호텔을 평일 특가로 구매했다. 이들은 30여 종의 와인과 함께 미니 스테이크, 수제 소시지, 감자, 치즈 등을 무한대로 먹을 수 있는 ‘와인 뷔페’를 즐겼다. 야외 수영장에서 간단히 물놀이를 한 뒤 호텔 방에 모여 막걸리로 작은 파티도 열었다. 박 과장은 “호텔에서 호사스러운 하루를 보내니 더위가 싹 가시는 기분”이라며 “특히 직장 상사 뒷담화가 평일 호캉스의 백미”라고 말했다.

황정환 기자 jung@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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