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책연구기관 '고용불안' 여전히 심각
"베이비부머 은퇴 대비해 연구인력 충원해야"

사진=게티이미지

"이미 포기했죠. 계약직으로 들어온 이상 정규직으로 전환되는 경우는 거의 없거든요."

한 국책 연구기관에서 연구원으로 근무 중인 김지현 박사(가명·36)는 최근 밤잠을 설친다. 겉보기에는 남들이 부러워하는 직장에 다니지만 그는 위촉연구원, 즉 근무 기간이 정해진 비정규직이다. 내년 초 계약 만료되면 직장에서 나와야 한다. 퇴근 후 매일 채용 공고를 확인하는 게 일상이 됐다. 그는 "정규직과 비정규직 개념이 생기면서 이상한 노동구조가 자리 잡았다. 계약직을 전전할수록 정규직 채용과는 점점 멀어지는 것 같다"며 한숨을 내쉬었다.

정부출연연구소(정출연) 등 국책 연구기관 연구인력의 '비정규직 쏠림 현상'이 심각한 것으로 나타났다. 국가과학기술연구회에 따르면 지난해 말 기준 25개 정출연 재직자 가운데 23.4%에 달하는 3714명이 비정규직이었다. 2015년에 비해 다소 개선됐지만 비정규직 연구인력 비중이 여전히 높은 편이다.

한국한의학연구원(36.4%), 한국생산기술연구원(39.0%), 한국건설기술연구원(36.0%), 한국식품연구원(37.6%), 안전성평가연구소(34.6%) 등 8곳은 연구원 3명 중 1명꼴로 비정규직이었다.

계약직이 정규직으로 전환 채용되는 것은 드물다. 논문, 특허권 등록, 기술이전료 수입 등 계약직 근무기간 실적에 따라 정규직으로 채용되는 경우도 있지만 대부분 계약 만료 후에는 김 박사의 사례처럼 새 일자리를 구해야 한다.

2007년부터 총액인건비제를 도입하면서 정규직 신규채용 재원 마련이 어렵기 때문이다. 여기에 기획재정부의 연구인력 정원(T.O) 관리 등의 제한이 겹쳐 불가피하게 연구인력이 비정규직으로 채용되고 있다.
석·박사급 고급인력 비정규직 증가는 연구 환경이 열악해지는 문제로 이어진다. 연구력 약화를 부채질할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한 정출연 소속 연구원은 "젊은 연구원을 보기 어렵다. 부서에 따라 40대가 막내인 경우도 있다"면서 "베이비부머 세대가 퇴직하면 어쩔 건가. 신규채용이 너무 적다"고 짚었다.

'허리' 급인 젊은 연구원들의 부재는 신진연구원 육성 부족, 나아가 국가 R&D(연구개발) 등 장기 연구과제 맥이 끊길 것이라는 우려까지 나오고 있다. 한 국책연구소에서 근무하는 유성현 씨(가명·33)는 "40대 후반에서 50대 나이의 선임연구원 급이 태반"이라면서 "20~30대 젊은 연구원이 거의 없어 걱정"이라고 말했다. 정출연 관계자도 "50년 이상 된 정출연이 설립 초기에 인력을 대거 채용한 데 따라 퇴임을 앞둔 고액 직급자들이 많은 상황이다. 인사 적체가 심하다"라고 덧붙였다.

실제로 한국과학기술기획평가원(KISTEP)에 따르면 정출연 연구인력 평균 연령은 2000년 39.6세에서 2014년 44.0세로 껑충 뛰었다. 초기 정규직 채용의 경우 정년이 보장되는 데다 조직이 고령화하면서 연구 현장은 20~30대 비정규직으로 채우는 악순환이 나타나고 있다.

이 같은 환경은 연구력 약화로 이어지기 십상이다. 석사학위 소지자인 유성현 씨는 "워낙 허리급 인력이 없다보니 수준에 맞지 않는 연구과제를 맡기도 한다. 그런 가운데 비정규직 인력 비중이 비정상적으로 높아 연구의 질 저하가 우려된다"고 전했다.

따라서 비정규직 연구원들은 다음달 발표되는 공공부문 비정규직 대상 정규직 전환 추진계획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정부는 최근 국가과학기술연구회 소관 25개 정출연 비정규직 연구원 현황을 파악했으며, 정규직 전환 여부와 실행방안 등을 검토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조아라 한경닷컴 기자 rrang123@hankyung.com
기사제보 및 보도자료 open@hankyung.com

ⓒ 한경닷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