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애란 자유통일문화원장, 추모배지 만들어 한·미에서 배포

"북한 감옥 끔찍, 가위 눌리기도…한국, 북한 인권에 더 관심 가져야"

이애란 자유통일문화원장이 자신이 디자인한 웜비어 조문 배지를 설명하고 있다. 배지는 사자(死者)에 대한 조의를 뜻하는 파란 리본 위에 태극기와 성조기로 한·미 동맹을 표현했다. 박수진 특파원

“오토 웜비어 사망으로 북한 인권 실태에 대한 한국 내 관심이 높아지길 바랍니다.”

‘탈북여성 박사 1호’로 잘 알려진 북한 인권운동가 이애란 자유통일문화원장(사진)은 19일(현지시간) 미국 워싱턴DC에서 한국경제신문과 한 인터뷰에서 “웜비어 사망 사건은 북한의 열악한 인권 실태를 그대로 보여주는 사례”라며 이같이 말했다.

미국 대학생 오토 웜비어는 지난해 초 평양 숙소에서 정치 선전물을 떼어냈다가 적발돼 15년 교화형을 받고 복역하던 중 혼수상태에 빠져 지난달 미국으로 송환됐으나 사망했다. 이 원장은 지난 18일 미 오하이오주 신시내티에 있는 웜비어 묘지를 참배하고 자신이 디자인한 웜비어 추모배지 700여개를 한국과 미국에서 배포했다.

이 원장은 “미국인도 북한 감옥에 들어가면 거의 산송장으로 실려 나오는데 북한 사람들은 오죽하겠느냐”며 “북한 감옥에 들어가면 살아 나오는 경우보다 죽어 나오는 경우가 더 많다”고 말했다.

그는 웜비어와의 개인적 인연과 자신의 북한 수감 경험을 소개하며 열악한 북한 인권 상황을 설명했다. 이 원장은 1997년 가족과 함께 탈북해 한국에 입국한 뒤 2009년 이화여대에서 식품영양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서울 종로구에서 북한음식점 ‘능라밥상’을 운영하고 있는 이 원장은 2015년 말 식당으로 찾아온 웜비어 일행을 만났다. 이 원장은 “웜비어는 키가 크고 활달한 청년이었다”며 “다른 16명의 동료와 함께 평양식 냉면과 비빔밥 등 음식을 맛있게 먹고 갔다”고 말했다.

웜비어 일행은 그해 12월 말 중국 베이징을 거쳐 평양으로 들어갔다. 이 원장은 자신의 자녀와 비슷한 연령대인 데다 구김살 없이 자란 모습의 웜비어를 기억했다. 그가 평양에 억류되고 사망에 이르는 과정을 보며 분노와 두려움, 안타까움을 느꼈다고 털어놨다.

이 원장은 자신도 11세 때 북한에서 수감된 경험이 있다고 말했다. 그는 “당국의 사상 검증에 걸려 가족 전체가 평양에서 해주로 쫓겨났다”며 “그 과정에서 기차역에서 부모님을 잃어버리고 구치소에 한 달 정도 갇힌 적이 있다”고 했다. “그때 겪은 구타와 공포감으로 지금도 잘 때 가위에 눌리곤 한다”고 덧붙였다.

이 원장은 이어 “북한에는 고문과 협박, 구타 기술이 매우 발달돼 있다”며 “웜비어가 직접적인 구타를 당하지 않았더라도 충격과 공포, 약물 부작용만으로 혼수상태에 빠질 충분한 개연성이 있다”고 주장했다.

그는 “한국에서 민주주의와 인권을 외치는 좌파 인사들이 북한 인권 얘기만 나오면 일제히 입을 닫는다”며 “웜비어 사망 사건을 계기로 한국에서 북한 인권 개선에 대한 목소리가 커졌으면 한다”고 강조했다.

이 원장은 2012년부터 자유통일문화원을 설립해 민주주의와 자유시장경제를 기반으로 한 통일 운동과 북한 인권 개선 운동을 펼치고 있다.

워싱턴=박수진 특파원 psj@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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