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과장&이대리]

"연차 다쓰면 일은 누가해!", "부장 없는 날이 휴가죠^^"

입력 2017-07-17 20:28 수정 2017-07-18 03:23

지면 지면정보

2017-07-18A24면

천차만별 여름휴가 풍속도

7말8초 휴가는 '눈치전'
무두절 언제야? '첩보전'

학부모가 선호하는 7말8초 "애들 학교·학원 방학 맞춰야 돼"
가격 싼 '비수기' 선호 늘어 틈틈이 여행 '나홀로족'도 많아

여름휴가도 '빈부격차'
매년 '의무 휴가' 고정된 회사
1년 전 미리 비행기표 예매 "2주간 미국 서부 횡단도 가능"

여전히 부장 눈치 보는 회사
상사 핀잔에 제대로 휴가 못가 "예약 취소로 위약금 물기 일쑤"

일러스트=이정희 기자 ljh9947@hankyung.com

본격적인 여름 휴가철이다. 오랫동안 회사를 떠나 여유로운 시간을 보낼 수 있는 시기다. 이런 이유로 직장인 사이에선 여름 휴가를 두고 ‘한 해를 버티는 힘’이란 말이 나올 정도다. 설레는 여름 휴가지만 마냥 즐겁지만은 않다. 좋은 휴가 기간을 선점하기 위한 ‘작전’을 벌이고 상사들의 눈치까지 봐야 해서다. 업종이나 회사 규모별로 휴가 기간과 휴가비 등도 달라 직장인마다 ‘휴가 부익부 빈익빈’이란 말까지 나온다. 김과장 이대리들 사이에선 직장 상사를 오랜 기간 보지 않기 위해 엇갈려 휴가를 잡는 것도 중요한 ‘기술’로 꼽힌다. 여름 휴가 기간 걸려오는 직장 상사의 전화나 카카오톡 등 메시지에 대처하는 법도 미리 마련해놔야 한다. 여름 휴가를 앞둔 김과장 이대리의 얘기를 들어봤다.

나보다 상사 휴가 날짜가 최대 관심사

언제 휴가를 가느냐는 휴가철 직장인의 가장 큰 고민 중 하나다. 좋은 때를 선점하기 위해 눈치싸움을 벌이기도 한다. 아이가 있는 학부모들이 가장 선호하는 휴가 시기는 7월 말과 8월 초다. 학교와 학원 방학 시기에 맞춰 여행을 다녀올 수 있어서다. 반면 항공권과 숙박비를 절감하기 위해 비수기 휴가를 선호하는 직장인도 늘었다. 한 의류업체에 다니는 박모 과장은 9월에 휴가를 가기로 했다. 그는 “9월엔 8월 성수기보다 항공권이 최대 100만원 저렴하다”며 “여행비를 절감할 수 있어 다른 부서원들이 휴가 일정을 내기 전에 먼저 ‘찜’했다”고 말했다.

명절이나 휴일을 끼고 휴가를 쓰는 방식으로 황금연휴를 먼저 고르는 경우도 많다. 직장 내에선 좋은 일정을 선점하는 얄미운 ‘체리피커’로 통한다. 광고회사에 다니는 김모 차장은 올겨울 크리스마스와 신정 연휴를 끼고 남은 연차를 몰아 쓰기로 했다. 이미 12월16일 휴가를 떠나 내년 1월2일 출근하는 일정을 잡아놨다. 김 차장을 보며 선후배 직원들은 ‘해도 너무한다’는 반응이다. 같은 회사 상사인 박모 부장은 매년 해외 여행을 떠나는 김 차장을 보며 “직업이 탐험가인지 광고회사 마케팅 직원인지 의심된다”고 혀를 내둘렀다.

직장인들에겐 자신의 휴가 날짜 못지않게 기다리는 날이 직속 상사의 휴가다. 평소 상사의 눈칫밥을 먹고 살아온 이들이 ‘무두절(無頭節·상사 없는 날)’을 누릴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이유로 상사의 휴가일을 피해 휴가 날짜를 잡으려는 김과장 이대리들의 물밑 신경전도 치열하다.

마케팅 조사업체에 다니는 박모 대리는 요즘 직속 부장의 휴가일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부서 직원들을 볼 때마다 “부장이 언제 휴가를 가려고 하는지 들은 것 있느냐”며 정보 공유를 하기에 바쁘다. 박 대리는 “부장은 권위의식이 없는 좋은 선배”라면서도 “아무리 좋은 상사라도 ‘없는 상사’만 못하지 않느냐”고 했다.

휴가도 부익부 빈익빈

직장마다 휴가를 바라보는 분위기는 업종이나 회사 규모 등에 따라 천차만별이다. 정유회사에 근무하는 김모 과장은 이달 미국 서부 횡단을 했다. 회사에서 모든 직원이 매년 2주간 휴가를 떠나도록 ‘의무화’한 덕분이다. 연초부터 휴가 계획을 잡아 70만원대에 항공권을 끊을 수 있었다. 그는 “라스베이거스, 그랜드캐니언부터 옐로스톤 국립공원까지 ‘로드트립’을 다녀왔다”며 “휴가철이 되면 회사에 대한 만족도가 급격히 올라간다”고 말했다.

반면 휴가 일정조차 제대로 잡지 못하는 경우도 많다. 유통업체에 근무하는 박모 대리는 지난 3월 올여름 휴가지를 미국 뉴욕으로 정하고 6월 초에 항공권도 예매했다. 하지만 팀장의 눈치를 살피다 5월이 돼서야 휴가 얘기를 꺼냈다가 “회사 분위기가 안 좋은데 괜히 ‘스타트’ 끊어서 분위기 망치지 말라”는 핀잔만 들었다. 결국 30만원의 예매 취소 수수료를 물어냈다. 박 대리는 “어차피 가는 휴가인데 시기도 마음대로 정하지 못해 답답하다”며 “외국계 기업으로 이직을 고려 중”이라고 말했다.

고지식한 직장 상사가 버티고 있는 경우엔 휴가철이 더 갑갑해진다. 한 상사업체 입사 3년차인 김모씨는 “담당 부장이 지난 10년간 휴가를 써 본 적 없다는 말을 훈장처럼 달고 다니는 사람이어서 연차나 휴가 얘기를 꺼낼 때마다 더 눈치가 보인다”며 “사흘 이상 휴가를 쓰는 건 죄짓는 기분이 들 정도”라고 했다.

“휴가 기간 카톡만은 제발…”
따로 긴 여름 휴가를 가는 대신 연차를 나눠 쓰며 나 홀로 휴식을 취하는 직장인도 있다. 결혼 연령이 늦어져 혼자 사는 직장인이 늘면서 생긴 풍속도다. 출판사에 근무하는 윤모 대리는 가끔 금요일마다 연차를 내고 서울 시내 호텔에서 2박3일 동안 휴식을 취한다. 여름 휴가는 따로 가지 않을 계획이다. 윤 대리는 “휴가를 내고 여행을 가면 먼 거리를 이동해야 하고 되레 스트레스도 많이 받는다”며 “하루 이틀 연차를 내고 호텔에 묵으며 TV나 영화를 보는 게 낫다”고 했다.

날짜를 나눠 가든 붙여 가든 휴가 동안만이라도 업무에서 제대로 벗어나고 싶다는 건 직장인의 공통된 생각이다. 하지만 김과장 이대리들의 현실은 꼭 그렇지만은 않다. 직장 상사로부터 시도 때도 없이 걸려 오는 전화나 메시지 때문이다.

이달 초 일찌감치 여름 휴가를 다녀온 직장인 박모씨는 “모처럼 회사를 떠나 개인적인 시간을 가지려고 했는데, 시도 때도 없이 카카오톡이 울려 노트북을 두 번이나 열어야 했다”며 “휴대폰을 꺼둘까 생각도 했지만 행여나 급한 연락이 올까 봐 차마 그러진 못했다”고 토로했다.

이지현 기자 bluesky@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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