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하학 난제 풀고 유리천장 깬 천재 수학자, 하늘의 별이 되다

입력 2017-07-16 20:15 수정 2017-07-16 20:15

지면 지면정보

2017-07-17A18면

'수학 노벨상' 필즈상 첫 여성 수상자 마리암 미르자카니 타계

이란 태생…미국 과학한림원 정회원
2014 서울세계수학자대회 유방암 투병중에도 참석

기하학 난제 연구로 우주의 기원 밝히는데 기여
“가족에게 병에 걸렸다는 사실을 알리지 말아주세요.”

15일(현지시간) 마흔 살에 요절한 첫 여성 필즈상 수상자인 마리암 미르자카니 미국 스탠퍼드대 교수(사진)는 2014년 서울에서 열린 세계수학자대회 시상식 전 자신의 암 투병 사실을 밝히지 말라고 조직위원회에 요청했다. 미르자카니 교수는 2013년 유방암 말기 선고를 받고 투병생활을 했지만 이란에 있는 가족에겐 이런 사실을 알리지 않았다. 그에겐 체코 출신 이론 컴퓨터과학자인 남편과 여섯 살짜리 딸이 있다. 이란에는 부모가 살고 있다. 미르자카니 교수의 투병 사실은 최근까지도 비밀 아닌 비밀에 부쳐졌다. 당시 대회조직위원장이던 박형주 아주대 석좌교수는 “애초 불참을 예상한 조직위 관계자는 그가 참석하겠다는 뜻을 밝혀 상태가 호전된 것으로 생각했다”며 “힘든 투병생활 중이었지만 대회 내내 밝은 표정을 짓던 모습이 눈에 선하다”고 말했다.

미르자카니 교수는 1977년 이란 테헤란에서 태어났다. 특수 고교에 진학해 17세 때인 1994년 국제수학올림피아드에서 42점 만점에 41점을 받아 이란 여학생으로는 처음으로 금메달을 받으면서 수학계의 주목을 받았다. 1995년에도 이 대회에서 만점을 받아 금메달을 땄다. 1999년 테헤란 샤리프기술대 수학과를 졸업한 그는 미국으로 건너가 2004년 하버드대에서 박사 학위를 받고 프린스턴대 교수를 거쳐 2008년부터 스탠퍼드대에서 일했다.

미르자카니 교수는 기하학의 난제 중 하나로 꼽히는 ‘리만 곡면의 역학·기하학과 모듈라이 공간’을 주제로 논문을 써서 2014년 여성 최초로 필즈상을 받았다. 필즈상은 마흔 살 이전에 획기적 연구성과를 낸 젊은 수학자에게 수여된다. 여성이 상을 받은 건 1936년 필즈상이 제정된 뒤 78년 만에 처음이었다.

그의 연구는 기하학과 동력학계 분야 연구를 통해 수학의 여러 분야를 연결하는 다리 같은 역할을 했다. 우주의 기원을 밝히는 끈이론을 규명하는 데도 활용됐다. 미르자카니 교수는 지난해 미국과학한림원 정회원이 된 데 이어 저명한 수학상인 라마누잔상 심사위원을 맡으면서 한동안 병이 호전되는 듯했다. 하지만 지난해부터 뼈조직까지 암세포가 퍼지면서 병마를 이겨내지 못했다.

학문적 공로 외에도 그는 세계 여성 과학·수학 꿈나무들에게 희망을 줬다. 남초(男超)현상이 지배하는 세계 수학계에서 최고 권위 상을 여성 수학자가 받은 것은 ‘이변’이었다. 미르자카니 교수는 필즈상 수상 직후 “중·고교 시절부터 부모님이 수학을 포기하지 않도록 끊임없이 격려해 주셨다”며 “하고 싶은 일을 하라”고 조언했다. 그러면서 오늘날 자신을 있게 한 것은 “훌륭한 선생님과 좋은 친구, 언제든 산책을 갈 수 있는 서점이 가까이 있었기 때문”이라며 겸허한 모습을 보였다.

아직 할일이 많이 남은 천재 여성 수학자의 죽음에 세계 곳곳에서 추모의 물결이 이어지고 있다. 마크 테시에 라빈 스탠퍼드대 총장은 “그는 영민한 이론 수학자이자 자신과 같은 길을 걸으려는 수많은 사람에게 용기를 주는 일을 영예로 생각한 소박한 인간이었다”고 회고했다. 하산 로하니 이란 대통령은 “미르자카니 교수의 죽음은 국가적인 큰 슬픔”이라고 말했다고 이란 관영 언론은 전했다.
미르자카니 교수는 한때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이민·과학 정책을 비판하는 과학계의 아이콘으로 조명받기도 했다. 당시 현지 언론들은 트럼프 정부가 이란 이라크를 포함해 7개국 이민자의 입국을 거부한 반(反)이민 정책을 내놓자 미국 과학 발전에 심각한 위기를 초래할 것이라며 상징적 인물로 미르자카니 교수를 거론했다.

역사를 살펴보면 요절한 수학자는 꽤 많다. 대수방정식과 타원함수 연구에 혁혁한 공적을 이룬 19세기 노르웨이 수학자 닐스 헨리크 아벨은 스물일곱 살에 세상을 떠났다. 방정식 해법의 대가인 19세기 프랑스 수학자 에바리스트 갈루아는 결투 끝에 스물한 살에 사망했다. 정수론과 연분수 이론에서 위대한 공헌을 한 천재 인도 수학자 스리니바사 라마누잔은 서른세 살에 병으로 숨졌다. ‘리만 적분’을 제시한 천재 독일 수학자 게오르그 리만도 마흔 살에 타계했다. 미르자카니 교수의 타계로 필즈상을 받은 생존 여성 수학자는 없다. 다음 필즈상 수상자는 내년 8월 브라질 세계수학자대회에서 발표된다.

박근태 기자 kunta@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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