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선 거센 비판 받는데…한국서 유독 성행하는 '창조과학'

입력 2017-07-09 21:06 수정 2017-07-10 03:55

지면 지면정보

2017-07-10A20면

KAIST 창조과학전시관 운영
개신교, 교과서 수정 운동 이어 유영민 미래부 장관 후보자
'창조과학 추종' 의혹도 일어
유영민 미래창조과학부 장관 후보자(사진)가 지난 4일 국회 인사청문회에서 진화론에 대한 견해를 밝히라는 의원 질문에 의견 표명을 유보했다가 된서리를 맞았다. 현대 과학의 핵심인 진화론이 마치 논란의 소지가 있는 양 모호한 태도를 취한 것은 과학기술 정책을 이끌 수장의 태도로는 적절하지 않다는 비난이 쏟아졌다. 유 후보자는 신에 의한 우주 창조를 추종하는 차원용 씨와 책을 함께 쓴 이력이 드러나면서 진화론을 거부하는 창조과학을 믿는 것이 아니냐는 의혹을 받아왔다. 과학기술 수장을 검증하는 자리에서 장관 후보자에게 진화론에 대한 견해를 물어본 건 2000년 인사청문제도가 도입된 이후 처음이다. 유 후보자는 입장 표명 요구가 잇따르자 결국 “창조과학은 비(非)과학, 반(反)과학적이라고 생각한다”는 해명을 내놨다.

근본주의 개신교 단체들과 기독교 신앙을 가진 학자들이 주도하는 창조과학은 신이 우주를 창조했다는 기독교 창조론이 과학적 근거를 갖는 역사적 사실이라고 주장하는 이론이다. 진화론은 물론이고 현대 과학의 성과인 지질론, 우주론 등을 부정하고 성경에 나오는 ‘6일간 우주 창조’ ‘신에 의한 모든 생물종의 동시 창조’ 등이 과학적 사실로 입증됐다고 주장하고 있다.

진화론 논쟁을 다룬 타임 표지

이런 창조과학의 주장은 정통 과학계는 물론 가톨릭과 주류 개신교 신학계에서도 동의하지 않고 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2014년 교황청 과학위원회 검토를 거쳐 진화론과 빅뱅이론이 가톨릭 가르침에 위배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인정했다. 진화생물학자인 장대익 서울대 교수는 “진화론에서 진행되는 다양한 논쟁은 어디까지나 진화론을 전제로 하고 있고 이를 강화하는 차원에서 이뤄지고 있다”며 “지금까지 나타난 성과를 살펴보면 무신론적 진화론자인 리처드 도킨스의 주장을 더 뒷받침하는 쪽으로 가고 있다”고 말했다.
창조과학은 해외와 국내에서 끊임없이 논란을 일으키고 있다. 2000년대 초반 미국 일부 개신교 보수단체들이 펜실베이니아주를 비롯한 일부 주 공립학교 교과서에 진화론이 복잡한 유기체를 설명할 수 없기 때문에 신의 설계를 도입해야 한다는 이름만 바꾼 지적설계론을 채택하려고 시도하면서 큰 논란이 일었다. 미 연방법원은 2005년 지적설계론이 창조론에 이름을 달리 붙인 것이며 종교에 근거한 증명할 수 없는 가설을 가르치려 해서는 안 된다는 결론을 내렸다.

국내에선 2012년 개신교 교육단체가 고교 과학교과서에서 진화론의 대표적인 근거로 꼽히는 ‘시조새’와 ‘말의 진화’ 등의 대목을 삭제하는 운동을 벌인 일이 있다. 당시 국제학술지 ‘네이처’까지 나서 한국 교과서에서 진화론 증거들이 삭제된 사건을 다루며 한국에서 진행된 논란에 우려의 목소리를 내기도 했다. 2008년에는 KAIST에 창조론을 홍보하는 창조과학전시관이 운영되고 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비판이 일기도 했다.

과학계는 유독 한국에서 창조과학이 지속적으로 힘을 얻는 점을 우려하고 있다. 이덕환 서강대 교수는 “과학 이론으로 자리잡은 진화론과 신앙에 따른 신념인 창조론이 경쟁을 벌이는 듯한 구도를 형성하는 것은 창조과학자들의 의도에 부합한다”며 “창조과학을 비롯한 비과학의 확산에 대해 과학계가 명확한 견해를 가져야 한다”고 말했다.

박근태 기자 kunta@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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