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 등 국가의 정상적 의사결정체계를 작동시켜 충분한 기간 동안 전문가 참여와 합리적 방식의 공론화를 거쳐 장기 전력 정책을 수립해야 한다.” 전국 60개 대학 450명의 공대 교수 등으로 구성된 ‘책임성 있는 에너지 정책 수립을 촉구하는 교수단’은 어제 정부의 ‘탈(脫)원전’ 정책에 대해 이 같은 성명서를 발표했다. 지난달 1일 23개 대학 230명의 교수가 서명한 1차 성명서 때와 비교하면 참여 대학과 교수가 크게 불어났다. 과거 어느 정권에서도 볼 수 없었던 모습이다.
1차 성명 때만 해도 문재인 정부의 안전 우선 친환경 에너지 정책에 대해 일말의 기대감을 숨기지 않았던 교수들이다. 하지만 문 대통령이 고리 1호기 영구정지 기념식에서 탈원전을 선언한 데 이어, 정부가 속전속결로 신고리 5, 6호기 건설을 잠정 중단하고 시민배심원단을 통해 영구중단 여부를 결정하겠다는 방침을 발표하자 교수들은 절망감을 느낀 듯하다.

교수들은 “5년마다 보완되는 국가 에너지 기본계획과 2년마다 수정되는 전력수급 기본계획이 있음에도 대통령의 선언 하나로 탈원전을 기정사실화하는 것은 제왕적 조치”라고 비판했다. 옳은 지적이다. “(탈원전을 선언한) 대통령 연설문에서 드러나듯이 편견과 부정확한 정보로 대통령을 보좌하는 일부 참모들의 의견뿐 아니라 해당 전문가의 의견도 경청해 달라”는 교수들의 호소를 정부가 왜 외면하는지 이해할 수 없다. 혹여 이 정부는 국회와 같은 대의정치의 장(場)이나 정상적 의사결정체계보다 시민·환경단체를 우선시하는 게 공론화요, 선(善)이라고 여기는 건 아닌가.

일부 환경단체는 성명에 참여한 교수들을 향해 이해관계자의 목소리라며 부끄러운 일이라고 매도하기 바쁘다. 오히려 수십 년간 ‘탈핵팔이’를 해온 환경단체들이야말로 골수 이해당사자라고 해야 맞다. 더구나 과학적 의사결정을 해야 함에도 전문가를 의도적으로 배제하는 것만큼 부끄러운 일도 없을 것이다. 정부 일각에서는 탈원전을 해도 향후 5년간 에너지 수급이나 가격에 큰 문제가 없을 것이라고 말한다. 위험한 발상이다. 에너지는 현 정권을 넘은 국가의 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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