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리콘밸리·런던 진출 성과 내기 어려워
부모 세대 본받아 중동 등 도전 필요
정부는 열악한 지역 진출 동반자 돼야

박수용 < 서강대 교수·컴퓨터공학 >
장마와 함께 무더운 여름이 시작된 것 같다. 이런 후텁지근한 계절이 올 때마다 생각나는 것이 있는데, 몇 년 전 8월 중순 중동의 아부다비와 두바이를 방문한 기억이다. 그 당시 한낮의 최고 기온은 섭씨 40도에 육박했으며 습도 또한 높아 마치 한증막에 있는 듯한 느낌이었다. 더 황당한 것은 오후 늦게 사막에서 모래바람이 불기 시작했는데, 온통 주위가 노랗게 모래 먼지에 휩싸이면서 뜨거운 열기가 몰아쳐 도저히 밖에 나갈 엄두가 나지 않았다. 창밖의 노란 모래바람을 바라보며 문득 떠오른 생각은 40여 년 전 우리 아버님 세대의 젊은 청년들은 어떻게 이런 모래바람과 열기 속에서 도로를 닦고 공사를 하면서 한국 경제의 새로운 성장동력을 만들었나 하는 것이다.

우리는 지금 4차 산업혁명을 부르짖으며 전통 주력 산업인 제조업의 경쟁력 약화를 딛고 새로운 일자리를 창출할 수 있는 신성장동력 산업 발굴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기울어져 가는 조선, 철강, 자동차 등의 국가 중심 산업을 대체할 수 있는 새로운 산업을 4차 산업혁명이라는 정보기술(IT) 기반의 혁신 산업에서 그 길을 찾고 있는 것이다. 다행인 것은 한국 미래의 먹거리가 될 4차 산업혁명 시대에 걸맞은 다양한 기술 기반의 벤처기업들이 조금씩 자리를 잡아가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번 정부에서는 가칭 ‘중소벤처기업부’까지도 설립한다니 벤처기업 육성과 신성장동력 발굴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짐작할 수 있다.

4차 산업혁명을 통한 신산업 육성에서 간과하지 말아야 할 것은 한국은 내수시장에만 머무르면서 국가적인 중심 산업으로 발전한 사례는 금융, 에너지 등 특수 분야를 제외하고 없다는 것이다. 또 내수시장에만 안주하던 금융산업의 현 모습을 보면 우리가 육성해야 할 벤처기업은 사막의 모래바람도 개의치 않고 해외로 진출하는 기업이 돼야 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안타까운 건 요즈음 핀테크, 사물인터넷(IoT), 인공지능(AI), 빅데이터 등 신기술 기반의 혁신적 벤처기업 창업자 및 종사자들이 해외시장에 도전하는 모습이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정부도 이들의 해외 시장 진출을 위한 지원을 아끼지 않고 있지만 미국 실리콘밸리를 방문하고, 영국 런던 핀테크 중심지에 가서 투자 설명회를 하는 것이 해외시장 개척 전략의 전부인가에 대한 의문이 있다. 그런 곳들은 세계적으로 유명한 4차 산업혁명의 메카와도 같은 지역이고 많은 혁신적 기업이 몰려 있으며 벤처기업 하기에 너무나 좋은 생활환경, 기후, 사회적 인프라가 갖춰져 있다. 그러나 그런 지역이 이미 공급 과잉의 레드오션으로 보이는 것은 필자만의 착각일까.
혁신적 기업의 해외 진출에는 여러 모델이 있을 수 있으나 미국, 영국을 비롯한 선진 국가의 기술력 및 자본력, 국제적인 인지도 등을 보건대 이들과 경쟁하는 것이 만만치는 않다. 이들이 선점한 미국이나 유럽 시장에서 몇몇 특출난 벤처기업이 작은 성공 사례를 이룰 수는 있으나 대대적인 시장 진출이 일어나고 이를 기반으로 국가 경제를 활성화하기에는 매우 힘들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그러면서 우리 아버지 세대가 1970~1980년대에 왜 하필 그 험한 중동지역에서 일하고 경험을 쌓아 이후 세계 시장으로 진출하게 됐는지 이해되기 시작한다.

중동시장은 IT 기반의 다양한 혁신적 서비스의 수요는 많지만 서구 IT에 종속되는 데 대한 거부감이 강하다는 특수성이 있다. 이 시장은 한국 기술과 한국인에 대한 신뢰가 높다. 우리 아버지 세대가 보여준 근면함과 성실함 덕분이다. 물론 우리 젊은 기업인들이 도전하기에는 어려움이 있는 시장이기는 하다. 꼭 중동 시장이 아니어도 좋다.

우리는 4차 산업혁명을 얘기하면서 국가적으로 신산업을 육성하기 위한 좋은 생태계와 환경을 조성하는 것에 주력하고 있다. 그러나 정작 정부가 도와야 할 것은 중동, 남미, 아프리카 등 이들 벤처기업이 혼자 가기 힘들고 또 꺼리는 시장을 개척하고 진출하는 데 동반자가 돼주는 것이 아닐까.

박수용 < 서강대 교수·컴퓨터공학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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