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숫자의 함정" 빠져 실패한 박근혜 정부
공공 우선 일자리 정책 신중해야

백승현 지식사회부 차장 argos@hankyung.com
“일자리 상황 진전이 좀 있습니까?”

지난 2일 저녁 서울공항. 미국 방문을 마치고 귀국한 문재인 대통령이 한국 땅을 밟자마자 마중 나온 김부겸 행정자치부 장관에게 한 말이다. ‘일자리 대통령’을 자처하는 문 대통령이 얼마나 일자리 문제에 위기의식을 갖고 있는지를 보여준 것이라는 게 김 장관의 설명이다.

청와대 대통령 집무실에는 일자리 상황판이 설치돼 있다. 청와대 인터넷 홈페이지에도 한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매일 고용률이 어떻게 변하고,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임금 격차가 어떻게 움직이는지를 대통령이 직접 챙기겠다는 것이다.

2014년 초의 일이다. 기획재정부, 고용노동부, 인사혁신처 관계자들이 모여 시간선택제 공무원 제도 도입을 논의하는 자리였다. 시간선택제 공무원이란 통상적인 근무시간(주 40시간)보다 짧게 근무하는 공무원으로, 박근혜 정부의 최대 국정과제였던 고용률 70% 달성을 위한 공공부문 대표 정책이었다. 당시 주무부처(인사혁신처)는 단시간 근무에 맞는 적합업무 매뉴얼이 마련돼 있지 않다며 시행 시기를 늦추자고 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윗선’의 뜻이 확고하니 ‘한번 가보자’는 쪽으로 결론이 났다.

그로부터 3년, 결과는 어떨까. 지난 3년간 채용한 중앙정부 시간선택제 공무원은 1180명, 올해 543명을 추가로 뽑는다. 대부분 직급은 9급, 업무는 문서관리 민원상담 취업지원 등 일반행정 실무가 대부분이다. 오전, 오후로 나누거나 격일로 근무하며 주 20시간 이내만 근무해 연속성 있는 업무를 하기 힘들기 때문이다. 이런 탓에 출퇴근 시간대 사무실에서는 전일제 공무원과 시간선택제 공무원 사이에 불편한 기류가 흐르고, 부서장들은 제대로 된 업무를 맡기기 힘들다고 하소연한다.

시간선택제 공무원 당사자도 불만이 많다. 공무원이라고 뽑아놓고 공무원연금이 아니라 국민연금 적용을 받고, 월 100만원도 안 되는 급여에도 겸직은 금지돼 있기 때문이다. 고용률 70%라는 숫자에 매여 제대로 된 준비 없이 밀어붙인 정책의 ‘예고된 그림’이라는 게 다수 전문가의 지적이다.
문재인 정부도 일자리 정책의 첫 단추를 공공부문에서 채웠다. 민간 일자리 확대로의 마중물 역할을 할 것이라는 17만4000여 개의 공공 일자리는 사회복지 소방 경찰 근로감독관 등 이른바 생활밀착형 공공 일자리다. 하나같이 인력난을 호소하는 분야다. 동 주민센터에는 사회복지 담당자가 턱없이 부족하고, 경찰은 취객이 들이닥쳐 난동을 부려도 제대로 제압을 못하는 게 현실이다. 소방도 마찬가지다. 과거에는 불만 끄면 됐던 소방관들은 이제 모든 사고현장으로 달려가야 한다. 임금체불도 해마다 늘어 지난해 1조4000억원을 넘었다. 근로감독관 증원 요구의 배경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다. 정부는 이들 일자리 외에도 보육·의료·요양 등 사회서비스 공공부문 일자리 34만 개, 인천공항·정부청사 등의 간접고용을 직접고용으로 바꿔 일자리 30만 개 창출도 약속했다. 81만 개라는 숫자에 앞서 기존 인력이 적재적소에 배치돼 있는지, 업무 과소에 따른 행정 비효율은 없는지부터 따져보는 게 순서라는 ‘충언’은 여론에 묻힌 지 오래다.

일자리 상황판과 ‘100일 플랜’으로 일자리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문재인 정부가 자칫 고용률 70%라는 ‘숫자의 함정’에 빠져 실패한 전 정부의 전철을 밟지 않을까 걱정이 앞선다. 시간제 일자리를 앞세워 고용의 질(質)보다 양(量)을 우선시한 박근혜 정부였지만, 집권 4년차의 고용률은 65.3%였다. 4년간 고작 1.1%포인트 올랐다.

백승현 지식사회부 차장 argos@hankyung.com

ⓒ 한경닷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