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아쉬움으로 남는 고리 1호기 퇴역

입력 2017-06-19 17:48 수정 2017-06-20 01:26

지면 지면정보

2017-06-20A34면

경제 대도약 발판된 국내 첫 원전
값싼 전기 공급, 에너지안보에 기여
40년 된 원전폐쇄는 생각해볼 문제

이익환 < 전 한전원자력연료 사장 >
고리 1호기 원전(原電)이 가동 40년 만인 지난 18일 밤 12시 영구 가동중지됐다. 1977년 6월19일 공식 가동해 30년 설계수명과 10년 한 차례 연장가동하면서 오늘에 이르렀다. 1970년대 당시 한국은 중화학공업 발전 5개년 계획을 단계적으로 추진하던 때라 전력의 안정적인 공급이 중요했다. 질 좋은 전력이 필요하던 때 고리 1호기를 선두로 고리 2호기, 월성 1호기는 중요한 역할을 했다고 할 수 있다.

필자는 1971년 규제기관인 원자력청에 몸담고 있었다. 당시는 고리 1호기 건설에 대한 안전성 분석과 확인으로 건설 허가를 발급하는 것이 가장 큰 비중을 차지했는데, 공사 착공이 가능한 건설 허가는 1973년 3월에 발급됐다. 당시 원전 규제에 참여한 공무원은 원자력발전과장을 포함해 모두 여섯 명으로 밤낮없이 바쁜 일정을 보내야 했다. 안전성 검토를 위한 안전심사위원회가 가동됐지만 독립적인 심사를 할 수 있는 여건이 되지 않았다. 이분들에게 최신의 원전 인허가 기술 자료를 미국, 영국, 국제원자력기구(IAEA) 등에서 확보해 제공하는 것도 중요한 일이었다. 처음 건설되는 원전이기에 모두가 사명감을 갖고 임했다.
원전 건설에 따른 사업자 측면의 어려움도 있었다. 고리 1호기는 우리 기술이 전무했기 때문에 도입사인 미국 웨스팅하우스에 의존했다. 약 2억달러에 달하는 사업비를 조달하기 위해 정부의 뒷받침이 필요했다. 당시 한국의 경제 규모는 1인당 국민총생산(GNP)이 300달러에 불과했으니, 정부 예산의 30%에 해당하는 사업비를 외국에서 조달받기 쉽지 않았다. 빌린 돈을 되도록 빨리 갚기 위해 설계수명을 미국은 40년인데 한국은 30년으로 짧게 잡았던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어떻든 고리 1호기는 한국 최초의 원전이며 아시아에서는 두 번째로, 건설 허가가 발급되고 5년 만인 1977년 6월19일 상업운전에 돌입한 성공적인 프로젝트였다. 당시 전체 전력의 9%를 공급하며 한국 경제의 대도약을 위한 첫 발판을 마련해 준 것으로 평가된다. 고리 1호기의 전기 생산으로 원자력 전력의 기초를 만들며 지금은 25기의 원전에서 약 30%의 전기를 원전에서 공급하는 기술 보유국으로, 외국에 수출까지 하게 됐다.

고리 1호기를 선두로 후속 원전 건설이 적기에 이뤄지지 않았다면 우리는 세 번에 걸친 석유 파동에 그대로 노출돼 산업 발전에 큰 어려움을 겪었을 것이다. 이 석유 파동은 약 6개월, 길게는 1년 정도 전력 수급과 사회 전반에 막대한 영향을 미쳤지만 원자력은 한 번 연료를 장전하면 약 2년은 정지 없이 운전할 수 있기 때문에 전력 수급에 영향이 작았던 것이다. 배럴당 20달러 정도이던 유가가 100달러로 치솟는 경우를 경험했지만 한국은 자력 원전 건설 운영으로 국가 에너지안보에 큰 흔들림이 없었다.

이제 고리 1호기 역할이 끝났다. 고리 1호기와 같은 설계의 미국 원전 5기는 20년 수명을 연장받아 향후 20년을 더 운전하게 되는데 왜 고리 1호기는 미국보다 20년 앞당겨 문을 닫아야 했을까. 고리 1호기의 자산 가치는 아직도 20억~25억달러는 될 텐데, 가동 중단으로 국부를 사장시키는 것은 아닐까. 이에 대한 답은 향후 역사가 판단할 문제로 남게 될 것이다. 고리 1호기의 영구 가동중단은 여전히 아쉬움으로 남는다.

이익환 < 전 한전원자력연료 사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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