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 헤이룽장(黑龍江)

중국 최북단의 헤이룽장성에서 열리는 세계적 규모의 하얼빈 빙등제 모습. 한인희 건국대 교수 제공

헤이룽장(黑龍江)성은 남북 약 1120㎞, 동서 약 930㎞로 전체 면적은 47만㎢에 달하는 지역이다. 중국에서 가장 동쪽, 아울러 맨 북쪽에 자리를 잡았다. 이 성의 동북쪽으로 경계선을 형성하는 강이 헤이룽장(黑龍江)이라 지금의 이름을 얻었다. 지역 간칭은 黑(흑)이다.

전통적인 중원(中原)의 경계에서 볼 때 원래 ‘북방’이라고 했던 곳은 사막과 초원이 뒤섞인 오르도스다. 이는 대개 지금의 내몽골 일대다. 이 오르도스가 지금으로부터 더 먼 과거의 중원을 위협하는 지역이었다면, 이곳 헤이룽장을 기반으로 성장한 ‘이족(異族)’은 그보다 가까운 과거의 중원을 위협했다. 그러니까 아주 먼 옛적의 헤이룽장은 중원의 요소와는 아주 거리가 먼 땅이었다는 얘기다.

우선 지명에서 드러난다. 바로 행정수도 하얼빈(哈爾濱)이다. 한자(漢字)로 적기는 했으나 사실 중국말과는 관계가 없다. 원래 음은 ‘galouwen’이라고 한다. 우리식으로 발음하면 ‘하얼원’ ‘할로원’ 정도다. 유래에 대해서는 여러 설이 있다. 우리 백과사전 등에는 ‘그물을 말리는 곳’이라는 설명이 나와 있는데, 그보다는 백조(白鳥)를 가리키는 이름에서 나왔다는 설이 유력하다. 이는 여진족이 쓰던 말이라고 한다.

한자음만 자용한 지명들

치치하얼(齊齊哈爾)도 마찬가지다. 이 역시 한자로 적었을 뿐 완연한 이족의 말이다. ‘천연의 목장(牧場)’이라는 뜻의 다구르 혹은 다호르 족의 말에서 유래했다는 설이 널리 받아들여진다. 이들은 몽골족의 한 갈래로 알려져 있다. 자무쓰(佳木斯)라는 도시의 이름도 그렇다. 원래 발음은 ‘자무커스카산’에 가깝다고 한다. ‘관리가 머무는 곳’이라는 뜻의 만주어 단어에서 나왔다는 설명이 있다. 이렇게 본래의 모습이 한자적인 구성을 보이지 않는 단어와 지명이 여럿이다. 한자의 이해 기반으로는 좀체 납득하기 어려운 지역 이름은 이곳이 분명히 한자를 근간으로 하는 중원의 전통과는 사뭇 다른 역사와 문화, 인문의 맥락을 지녔던 사람들의 역사 무대였다는 점을 일깨워준다.

아무튼 이런 이름에서조차 우리는 많은 점을 새길 필요가 있다. 이곳의 연원이 중원과는 그리 깊은 관계가 없었던 동북 제족(諸族)의 활동무대였다는 점을 두고서 말이다. 해모수의 건국 설화를 간직한 부여(夫餘)가 우선이다. 한반도 사람들의 초기 주류였던 예맥(濊貊) 계통이다. 같은 흐름에서 갈라져 나간 고구려와 계속 갈등을 벌이다가 결국 고구려에 멸망당하는 초기 국가다. 부여에서 다시 수와 당나라 시기의 발해국으로 이어졌던 전통은 급기야 요(遼)나라와 금(金)나라로 뻗쳤고, 근세에 들어와서는 다시 만주족의 청(淸)나라로 이어졌으며 그들은 마침내 산해관(山海關)을 넘어 중국 전역을 석권했다.

곡창으로 변한 황무지

이제 이들의 전통과 맥락을 좇는 일은 쉽지 않다. 이미 아스라한 역사의 기억 속으로 넘어가 버렸기 때문이다. 지금 이 땅에 발을 딛고 사는 사람의 주류는 앞에서 이미 소개한 것처럼 산해관을 넘어 이곳으로 넘어온 산둥(山東)과 허베이(河北) 일대의 기민(饑民)이다. 아울러 더 나중에 사회주의 중국 건국 뒤 각종 정치운동으로 농촌과 산간 오지에 쫓겨 내려온 지식 청년들이었다. 지역의 주인이 모두 바뀌어버린 셈이다. 원래 있던 부여와 발해, 나아가 금나라와 청나라의 주역들 대신 중원에서 기황(饑荒)과 정치적 동기로 인해 이곳에 도착한 새 이민자들이 땅을 차지했던 것이다.

지역의 다른 별칭 중 하나는 북대황(北大荒)이다. ‘북녘의 거대한 황무지’라는 뜻이다. 그러나 수많은 이민자의 정착과 개간으로 황무지는 커다란 곡창(穀倉)으로 변했다. 그래서 아예 이름을 바꿔 ‘커다란 곡식 창고’라는 뜻의 북대창(北大倉)이라고도 부른다. 그래서 이곳은 새 개척지고, 따라서 그 험한 여정에 몸을 담았던 이민자의 사회다. 이민의 사회는 속성이 거칠 수밖에 없다. 안전한 환경에서 안전하게 먹고사는 일이 불가능하다. 새로운 개척의 험로에 인생을 실어야 하는 입장이니 사람들의 기질이 거칠어지게 마련이다. 그래서 중국 동북지역 사람들의 성정(性情)은 대개 호전적이다. 전체 중국인 중 싸움을 퍽 잘하기로 유명한 존재가 바로 헤이룽장 사람들이다.

유광종 < 중국인문경영연구소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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