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위스 시골 농장서 창업…세계 마우스 시장 40% 장악

애플 뺨치는 혁신성
1991년 세계 첫 무선 마우스 개발
2004년엔 레이저 마우스 출시
M&A로 PC주변기기 사업 확대

미래 내다 본 40년전의 혜안
1976년 연구실에만 있던 마우스 개인으로 수요 확대될 것 포착
82년 제품 출시 후 10억개 판매

"실패를 벌해선 안된다"
"위험 무릅쓴 도전만이 차별화 성공 확률 높이는 길"
실패에 관대한 기업문화 유지

일러스트=전희성 기자 lenny80@hankyung.com

미국의 발명가인 더글러스 엥겔바트가 최초의 마우스를 대중에 공개한 지 40년이 지난 2008년 12월9일. 미국 스탠퍼드국제연구소에서는 마우스 발명 40주년을 기념하는 행사가 열렸다. 마우스 등 컴퓨터 주변기기 전문 제조기업 로지텍의 창업자 다니엘 보렐 명예회장(67)은 발표자로 나서 “미국 실리콘밸리에 ‘차고’가 있다면 스위스엔 ‘농장’이 있다”고 말했다. 스위스 출신인 보렐 회장은 이 자리에서 자신의 창업 스토리와 로지텍의 비전에 대해 강연했다.

애플의 창업자 스티브 잡스가 부모님의 집 차고에서 첫 개인용 컴퓨터 ‘애플’을 개발한 것처럼 보렐 회장은 스위스 제네바 근처 작은 마을에 있는 농장에서 출발했다. 그는 “창업한 지역 이름이 ‘애플(Apples)’이었기 때문에 어머니가 한동안 잡스의 애플이 내가 세운 회사인 줄 아셨다”고 말했다.

보렐 회장의 말은 농담이었지만 마우스 시장에서 로지텍의 혁신성은 애플에 뒤지지 않는다는 평가를 받는다. 보렐 회장은 “로지텍의 비전은 기계와 인간을 잇는 인터페이스를 구축하는 것”이라며 “마우스는 그 일부”라고 설명했다.

전 세계 마우스 시장의 3분의 1 이상 차지

로지텍은 국내에선 ‘프로게이머들의 마우스, PC방 마우스’로 불리는 게이밍 마우스로 유명하다. 로지텍은 1982년 첫 제품인 ‘P4 마우스’를 내놓은 뒤 10억 개가 넘는 마우스를 팔았다. 손으로 마우스를 잡는 느낌(그립감)과 마우스를 조작하는 속도, 정확도가 탁월하다는 평을 얻으며 전 세계 마우스 시장의 40%를 차지하고 있다. 한 해 매출은 20억달러(약 2조2500억원)에 달한다.

스위스 로잔대 공과대학을 졸업한 보렐 회장은 1976년 미 스탠퍼드대에서 초기 워드프로세싱 프로그램을 개발하면서 공동 창업자인 피에르루이지 자파코스타를 만났다. 둘은 개인용 컴퓨터가 보급되면 당시엔 연구실에만 존재하던 마우스 수요도 늘어날 것이란 점을 포착했다. 4년의 연구와 자금 조달을 거쳐 마침내 시제품을 만들어냈다. 자파코스타의 오랜 친구인 지아코모 마리니까지 합류하면서 1981년 세 사람이 함께 로지텍을 세웠다. 프랑스어로 소프트웨어를 의미하는 ‘로지시엘(logiciel)’과 테크(기술)의 합성어다.

로지텍은 차로 한 시간 정도 떨어진 곳에 있는 스위스연방기술연구소의 도움을 많이 받았다. 스위스연방기술연구소 연구원들과 긴밀히 협력하면서 그들이 처음으로 시장에 내놓은 하드웨어 기기가 P4 마우스다. 1983년 아폴로 컴퓨터를 시작으로 휴렛팩커드(HP), 애플 등 PC 제조사에 주문자상표부착생산(OEM) 방식으로 마우스를 납품하기 시작했다.

“기계와 사람을 잇겠다”

PC 보급이 확산되면서 마우스 시장도 빠르게 성장했다. 로지텍은 OEM과 함께 직접 B2C(기업과 소비자 간 거래) 시장에도 뛰어들었다. PC 제조사가 아니라 소비자를 대상으로 마우스를 판매한 경험이 없었기 때문에 마이크로소프트(MS)와 손잡고 소프트웨어와 번들(묶음) 판매를 하려고 2년간 협상했지만 결국 성사되지 않았다. 1985년 처음으로 자체 브랜드인 ‘로지텍 C7’을 출시했다. 마케팅 경험이 없었지만 출시 첫달 800대를 팔았다. 대만, 아일랜드 등으로 해외 생산 거점도 늘렸다. 로지텍은 1988년 직원 400명에 매출 4000만달러를 달성하며 스위스 증권시장에 상장했다.

로지텍은 마우스, 키보드 등 입력기기 외에도 다양한 컴퓨터 주변기기를 개발했다. ‘기계와 사람을 잇는다’는 기업의 비전을 실현하는 방향성을 잃지 않고 제품군을 늘린다는 전략을 폈다. 1994년 조이스틱 ‘윙맨’을 출시하면서 PC 게임용 주변기기 시장에 뛰어들었다. 로지텍은 현재 게이밍 마우스 시장의 30% 이상을 차지하고 있다.

1997년 미국 나스닥에 상장한 뒤엔 과감한 인수합병(M&A)을 통해 사업을 확장해 나갔다. 1998년 ‘퀵캠’이란 웹카메라 제조사 코넥틱스를 인수하고 화상카메라를 판매하기 시작했다. 2001년 컴퓨터용 스피커 업체 랩텍을 인수하고 본격적으로 음향 기기를 생산했다. PC 외에도 스마트폰 등 모바일 기기와 게임기용 헤드셋을 선보였다.

주력 제품인 마우스 시장에서도 혁신을 거듭하며 시장을 선도했다. 1991년 업계 최초로 무선 마우스를 시장에 내놨다. 장치에 얹은 공을 굴려서 세밀한 조작을 하는 ‘트랙볼’도 도입했다. 로지텍은 2004년 세계 처음으로 광센서 대신 눈에 보이지 않는 레이저 센서를 이용하는 마우스를 출시했다.
실패에 관대한 문화

실패한 제품도 많았다. 1992년 개발한 디지털카메라 ‘포토맨’은 사용하기 불편하단 이유로 시장에서 외면당했다. 하지만 로지텍은 끊임없이 시도하고 실패에 관대한 기업문화를 지켜오고 있다. 보렐 회장은 “실패를 벌해선 안 된다”며 “정보기술(IT) 비즈니스에선 두 번만 시도해 두 번 다 옳은 선택을 하는 것보다 열 번 도전해 여섯 번만 성공하더라도 위험을 무릅쓰고 여러 번 도전하는 것이 차별화에 성공할 확률을 높이는 길이기 때문”이라고 강조했다.

보렐 회장은 로지텍에서 1988년부터 2007년까지 회장을 맡았다. 그중 1992년부터 1998년까지는 최고경영자(CEO)로 일했다. 현재 그는 명예회장으로 로지텍 이사회에서 자문 역할을 주로 하고 있다. 로지텍은 2010년 로잔공대 캠퍼스에 다니엘 보렐 회장의 이름을 딴 ‘다니엘 보렐 혁신센터’를 열기도 했다. 보렐 회장의 혁신 유산을 계속 이어가기 위해서다. 혁신센터는 로지텍과 로잔공대를 잇는 싱크탱크 역할도 하고 있다.

추가영 기자 gychu@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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