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정기획위 1차 업무보고 마무리…폐기·수정 기로에 선 5대 공약

입력 2017-06-04 18:38 수정 2017-06-05 00:08

지면 지면정보

2017-06-05A6면

문재인 정부 인수위원회 격인 국정기획자문위원회가 4일 1차 부처별 업무보고를 마무리했다. 국정기획위는 국정과제를 선정하는 과정에서 탈(脫)원전·탈석탄발전소 등 일부 공약을 보류하거나 이행 여부를 재검토하기로 했다. 지난달 22일 서울 통의동 금융감독연수원에서 열린 국정위 첫 회의. 허문찬 기자 sweat@hankyung.com

문재인 정부 인수위원회 역할을 하는 국정기획자문위원회가 4일 부처별 1차 업무보고를 마무리했다. 지난달 24일부터 이날까지 11일간 56개 부·처·청·산하기관의 업무보고를 받았다. 이르면 이달 말까지 국정운영 5개년 계획에 담길 ‘5대 목표, 20대 전략, 100대 과제’를 확정해 문 대통령에게 보고할 예정이다.

하지만 국정과제 선정 과정에서 문 대통령 공약 일부는 수정 혹은 폐기가 불가피할 것으로 예상된다. 국정기획위는 이미 부처별 1차 업무보고에서 일부 공약을 수정하거나 실제 이행 여부를 놓고 고민을 거듭하고 있다. 기업 반발이나 현실적인 제한 때문에 공약을 액면 그대로 적용하기도 쉽지 않거나 부작용이 우려되기 때문이다.

가계 통신비 인하(통신 기본료 폐지), 광화문 대통령, 탈(脫)원전·탈석탄발전소, 고교학점제 도입, 전속고발권 폐지 등이 대표적 사례다.

국정기획위가 ‘공약을 이행하겠다’고 밝히긴 했지만 2020년까지 시간당 최저임금 1만원으로 인상(현재 6470원),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 4대강 보 개방 등도 추진 과정에서 사회적 갈등과 논란이 일 수 있다.

① 에너지정책 전환

이상론 치우친 '탈원전·석탄'…주민·기업 반발에 엉거주춤
"신고리 5·6호기 중단 미정…원전폐기 아니다" 물러서


문재인 대통령의 ‘탈(脫)원자력·탈석탄’ 공약은 대선 때부터 “환경주의자들의 이상론을 무비판적으로 수용한 것”이란 지적을 받았다. 신고리 원전 5·6호기 공사 중단, 공정률 10% 미만 석탄화력발전소 원점 재검토 등은 처음부터 현실적 문제 때문에 실현 가능성이 낮은데도 무리하게 끼워 넣었다는 비판이 많았다.

산업통상자원부가 산하기관을 통해 지난달 민간 발전사업자 네 곳에 “지금 짓고 있는 석탄발전소를 액화천연가스(LNG)발전소로 전환할 의향이 있느냐”고 물은 것도 ‘공정률 10% 미만 석탄발전소 건설 원점 재검토’ 공약을 이행할 방법을 찾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정부 허가를 받아 진행하는 사업을 무턱대고 중단할 수는 없다. 발전소마다 이미 2000억~8000억원 정도의 비용이 투입됐기 때문에 현실적으로 석탄발전소를 LNG발전소로 전환하기도 어렵다. 자칫하면 정부가 대규모 소송에 휘말릴 수도 있다.

국정기획자문위원회는 신고리 원전 5·6호기 건설 중단 공약에 대해선 “원전 폐기를 의미하는 게 아니었다”며 “당장 공사를 중단하겠다는 게 아니고 언제 중단할지도 결정하지 않았다”고 한발 물러섰다. 원전 인근 주민들은 지역경제 피해를 우려하며 반발하고 있고 에너지 관련 교수 230명은 지난 1일 “새 정부 에너지 정책을 만드는 데 전문가가 배제돼 있다”는 성명서를 냈다.

② 전속고발권 폐지

'묻지마 소송' 남발…중소기업 피해 커질 우려
공정위 "전속고발권 유지하고 사인의 금지청구권 도입 추진"


문재인 대통령은 대선 때 공정거래위원회의 전속고발권을 폐지하겠다고 약속했다. 전속고발권은 공정위 소관 법령 위반 사건에 대해선 공정위가 고발해야 검찰이 수사에 착수할 수 있도록 한 제도다.

문 대통령은 공정위가 대기업 고발에 소극적이었다며 누구든 자유롭게 불공정 기업을 고발하게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하지만 공정위는 전속고발권 폐지에 부정적이다. 전속고발권이 폐지되면 고발과 소송이 남발돼 기업 활동이 지나치게 위축될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경쟁 업체의 경영 활동을 방해하기 위한 ‘묻지마 고발’이 난무하거나 고발 대응 능력이 떨어지는 중소기업에 피해가 집중될 것이란 우려도 있다. 공정거래 영역의 전문성이 상대적으로 떨어지는 검찰과 경찰의 힘이 비정상적으로 강해질 것이란 관측도 제기된다.

공정위는 이에 따라 전속고발권을 유지하는 대신 현재 감사원, 조달청, 중소기업청으로 한정된 고발요청권을 확대하거나 개인이 공정위를 거치지 않고 법원에 직접 불공정 행위 금지를 요청할 수 있는 ‘사인(私人)의 금지청구권’을 도입하는 방안을 국정기획위원회에 보고했다.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 후보자도 지난 2일 국회 인사청문회에서 “공정거래법을 집행할 때 형사·민사·행정 규율을 종합적으로 규율해야 한다”며 전속고발권 폐지의 대안으로 이런 방안을 언급했다.

③ 고교학점제 도입

교사 충원에만 올 1050억 필요…대입제도 전면 손질도 '부담'
학점 잘 주는 과목으로...학생들 쏠림현상 클 것


문재인 대통령의 핵심 교육 공약인 ‘고교학점제’도 시행 여부를 둘러싼 혼선이 만만찮다. 고교학점제란 대학처럼 학생들이 교과를 선택하고 강의실을 다니며 수업을 듣는 방식인 ‘과목선택제’를 토대로 학점과 졸업을 연계하는 제도다. 과도한 성적 경쟁과 입시에 대한 부담을 덜고 진로와 적성에 따라 수업을 듣도록 하자는 취지다.

국정기획자문위원회는 과목선택제를 2010년부터 도입해 운영 중인 서울 도봉고를 지난 2일 찾기도 했다. 당시 간담회에 참석한 유은혜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의지를 갖고 고교학점제를 추진할 것”이라면서도 “급하게 하는 것보다 제대로 잘하는 게 중요하다”며 한발 물러서는 모습을 보였다.

현실적인 문제가 만만치 않아서다. 고교학점제를 시행하려면 우선 교원 확충이 필수적이다. 교육부는 국정위 업무보고 당시 5년간 1만5000여 명 증원 추진을 보고했다. 하지만 예산 확보 방안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았다. 교원 1인당 연봉을 3500만원으로 계산해도 당장 올해분인 3000명 추가 임용에만 1050억원의 재원이 필요하다.

내신 등 대입 관련 제도를 모두 절대평가제로 전환해야 하는 점도 부담이다. 일선 교사들은 “학점 잘 주는 과목에 대학생이 쏠리는 것과 마찬가지 현상이 나타날 것”이라고 지적했다.

④ 통신 기본요금 폐지

통신사 "연 7조 손실…5G 투자여력 사라져"
국정기획위·미래부 두 차례 회의…통신비 인하 '뾰족수' 못찾아

문재인 정부가 가계통신비 인하 공약으로 내세운 ‘이동통신 기본요금 폐지’는 시장 가격 구조를 강제로 조정하려는 반(反)시장주의 정책이란 비판을 받고 있다. 통신 기본료 폐지 공약은 2세대, 3세대 통신은 물론 4세대 통신(LTE) 요금에 포함돼 있는 월 1만1000원의 기본료를 없애자는 내용이다. 기본료는 통신망 인프라 구축에 쓰이는 비용이다. 망 설치가 끝난 현재까지 기본료를 걷는 것은 ‘과잉 징수’라는 논리다.

5500만 명의 국내 이동통신 가입자의 기본요금이 폐지되면 연간 통신요금 감소액은 7조2600억원에 이른다. 통신사들은 “기본료를 폐지하면 통신사 모두 적자영업을 하게 되고 (차세대 통신망인) 5세대 투자 여력도 사라진다”고 반발하고 있다.

국정기획자문위원회는 지난달 25일과 이달 1일 두 차례에 걸쳐 미래창조과학부와 가계통신비 인하 논의를 벌였지만 별다른 진척을 보지 못했다. 이개호 국정기획위 제2분과 위원장은 지난 1일 회의가 끝난 뒤 기자들과 만나 “미래부가 (기본료 폐지 등) 통신비 인하와 관련한 안을 갖고 오지 않아 검토를 못했다”며 “미래부의 고민이 깊은 것 같다”고 말했다.

업계에선 정부가 시장 가격 구조에 손댈 수 있는 법적 근거가 없는 데다 기본료 폐지가 통신 시장에 미칠 파급 효과가 커 신중한 접근이 필요하다는 의견이 나온다.

⑤ 광화문 시대

청와대 집무실 이전 땐 교통·통신 제한…시민 불편
경호실 폐지 공약 일단 보류…경찰 경호국 신설 준비 미흡


문재인 대통령은 대선후보 시절 ‘광화문 대통령’을 표방했다. 이를 위해 대통령 집무실을 청와대에서 서울 광화문에 있는 정부청사로 옮기는 한편 청와대 경호실을 폐지하고 경찰청 산하에 경호국을 신설하겠다고 약속했다. 특히 집무실 이전은 올해 안에 계획을 세우고 내년 예산에 반영해 2019년까지 완료하겠다는 시간표를 제시하기도 했다. 제왕적 대통령에서 탈피하겠다는 의지였다.
그러나 국정기획자문위는 관련 부처 업무보고 직후 “대통령 경호실 폐지와 경찰청 이관 공약을 보류하고, 향후 ‘광화문 시대’ 공약 추진과 함께 검토하겠다”고 한발 물러섰다.

공약 이행 시기에 대해서도 “국정기획위에서 논의하기 어려운 문제”라고 밝혔다. 경호 업무 이관은 대통령 집무실을 광화문 청사로 옮기는 문제와 맞물려 있는데다 현실적으로 준비도 미흡하다는 판단에서다.

국정기획위는 대신 청와대 내 조직 개편을 통해 장관급 경호실을 차관급 경호처로 조정하겠다는 수정안을 내놨다.

대통령 집무실을 실제 광화문 청사로 옮길 수 있을지도 불확실하다. 광화문 일대는 교통이 혼잡하고 유동인구가 많아 대통령 경호가 쉽지 않은 지역이다. 대통령 집무실이 옮겨오면 주변 교통, 통신 제한 등으로 오히려 시민 불편이 늘어날 것이란 지적도 많다.

이태훈/황정수/박동휘/이정호/김채연 기자 beje@hankyung.com

ⓒ 한경닷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