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팀 리포트]

사람잡는 '사이비 치료'…말기암 환자에 소금물 주입·단식

입력 2017-05-19 19:14 수정 2017-05-20 20:20

지면 지면정보

2017-05-20A2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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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모씨(35)는 지난 2월 다섯 살 아들의 소아암(신경모세포종)을 고치기 위해 대구의 한 치유원에 아이를 보냈다. 한 달 반이면 말기 암도 완치된다는 원장 이모씨(65)의 말에 실낱같은 희망을 가졌다. 그러나 아들은 2주 만에 숨졌다. 사망 당시 몸무게는 15㎏. 방씨 아들이 받은 시술은 이씨 부부가 개발했다는 ‘특공 훈련’이라는 이름의 사이비 치료법이다. 방씨 아들을 비롯해 당시 치유원에 있던 수십 명의 환자가 9박10일간 단식했다. 소금과 커피, 마그밀(변비약) 등을 섞어 만든 액체를 물에 타서 매일 항문에 주입하기도 했다. 비슷한 시기 입소한 유방암 환자 이모씨(59)도 이 같은 치료를 받다 쓰러져 뇌가 손상되면서 말을 하지 못하는 상태가 됐다.

이씨 부부는 2012년부터 지난 3월까지 이처럼 무면허 의료 행위를 한 혐의(의료법 위반)로 불구속 입건돼 검찰에 송치됐다. 사건을 담당한 박정식 대구 북부경찰서 지능1팀장은 “피해자가 말기 암 환자이기 때문에 실제 불법 시술로 사망한 것인지 입증이 어렵고 현금으로 시술비를 받아 피해자 수도 정확하게 파악할 수 없었다”며 “환자의 간절한 심정을 악용해 법망을 교묘히 피해간 것”이라고 설명했다.

의료법 위반 매년 10%씩 증가

민간요법이라는 미명 아래 이뤄지는 무면허·불법 의료 행위가 매년 증가하고 있다. 경찰청에 따르면 의료법 위반 행위 적발 건수는 △2013년 1966건 △2014년 2154건 △2015년 2439건 등으로 꾸준히 늘고 있다.

물론 피해자의 고통은 이루 말할 수 없다. 최근 아동학대 논란에 휩싸인 인터넷 카페 ‘약 안 쓰고 아이 키우기(안아키)’ 사건이 대표적이다. 가입자가 6만 명이 넘는 이 커뮤니티를 통해 ‘아토피 피부를 가진 아이에겐 햇볕을 쬐게 해야 한다’, ‘화상을 입은 아이는 매일 40도 넘는 물에 40분간 온수 찜질을 해야 한다’는 등 상식적으로 믿기 어려운 치료법이 어린아이들에게 자행됐다. 피해자 신고와 고발이 잇따르자 경찰은 뒤늦게 “내사에 착수했다”며 “조만간 관련자를 소환 조사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뜸 치료를 해선 안 되는 당뇨 환자가 심각한 부작용으로 병원에 실려오는 사례도 가장 흔한 유형 중 하나라는 게 경찰 측 설명이다. 당뇨 환자는 감각이 무뎌 뜨거움을 잘 느끼지 못하기 때문에 뜸 치료가 독이 되는 경우가 많다. 또 무허가 침술원에서 잘못된 침 시술로 전신마비를 겪거나 벌침을 성기 주변에 잘못 맞아 병원균 감염으로 성기를 절단한 사례도 있다.

이 같은 유사 의료 행위를 저지르면 의료법 위반으로 5년 이하의 징역이나 5000만원 이하의 벌금형에 처해질 수 있다. 영리 목적의 무면허 의료 행위에 대해서는 가중 처벌한다. 보건범죄 단속에 관한 특별조치법에 따르면 의사가 아닌 자가 금전적 이익을 목적으로 의료행위를 하면 최대 무기징역까지 받을 수 있다.

후학까지 양성하는 가짜 의사들

무면허 의료 행위는 갈수록 교묘해지고 음성화되는 추세다. 박 팀장은 “암암리에 진행 중인 무면허 의료행위는 적발되는 건수보다 훨씬 많다고 봐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오피스텔이나 일반 주택 등을 개조해 시술하는 업소가 적지 않다는 게 박 팀장의 설명이다.

전기를 몸에 흘려보내 만병을 치료한다는 강모씨(60)는 서울 개포동, 부산, 제주, 경남 산청 등지에서 환자들이 방을 구해오면 거기서 시술한다고 했다. 그는 “아는 사람 소개로만 시술하고 있다”며 “모르는 번호로 전화가 오면 받지 않는다”고 전했다. 더욱 심각한 것은 이들이 ‘후학’까지 양성하며 세력을 확장하고 있다는 점이다. 네이버 카페를 운영하는 권모씨는 자신이 만든 죽염을 물에 0.5% 섞어 마시는 것만으로 난치병을 해결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그러면서 가입자에게 시술 요법을 설명하고 임상 후기를 작성할 것을 요구한다. 이렇게 후기를 올린 사람만 100여 명을 웃돈다.

강씨는 자신이 만든 의료기기로 몸에 전기를 흘려보내고 병이 있는 부위를 자신이 가르쳐준 대로 짚으면 병이 낫는다고 말했다. 그는 1년째 네 곳의 가택에서 석 달 단위로 각각 12명을 가르치고 있다. 그에게서 치료법을 전수받은 사람은 주로 노년층, 특히 은퇴 후 일거리를 찾는 일반인이었다.

이들이 불법으로 갈취하는 금액도 적지 않다. 권씨 카페에 가입하려면 일단 20만원을 내야 한다. 시술을 받기 전에도 권씨가 만든 고가의 죽염 구매가 의무 사항이다. 강씨도 ‘전기 치료’ 교육비로 1인당 120만원을 받고, 수료 후 시술 기구를 성능에 따라 99만~700만원에 팔고 있다. 그는 2015년 자신의 침술과 제조약을 투여하면 암을 100일 내 완치할 수 있다며 환자 440여 명에게 불법 의료행위를 한 뒤 1억원을 받아 챙긴 혐의로 이미 한 차례 구속된 바 있다. 김주현 대한의사협회 대변인은 “병원에 가지 말고 자기들을 믿어달라거나 거액의 돈부터 요구하면 일단 의심부터 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단속 및 수사 인력은 태부족

무면허 의료행위로 인한 피해가 늘고 있지만 전문 수사인력은 턱없이 부족한 상황이다. 경찰 관계자는 “국민권익위원회나 의협 등을 통해 제보가 들어오는데 전문가가 적어 큰 사건 위주로만 처리하는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또 사건의 특성상 외부 전문가에게 자문을 의뢰할 수밖에 없어 수사 기간이 짧지 않다는 게 경찰 관계자의 설명이다.

상위 기관인 검찰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검찰 관계자는 “어찌해서 기소되더라도 무죄 판결이 나오는 비율이 상대적으로 높다”고 토로했다.

불법 의료행위에 대한 전문 수사인력을 확충하기 위해 특별사법경찰(특사경)에게 수사권을 부여하려는 움직임도 가시화하고 있다. 특사경은 위생 통관 등 특수한 분야에서 경찰에 준하는 권한을 행사할 수 있는 일반 공무원을 말한다. 법무부는 지난 3월 의료법 위반 행위에 대한 수사권을 특사경에게 부여하는 내용의 관련법 개정안을 국회에 제출했다.

박진우 기자 jwp@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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